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의 인물 설정과 관련하여, “『토지』는 역사소설을 표방하면서도 역사가 단지 배경으로만 그려지고 있을 뿐, 뚜렷하게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 부각되거나 역사적 인물이 조명되지 않는다.”는 지적에 작가 박경리는 다음과 같이 응답한다.
“제 소설을 두고 역사를 많이 운운하지만 작가의 입장에서 저는 작품을 쓸 때 미리 어떤 역사적인 사실을 전제해 두고 거기에 개인을 맞추어 넣지는 않아요. 왜냐하면 저는 역사가도 아니고, 사상가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 하나하나의 운명, 그리고 그 사람의 현실과의 대결을 통해서 역사가 투영됩니다. 열 사람이면 열 사람, 백 사람이면 백 사람을 모두 이렇게 주인공으로 할 경우 비로소 역사라는 것이 뚜렷이 배경으로서 떠오르게 되지요.”
인물열전의 기획은 여기서부터 출발하였다. 나름의 존재값을 지닌 “사람 하나하나의 운명”, 그들을 중심으로 『토지』를 읽어볼 수는 없을까? 『토지』는 명시적으로 1897년에서 1945년까지를 시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안에서 치열한 삶을 살다가 죽어간 인물들의 못다 한 이야기는 무엇일까? 또 이전에 태어나 그 이후에도 살아갈 그들의 운명은 어떤 모습일까? 작품이 준 단서를 토대로 『윤씨부인傳』, 『임이네傳』, 『주갑이傳』을 구상해 보는 것은 어떨까?
--- 「머리말」중에서
드라마로 먼저 『토지』의 서사를 접했던 사람들이 소설을 읽으며 당혹스러워하는 부분 중의 하나는 별당아씨의 존재감이 드라마에 비해 매우 미미하다는 사실입니다. (…) 이에 비해 20권이나 되는 방대한 분량의 원작 소설 『토지』에서 현재진행형인 별당아씨의 목소리는 단 한 번도 들을 수 없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오직 서희와 구천(김환)의 회상 혹은 꿈을 통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녀에 관련된 모든 정보는 주로 소문을 통해 주변 인물들의 목소리로 제시됩니다. 기억, 꿈, 소문이 갖는 불확실성, 게다가 그조차도 분량이 많지 않다보니 별당아씨의 서사가 소설 속에서 차지하는 물리적 자리는 생각보다 크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녀에 대한 기억과 행적은 『토지』의 주요 인물인 구천과 서희에게 상처와 치유, 사랑과 자유에 대해 재고해 보게 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토지』 안에서 존재감은 작지만 강렬한 인상으로 남게 되는 주요 인물 중 한 사람으로 별당아씨를 꼽을 수 있습니다.
--- 「꽃이 아니라 새(鳥)로 태어날 거요: 별당아씨 이야기」중에서
‘구천이’라는 이름은 불교적 인유(allusion)로, 우관선사의 조카로 태어났다는 인연과 연결된 명명이다. 구천(九天)은 불교에서 말하는 ‘대지를 중심으로 하여 그 둘레를 돈다고 가정한 9개의 별’을 뜻하며, 우주의 무한함을 깨닫고 인간은 한 미물에 불과하다는 자각에 이르도록 하는 불교의 우주관이 스며있는 개념이다. 김환은 인간 사회의 금기의 영역을 침범하여 파괴함으로써 일평생 죄의식을 안고 살아가야 하는 운명에 사로잡힌 존재의 그늘을 나타낸다. 그는 비극적 삶이 펼쳐내는 일상의 고뇌에 대해 생의 깊은 연민을 깨닫고, 궁극적으로 불교의 대자대비의 사상을 작품 속에서 구현해나가는 인물이다.
--- 「한(恨)과 생명의 대자대비(大慈大悲): 구천이 이야기」중에서
『토지』에 대한 몇 가지 독법이 가능하다. 그중 하나는 〈인물열전〉처럼, 인물들이 맺고 있는 관계의 망(網)을 통해 감상하는 것이다. (…) 포스터의 인물론을 『토지』에 대입시켜 분석한 권택영에 따르면, 서희와 길상은 입체적 인물이고, 조준구를 비롯한 악역들은 평면적인 인물들로 분류된다. 서희의 경우를 보면, 조준구에게 모든 것을 빼앗긴 뒤 자기 것을 되찾기 위해 복수의 일념이라는 단면적인 면모에서 여러 장애와 시험을 극복하고 오랫동안 대적해온 조준구를 파멸에 이르게 함으로써 유한한 인간으로서의 덧없음과 삶의 회의를 느끼는 입체적인 면모로 변화된다.
