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학습을 통해 재미에 빠져라!
프로젝트학습을 통해 재미에 빠져라! 공부는 노력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공부, 도대체 왜 하는 거죠?”
아주 오래전 일이다. 학교에서 좋아할 만한 전형적인 모범생이었던 어느 학생이 뜬금없이 질문을 해왔다. 얼굴에는 답을 얻고자 하는 간절한 표정이 역력했다. 평소 해주던 말대로 열심히 노력하고 성실히 공부하면 장래에 원하는 꿈을 얻을 수 있을 거라는 취지의 말을 건넸다. 보통 친절한 말투로 이런 말을 건네면, 감사의 인사와 함께 자리로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짜증 섞인 말투로 재차 질문하는 것이 아닌가.
“그건 나중 일이고요. 공부를 도대체 왜 하는 거냐고요?”
학생의 반응이 황당하게 느껴졌다. 예절바르지 못한 태도에 속에선 무언가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마음을 다시 가다듬고 좀 전과 비슷한 취지의 말을 다시 건넸다. 앞으로 6년 동안(초등학교 6학년 학생)만 쓰디 쓴 인고의 세월을 잘 이겨내면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공부에 대한 이런 저런 마음가짐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지 않았다.
“네~”
그러나 돌아온 반응은 힘없이 내뱉은 짧은 대답이 전부였다. 영혼 없는 대답이 귓가를 때리자 허탈함이 밀려들었다. 공부를 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 경험담을 늘어놓으며 긴긴 시간 친절히 설명해 주었지만, 그런 선생님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마음은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짧은 대답보다 포기한 듯 실망감 가득한 표정으로 돌아서던 아이의 모습이 가슴을 때렸다. 당황스러웠다. 우리 사회의 현실을 말했고, 건넨 말들 중에 잘못 전해진 것은 없다고 여겼다. 노력을 강조하며 격려와 응원의 말도 아끼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이는 수긍하지 못했다.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는 질문할 필요도 없이 명백해 보이는데 말이다. 학교에서 공부를 잘 하면 좋은 학력을 얻을 수 있고, 학력이 좋으면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갖게 된다는 걸, 우리는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수긍하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우리 사회의 기성세대가 그 동안 누구보다 뼈저리게 느껴왔던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자신의 장래를 위해 참고 견뎌야 할 것이 공부임을 강조한 것은 당연한 처사였다. 켜켜이 누적되어 왔던 경험적 믿음이 쉽사리 바뀔 리 없었다. 프로젝트학습을 현장에 실천하면서도 여전히 공부에 대한 사회적 통념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거다.
그렇다면 공부에 대한 학생들의 생각은 어떨까. 학생들과의 첫 만남부터 공부하는 이유를 묻곤 하는데, 세월이 지나도 한결같은 대답만을 들려준다.
“돈 많이 벌려고요.”
“좋은 대학교 가려고요.”
“엄마가 하라고 해서요.”
“몰라요.”
…
공부하는 이유 중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돈’이었고, 좋은 대학교에 가거나 선호하는 직업을 얻기 위함이 그 뒤를 이었다. 엉뚱하게도 부모가 시켜서 그냥 한다는 응답이나 그 이유를 모른다고 답한 아이들도 상당수였다. 그에 반해서 공부가 재미있어서 한다거나 앎에 이르는 과정 자체가 만족스럽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고 답한 학생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런 비슷한 의미의 말도 좀처럼 나오질 않았다.
“기억나는 수업이요? 없는데요.”
그래서일까. 학생들에게 기억에 남는 수업을 물으면 대게 망설임 없이 ‘없다’라고 대답한다. 때론 순간의 만남도 기억 속에 오래 간직하는 법인데 긴긴 시간을 투자하며 참여했던 수업 중에 기억으로 간직하고 있는 것이 없다니 정말 서글픈 일이다. 오래 시간 사회 전반에 걸쳐 뿌리내린 공부에 대한 인식은 시험을 잘 보는 학생들을 키우는 데는 효과적이었을지 몰라도 공부를 지겹고 재미없는 일로 만든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이는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결과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매번 최상위권을 기록하는 성적과 달리 흥미나 자신감은 최하위 수준을 나타내고 있다. 우리는 언제까지 흥미를 희생시키면서까지 끝내 잊어버리게 되는 교육을 계속해야 하는 걸까. 과연 이대로 괜찮을까.
