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아이가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들
그럼 주택으로 이사를 오자마자 자연과 친구가 되었을까? 아쉽게도 주거환경이 바뀌었다고 해서 쉽게 자연과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1년이 지난 후 나는 아차 싶었다. 아이에게 그동안 변변한 벌레친구도 나무친구도 만들어주지 못했으니,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때마침 아이가 어린이집 1년 과정을 졸업하는 시기라, 5살 때는 유치원을 보내지 않기로 결정을 내렸다. 그러니 이제 주변에서 난리다.
“유치원에 안 보내고 어쩌려고 그러느냐?”
“아이 사회성을 어쩌려고 그러느냐?”
“친구도 없이 심심해서 어쩌려고 그러느냐?”
뭐야. 내가 그렇게 무리한 결정을 내린 건가? 6살에 유치원을 보내도 충분히 2년은 다닐 텐데, 뭐가 그렇게 걱정이지? 정말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가…?
물론 나도 결정이 그리 쉽지만은 않았다. 한글이며 영어며, 과학과 수학, 미술에 체육까지 교육열이 뜨거운 현실을 느낄 때나 놀이터에서 엄마랑 영어로만 대화하는 유치원 또래의 아이들을 만날 때면 나도 순간 조급해지고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나는 조금만 천천히 시작하자고 맘먹었다. 그런 것들은 1년 혹은 2년 뒤에 하면 되니,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을 것들을 먼저 하자고 맘먹자 흔들리던 마음이 잔잔해졌다. 내 아이가 공부만 잘하는 아이이기보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아이, 아름다움을 느낄 줄 아는 아이, 좋은 것을 즐길 줄 아는 아이, 조금은 더 따스한 가슴을 가진 아이, 그래서 옆에 있으면 함께 행복해지는 아이라면 더 좋지 않을까. 뱃속에 아이를 10달 동안 품고 있으면서 ‘건강하게만 태어나다오’라고 간절히 기도했던 맘은 언제부터 사라진 걸까.
-프롤로그 중에서
집 가까이에서 자연을 만나자
내가 아이와 산에 가서 열매도 따다 먹고, 애기똥풀로 매니큐어도 바르고 왔다고 하면 친정엄마는 나를 한껏 비웃어주셨다. 뭐 그런 걸 돈 주고 배우러 다니냐고, 당신 어릴 적엔 맨날 그러고 노셨다고. 우리의 주거공간이 자연과 멀어지고, 우리의 삶이 친환경적인 환경과 멀어지면서 생태교육이라는 분야가 생기고, 자연체험이며 자연놀이를 비용을 지불하고 배워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자연체험교육을 비용을 지불하고 받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다른 교육을 돈을 내고 받는 것처럼, 자연체험이 아이의 인생에 미칠 영향을 생각하면 돈이 아깝지 않다. 하지만 다른 교육이 그러하듯 일회성이 아닌 규칙적이고 꾸준한 경험이 되어야 한다. 1년에 1~2번 먼 길을 떠나 만나는 자연이 아니라, 가까이에 두고 매일 보고 만날 수 있는 자연이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둘러보면 도심에도 자연은 어느 곳에나 있다. 의외로 곳곳에 잘 조성된 공원이 있고, 가로수 한그루 없는 곳은 없다. 가로수 밑 흙만 내려다보더라도 4~5가지 이상의 풀들이 자라고 있고, 보도블록 사이에 싹을 틔운 생명력 질긴 들풀들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그뿐인가. 아파트 놀이터에선 한겨울만 제외하면 민들레며 제비꽃도 얼마든지 볼 수 있다. 만약 집 가까운 곳에 등산로가 있다면 최고의 장소를 찾은 것이다.
그러나 혹 이런 곳조차 찾지 못했다 하더라도, 부모가 아이와 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많다. 아이와 함께 하늘을 올려보는 일, 바람에 실려 오는 냄새를 맡는 일, 빗방울이 연주하는 소리를 듣는 일, 돌이나 솔방울을 하나씩 주워 주머니 속에 살짝 넣어오는 일……. 이 모든 일들이 자연, 우주, 생명과 연관이 없는 일이라 누가 말할 수 있겠는가.
레이첼 카슨은 ‘자연과 관련된 경험들은 말하자면 씨앗이라 할 수 있다. 그 씨앗은 나중에 커서 지식과 지혜의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연에서 느끼는 이런저런 감정과 인상은 그 씨앗이 터 잡아 자라날 기름진 땅이라고 할 수 있다. 유년시절은 그런 기름진 땅을 준비할 시간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감수성, 새로운 것과 미지에 것에 대한 흥분, 기대, 공감, 동정, 존경, 사랑······. 이런 감정들이 기름진 땅을 이루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사물에 대한 지식을 올바르게 추구할 수 있다. 한번 형성된 기름진 땅은 평생 아이의 곁을 떠나지 않는 착한 요정이 될 것이다’라고 했다.
자연과 가까이 지낸다는 건 아이에게 착한 요정을 만들어주는 일이다. 이 일의 적임자는 바로 아이와 가장 가까운 어른들이며, 반대로 아이는 어른의 착한 요정이 되어줄 것이다. 이렇게 신비롭고, 신나고, 멋진 일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늘 곁에 있는 자연을 외면할 이유가 없다.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자연이 최고의 장소이며, 지금이 가장 좋은 계절이다.
-에필로그 중에서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