--- 「순종과 순정 사이, 어떤 사랑의 역사: 봉순이(기화) 이야기」중에서
대표: 선생님은 나눠 쓴다고 하셨지만 서희도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동화 『토지』를 보면 서희처럼 불쌍한 아이가 없는 거 같아요. 아버지는 살해당하고 어머니는 다른 남자랑 도망가고 믿고 의지했던 할머니는 호열자(콜레라)로 잃고, 전 서희를 생각하면 지금도 눈물이 나거든요.
조준구: 그야 서희 팔자가 억세서 그런 거지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냐? 난 그저 어린 서희를 잘 돌봐주려고 했는데 서희가 그 일당과 간도로 도망친 거고 난 그저 남은 재산을 많이 불려주려고 했던 거지. 내가 어린 서희의 재산을 탐낸 건 아니었단다.
대표: 우리 할머니가 말씀하시길 ‘사람은 부끄러움을 알아야 하고 잘못을 저질렀으면 반성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셨어요.
조준구: 그래서 넌 내가 지금 부끄러움도 모르고 잘못도 반성할 줄 모르는 몰염치한 인간이란 뜻이냐? 어린아이가 아주 맹랑하구나. 나의 부끄러움이라고 하면 단 한 가지 장애인 아들을 둔 점이라고나 할까. 나도 내 인생을 당당히 살았을 뿐 뭐 부끄러울 건 없다.
대표: 여기까지 나오셔서 이렇게 하시면 인터뷰가 안 되지요. 성의껏 말씀해주세요. 잠시 휴식하겠습니다.
--- 「욕망대로 살다가 요지경이 된 인생: 조준구 이야기」중에서
마지막으로 작가님께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에 다소 허물어진 모습을 보이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사내답고 배짱 두둑하면서도, 저돌적으로 목표를 향해 내달리면서도 냉철해야 할 때는 또한 얼음처럼 차가울 수 있는 멋진 사내로 저를 그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장돌뱅이와 과부 사이에서 태어났고 어려서 부모를 잃고, 의병과 화적패를 거쳐 또한 백정의 사위로서 신산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지만, 윤보, 용이, 영팔, 길상, 석이, 홍이 같은 좋은 선배, 친구, 후배를 만나 의로운 길로 들어섰고 마지막까지 조국과 동포들을 위해, 그리고 나 자신을 위해 뜻있고 면목 서는 일을 하다가 죽었으니 제가 유서에 밝혔던 것처럼 여한이 없다 하겠습니다. 정말 괜찮은 삶을 산 셈이지요. 살아남은 자들이 저의 빈 자리를 그토록 크게 느꼈다니 고마울 뿐입니다.
--- 「“이만하믄 괜찮기 살았다”: 송관수 이야기」중에서
아주 쉬운 예를 들어보자. 어느 소설가가 한 마을의 이야기를 다룬다고 할 때, 과연 그 마을 이야기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어느 특정 사건만을 다룬다면 특정한 주인공이 등장하겠지만, 마을 사람들의 삶 전체를 다룬다고 할 때 특정한 주인공을 내세우기 어려울 것이다. 마을 사람들 누구나가 등장인물이며 주인공이다. 그런 점에서 『토지』에 주인공이 없다는 말은 누구나가 주인공이라는 뜻을 함의하고 있는 것이다. (…) 이 글에서는 어쩌면 사소한 주변 인물일지도 모르는, 그러나 매우 흥미롭고 다채로운 캐릭터를 보여주는 주갑이를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소설 읽기에서 한 인물에 주목할 때 그 즐거운 ‘미독(味讀)’의 느낌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글의 전반부에서는 주갑이의 행로를 따라가며 그의 면모를 살피고, 후반부에서는 카잔차키스가 그려낸, 자유인의 표상으로 여겨지는 ‘조르바’와도 견주어 보려고 한다.
--- 「무욕(無慾)의 자유인: 주갑이 이야기」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