우리는 노력이 배신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교에 이르기까지 열심히 노력하며 내달리는 학생들로 가득 채워 있지만, 이들의 노력이 원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을진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좋은 스펙, 좋은 학력이 좋은 직업을 보장해 주는 시대도 급격히 저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교육은 여전히 99.9%의 순도 높은 노력을 강조하며 학생들로 하여금 공부에 매진해 줄 것을 주문하고 있다. 경쟁으로 줄세우고 결과의 책임을 학생들에게 돌리며 더 공부할 것을 압박한다. 잠을 줄여가며 새벽 늦은 시간까지 책상머리 공부를 시킨다. 성적이 부진하면 모든 노력이 허사가 되기 때문에 전전긍긍하면서 말이다. 노력만이 강조되는 공부시간에 학생들 개개인의 흥미와 관심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시대가 바뀌고, 교육에 대한 생각, 패러다임의 변화가 확실한데도 여전히 우리의 의식은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해법은 이미 우리 안에 있다. 유토피아, 이상적인 모델이라 칭하며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애써 외면해 왔던 방안들을 각자의 교육현장에 맞게 하나씩 꺼내들면 된다. 그리고 그 시작은 지금껏 고수해 오던 ‘교과서’에 국한된 학습자원, ‘학교’, ‘교실’이라는 장소, 교육의 주체로서의 ‘교사’라는 절대적 위치를 스스로 내려놓고 완전히 뒤집어 접근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정확한 답을 요구하는 교육방식과 다양한 관점이 수용되기 어려운 전체주의적 사고방식에서 과감히 탈피하는 것은 기본이다. 우리 삶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교과서가 되고, 교실의 벽을 넘어서 참여와 소통의 문화마당이 펼쳐질 때, 무엇보다 배움의 주체로서 학습자가 온전히 자신의 지위를 누릴 수 있을 때, 비로소 각기 개성 넘치는 창조적인 사고가 싹을 틔울 수 있다. 99%의 노력을 강조하는 교육이 아닌 1%의 영감을 끄집어내는 교육으로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흥미와 관심을 배제하며 노력을 기반으로 억지로 채워나가는 공부로부터 시급히 탈출해야 한다.
천재는 1%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1% 영감이 99%의 노력보다 중요하다. _Tomas Edison
사실 우리 모두는 스스로 학습할 수 있는 힘을 지니고 태어났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넘어지고 부딪히며 걸음마를 배웠고, 말하는 방법도 스스로 터득하였다. 다섯 가지 감각을 총동원하며 각종 사물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에 호기심을 느끼며 관련 지식들을 적극적으로 섭렵했다. 일상의 작은 것들도 그냥 지나치는 법은 없었다. 길을 걷다가도 땅에 떨어져 있는 종이조각을 뒤적거리고, 가로수 나뭇가지에 줄지어가는 개미를 관찰의 대상으로 삼기도 했다. 보도블록 사이 금을 밟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피하다가도, 주위 건물 벽을 타고 올라간 담쟁이에 시선을 한참동안 빼앗기기도 했다. 길가의 나무와 들풀에 관심을 쏟기도 하고, 머리 위에 있는 구름이나 별빛을 바라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했다. 흥미와 호기심을 쫓아 배움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존재로 타고난 만큼, 학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신나고 즐거운 진지한 놀이가 되었다. 이런 측면에서 완전히 거꾸로 뒤집기, 곧 전통적인 교육방식을 구성하는 요소에 대한 획기적인 해체와 탈피는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학습방법을 도입하는 차원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고 볼 수 있다. 학습의 주도권을 본래의 주인인 학습자에게 돌려주는 것만으로 인간 본연의 타고난 본성에 부합하는 학습의 본질, 혹은 본래의 목적을 회복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책에 소개하고자 하는 프로젝트학습을 경험한 학생들 반응이 일관되게 ‘재미’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학습자 중심의 학습환경’으로의 이해와 실천이 학생들의 시각에서 재미로 수용됐다는 것은 정말 뜻밖이었다. 여러 해 동안 수집한 방대한 양의 자료를 분석하자 더욱 명확해졌다. 마치 ‘당신은 프로젝트학습을 왜 하는 겁니까?’라는 필자의 질문에 학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재미있으니까요.’로 화답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물론 다른 요인들도 존재하겠지만 자료를 분석한 결과 학생들은 프로젝트학습에 푹 빠져드는 으뜸 이유로 재미를 꼽고 있었다. 더 나아가 학습의 재미라는 것이 교실이라는 제한된 공간을 벗어나 사회와 소통하고 공유하고 참여하는 가운데 발생하며, 다양한 학습자원을 활용하고 학습의 모든 과정을 주도하는 가운데, 무엇보다 학습 그 자체가 목적이 될 때 발생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교사가 학습의 주도권을 학습자에게 온전히 넘겨주고, 학습의 조력자이자 지원자로서 격려와 즉각적인 피드백이 활발히 이루어질수록 재미는 더욱 풍부해졌다. 더불어 친밀한 사회적 관계 속에 이루어지는 협업의 과정이 재미를 ‘내’ 것만이 아닌 ‘우리’의 것으로 확산시켜 주었다. 학습이라는 진지한 행위의 본질 속에 다양한 성격의 재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학생들의 시각에서 드러난 프로젝트학습의 재미가 명확한 방향성을 제공해 주면서 본격적인 도전이 시작됐다.
