샤넬(본명 은희)은 어린 시절 목사였던 아버지로부터 영향을 받은 가학과 피학, 그 두 가지의 상반된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데, 이러한 자신의 이중적인 성격을 표현해 내기 위해 사진촬영에 집착한다. 그러던 중 조이월드(비디오 게임방)에서 우연히 만난 대학생 인혁에게 호감을 갖게 되고, 한 술집에서 자신의 누드모델이 되어줄 것을 제안한다. 인혁은 쉽게 응한다. 그렇게 둘은 열정적이고 파격적인 사진작업을 통해 점점 가까워지고, 서로의 상처에 대해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사랑이 싹트게 된다. 그러나 새로운 계절이 시작될 무렵, 갑작스런 어머니의 부음을 접한 샤넬은 깊은 상심에 빠지게 된다. 샤넬은 한동안 사진작업도 잊은 채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고, 인혁은 현재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샤넬은 인혁에게 교수형 장면을 찍고 싶다며 포즈를 취해줄 것을 요구한다. 인혁은 잠시 망설이다 응한다. 그렇게 교수형 장면의 사진촬영이 진행되던 날, 샤넬은 인혁이 위태롭게 버티고 서 있던 의자를 밀어버리고, 인혁은 교수형틀에 매달려 의식을 잃는다. 다시 의식을 되찾은 인혁은 샤넬이 기거하는 여관방으로 찾아가 보지만 샤넬은 이미 이 도시를 떠나버린 뒤다. 며칠 후, 다시 도시로 돌아온 샤넬은 인혁에게 용서를 구하고 자살을 시도한다. 인혁의 도움으로 의식에서 회복한 샤넬은 마지막으로 동해로의 여행을 제안하고, 그곳에서 아버지의 유일한 유품이었던 칼을 인혁에게 선물한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한 통의 편지만을 남긴 채 인혁의 곁을 떠난다.
환상적인 세상이다. 순수문학 사망설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시점에서도 출처불명의 문인들이 끊임없이 양산되고 있다. 무인들이 많은 세상보다는 문인들이 많은 세상이 한결 아름답다. 얼마나 환상적인가. 하지만 그토록 많은 문인들이 양산되고 있어도 창의력과 사명감이 돋보이는 문인들은 드문 실정이다. 어쩌면 순수문학 사망설이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는 현상은 당연지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광훈의 소설을 만나면 세상에 떠돌고 있는 순수문학 사망설이 터무니없는 낭설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의 소설들은 현실적 무력감에 빠져 있는 암갈색 의식을 눈부신 백금색으로 도금시켜 주는 마력을 지니고 있다. 이외수(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