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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빌려 드립니다
중고도서

남자를 빌려 드립니다

: 박석근 소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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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1년 11월 04일
쪽수, 무게, 크기 237쪽 | 418g | 148*210*20mm
ISBN13 9788937483936
ISBN10 8937483939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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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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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인간이란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보면서 휴식과 평화를 느끼고 나아가 몽상에 젖어 들지.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현대인들은 휴식과 몽상은커녕 오히려 불안에 떨어. 그러니 질병이랄밖에.”
“왜 그럴까?”
“그야, 휴식과 몽상이 경제 활동에 장애가 되고 그러다간 이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도태되고 말 거라는 강박 관념 때문이지.”'전망 좋은 집' 중에서---pp.25~26

내 인생은 한때 양지였으나 지금은 햇빛 한 점 스며들지 않는 음지다. 어느 날 사람들이 나를 슬슬 피하는 이유를 주차장에서 깨달았다. 똥차 옆에 고급 차가 주차되는 법은 없다. 함부로 굴러다니는 똥차는 다른 차에 흠집 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이 도시민들은 본능적으로 하이에나를 알아보고 경계하는 것이다. 세상인심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이어서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일도 없다.
나는 삶과 죽음 사이에 금을 긋고 어디에 발을 디딜지 번민했다. 문득 더 이상 잃을 것도 불행해질 일도 없으며, 본래부터 빈손으로 온 인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이상하게 마음이 평온해졌고, 촘촘한 그물에도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자유로웠다. 하이에나의 자유는 생각보다 달콤했다.'남자를 빌려 드립니다' 중에서---p.38

“지옥 훈련이란 어떤 훈련입니까?”
“다 놈들의 개수작이죠.”
그리고 류 씨는 입을 다물었는데 다분히 회사의 정책에 반발하는 어투였다. 나는 맞장구를 치려다가 그만두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뱃전에 부딪히는 물결 소리가 찰랑찰랑 들려왔다. 잔잔한 물결 위에 달빛과 별빛의 꼬리들이 아롱거렸다. 노를 젓지 않아도 나룻배는 조금씩 흘렀다.
“지옥 훈련이 무진장 힘들었던 거로군요?”
“뭐, 군대 갔다 온 사람이라면 옛날 생각 하며 받을 만해요.”
병약한 류 씨의 생김새로 미루어 보아 의외의 대답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탈출했습니까?”
류 씨가 운동복 주머니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라이터 불빛에 그의 얼굴이 환히 드러났다. 류 씨의 입에서 나온 담배 연기가 푸른 어둠 속으로 풀풀 날아갔다.
“김 형, 내가 참을 수 없는 건 지옥 훈련 따위나 강요하는 이 사횝니다. 요새 기업들은 무슨 유행처럼 그따위 돼먹잖은 훈련을 신설하고, 또 매스컴은 그런 훈련 덕분에 생산성이나 업무 능률이 배가된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떠들어 대고 있어요.”'강변의 추억' 중에서---pp.122~123

“네 눈에는 이것들이 단순히 중고품으로 보이냐?”
손님이 뜸한 시간에 조 사장은 김 군에게 물었다.
“솔직히 새 건 아니죠, 사장님.”
김 군은 그 말이 사장의 비위를 거스른다 생각했는지 헤벌쭉 웃었다.
“누가 그걸 몰라서 묻냐. 이 물건에 의미를 부여해 보라, 그 말이야.”
조 사장은 뭔가를 유도해 내기 위해 그렇게 말했다.
“골동품 같은 가구, 뭐 그런 거죠.”
“대답 잘했다. 그래, 이건 보통 가구가 아니라 제작 연도가 오래된 것일수록 값이 나가는 골동품 같은 거야. 누구나 골동품을 갖고 싶어 하듯 사람들은 집 안에 고가구를 들여다 놓고 싶어 하지.”
김 군은 잠자코 사장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너한테 한 가지 말해 둘 게 있는데 우리가 하는 장산 단순히 가구를 파는 게 아니라 옛날 장인들의 정신을 파는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어?”
“장인 정신을 파는 거라고요?”
“장사를 제대로 하려면 소비자의 마음을 꿰뚫어야 하는 법이야. 이 고가구들은 소비자들에게 자연스러움, 친근함, 편안함 같은 심리적 위안을 주지. 수제품의 가장 큰 특색은 인간의 마음과 직접적인 연계를 유지하는 것, 다시 말해 인간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는 거야. 이에 반해 기계는 마음보다 머리의 소산이기 때문에 비인간적일 수밖에 없거든. 한마디로 말해 수제품에는 손맛에서 연유하는 인간미가 살아 있다, 그 말이야.”
“인간적인 성격? 인간미?”
김 군은 이해가 안 되는 듯 그 말을 입안에서 굴렸다.
“이런 답답하긴. 옛사람들의 정직한 심성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이야. 예를 들어 말이야, 현대 가구는 외양은 화려하지만 겉으로 보이지 않는 옆면과 뒷면은 대부분 합판으로 제작돼 있지. 반면 옛 가구는 앞뒤 모두 통판으로 만들잖아. 그건 곧 그 물건을 만든 옛사람들의 마음 자세, 즉 거짓말하지 않고 정직하게 살려는 자세라 할 수 있지. 정신적으로 크게 스트레스를 받을 때 옛 물건을 보고 있으면 현실의 문제들을 잊고 정신이 맑아진다는 실험 결과도 있어.”
'장군 의자' 중에서---pp.206~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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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를 빌려 드립니다]는 현대 자본주의적 일상의 삶을 근원에서부터 꿰뚫고 있는 인간성의 ‘상실’ 혹은 ‘소외’에 대한 탐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실과 소외가 발생하는 구체적인 공간은 끊임없는 노동과 억압과 빈곤과 외로움으로 얼룩진 ‘도시-감옥’의 이미지로 제시된다. 박석근의 소설에서 도시는 법이 지배하는, 그리고 그 법이란 것도 강자의 이익을 대변하고 약자에게는 한없이 잔인한 족쇄로 작용하는 약육강식의 세계이다. 이 도시에서의 삶은 인간적이어선 안 된다. 인간적이길 원하는 순간 그는 나락으로 떨어지고 만다. 이렇게 [남자를 빌려 드립니다]에는 우리가 이 세계 안에서 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 세계 바깥에서 살 수도 없다는 진퇴양난의 역설이 자리한다.

허구로서의 소설이 실재로서의 현실에 대응하는 가장 급진적인 방식은 허구의 이미지를 통해 이 현실의 배후에 똬리를 틀고 있는 이미지의 허구를 폭로하는 것이리라. 앞으로도 여전히 소설은 허구의 이미지를 통해 이미지의 허구를 드러내는 이 아이러니를 살 것이다. 박석근의 소설 세계는 바로 이러한 이미지와 실재, 허구와 현실의 관계에 대한 성찰과 실험의 기록이다.
김진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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