재미에 대한 탐구는 그동안 현장에 적용해 왔던 프로젝트학습과는 구별될 만한 수업형태의 변화를 가져왔다. 물론 그 기저에 교육에 대한 패러다임, 인식, 철학 전체의 변혁적 관점은 달라진 것은 없지만, 프로젝트학습이 좀 더 재미에 최적화된 환경을 갖추는 것에 관한 진지한 고민과 방법적 모색이 뒤따랐다. 아울러 우리나라 교육환경과 학생들의 특성을 고스란히 존중하면서 교육현장에 적용 가능한 형태가 무엇일지에 관한 실질적인 탐색도 병행됐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재미와 불가분의 관계인 게임에 대해 궁금해졌고, 이 분야의 새로운 시도와 확장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 ‘게임화(Gamification)’, 즉 재미에 최적화된 게임요소와 디자인적 사고 등을 게임이 아닌 분야까지 확장하고 적용하려는 움직임에 주목하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다만 당시에는 마케팅 등의 특정분야에서만 활발한 논의가 진행되었을 뿐, 국내외 교육 분야에선 아이디어 차원의 미미한 수준의 접근만 있었다. 한마디로 참고할 만한 사례가 드물었다. 특히 프로젝트학습 사례로 국한하여 볼 때 게임화를 시도한 경우는 전무했다(지금도 역시 관련 사례나 연구를 찾아보기 힘들다). 어찌보면, 무모한 도전일 수 있지만, 기존에 실천해 왔던 프로젝트학습에서 나타난 재미를 해부하고, 이를 바탕으로 각각의 재미요소를 활성화시킬 수 있는 게임의 조건들을 접목시키기 위한 본격적인 실천을 감행했다. 그리고 마침내 여러 시행착오를 겪은 끝에 실험적인 첫 현장 적용이 2011년 대학강단에서 이뤄졌으며, 이후 초등학교 교육현장을 중심으로 중학교와 고등학교, 대학 (원)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시도하게 되었고, 시도되고 있다.
이 책은 프로젝트학습의 재미를 해부하고, 게임을 더하여 완성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이야기의 힘은 우리나라 교육현장을 무대로 적용한 실제 프로젝트학습 사례에 있다. 이들 사례들은 필자에게 있어서 진지한 재미와 열정으로 빚어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들이기도 하다. 본문의 내용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PART 01. 프로젝트학습, 그냥 시작하면 된다」는 제목 자체가 말해주듯 시작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벌였던 교실 속 작은이야기들을 비롯해 가정에서 어린 자녀와 함께 했던 박물관수업, 그리고 대학에서의 첫 프로젝트학습 등에 이르기까지 미숙한 초보시절의 좌충우돌 프로젝트학습 도전기가 담겨 있다. 시작이 절반이라는 말, 프로젝트학습에서도 틀린 말이 아니다. 실천의 양이 늘어날수록 프로젝트학습의 진정한 맛도 알게 되는 법이다.
이어서 「PART 02. 프로젝트학습, 재미와 만나다」는 7년 동안(2005년-2011년) 프로젝트학습에 참여한 학생들이 들려주고자 한 재미가 무엇인지 그들의 시각이 담긴 글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더 나아가 어렵고 힘든 학습 과정이 어떻게 재미로 수렴될 수 있는지, 프로젝트학습에서 만나게 되는 ‘세 가지 재미(3S-Fun)’의 정체가 과연 무엇인지 자세히 확인해 볼 수 있다. 재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는 것만으로도 우리의 교육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
「PART 03. 프로젝트학습에 게임을 더하다」에서는 프로젝트학습이 재미에 조건화된 환경을 갖추기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게임의 요소를 프로젝트학습에 어떻게 반영해야 하는지 체계적인 절차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무엇보다 ‘Gamification PBL’을 구현하기 위한 핵심 개념과 설계 노하우를 실천 사례를 들어 풍부하게 설명하고 있다. 더불어 열정적인 동반자가 되어 준 초·중등 선생님들과 함께했던 다채로운 프로젝트학습 사례를 포함해 학교라는 울타리를 넘어선 새로운 시도까지 재미와 게임으로 빚어낸 따끈따끈한 보물들이 잔뜩 공개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PART 04. 공부더하기: 재미란 무엇일까?」는 재미에 대한 보다 깊이 있는 이해를 돕기 위해 각기 다른 분야를 출발점으로 삼고 있는 관련 이론을 소개하고 있다. 학습에 있어서 재미가 갖는 의미를 다양한 관점을 통해 조망해 봄으로써 독자를 향해 재미에 대한 진지한 물음을 던지고자 하였다.
필자가 프로젝트학습을 학교현장에 적용한 지도 어느덧 십수 년이 흘렀다. 대학시절, 프로젝트학습과의 운명적인 만남, 교생실습에서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했던 허접한 수준의 수업시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면 꽤나 오랜 세월을 함께해 왔다. 그리고 그 긴 세월 동안 지치지 않고 갈 수 있었던 것은 참여한 학생들이 보여준 기대 이상의 반응과 감동적이고 놀라운 변화 덕분이었다. 또한 그보다 더 오랜 세월을 흔들림 없이 이 길을 걸어왔던 훌륭한 스승이 곁에 있었기에 가능했다. 어떤 체계도 뚜렷한 관점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이것저것 시도만 하려 했던 자기 열심만 충만한 풋내기 초보교사의 멘토(mentor)이며 퍼실리테이터(facilitator), 때론 안내자, 동료학습자로서 든든하게 동행해 주셨다. 이 책의 내용들은 기본적으로 필자의 스승인 경희대학교 강인애 교수님과의 동행에서 빚어낸 의미 있는 성과들을 토대로 발전시킨 것임을 밝힌다. 아울러 재미와 게임으로 빚어낸 신나는 프로젝트학습을 구현하기 위해 열정으로 똘똘 뭉친 재미교육연구소(잼랩) 연구원들이 곁에서 함께해 주고 있다. 다르게 생각하고 새롭게 접근하는데 주저함이 없는 그들 덕분에 혼자서는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도전적인 일에 기꺼이 뛰어들 수 있었다.
나는 직감과 직관, 사고 내부에서 본질이라고 할 수 있는 심상이 먼저 나타난다. 말이나 숫자는 이것의 표현수단에 불과하다. _Albert Einstein
프로젝트학습을 통해 학생들이 공부의 재미에 푹 빠지도록 만들어보자! 지금부터 말과 숫자로 가득한 수단에 불과한 교육이 아닌, 직감과 직관이라는 ‘날줄’과 심상이라는 ‘씨줄’로 아름답게 엮어가는 창조적인 학습과정을 구현해 보는 것은 어떨까. 즐겁고 재미있는 교실이, 신나고 행복한 학교가 실천 없는 구호가 되지 않도록 우리의 교육현장부터 확 바꿔보자! 명심하자! 공부는 노력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것을…, 마음이 뜨거워지고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이 절호의 실천 기회일 수 있다.
아무쪼록 이 책이 갈급한 독자들에게 의미 있는 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Serious Fun! Serious Play! 프로젝트학습을 통해 진지한 재미환경을 만들어보자! 주저하거나 망설일 필요가 없다. 프로젝트학습, 그냥 시작하면 된다.
---「머리말」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