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부산에서 태어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과 예술대학원을 졸업했다. 1989년 "문학과 비평"에 시가, 199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희곡이 당선되었다. 1996년 "문학과 사회" 봄호에 『단 한편의 연애소설』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저서로는 시집 『치명적인 것들』, 소설집 『단 한편의 연애소설』,『소년 소녀를 만나다』등이 있다.
정수가 총을 맞고 들어온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의 잠은 길고 깊었다. 이제는 그녀의 몫이다. 그는 당분간 일어나지 못할 것이다. 어쩌면 죽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불 꺼진 방을 쳐다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둠만이 여기 있다. 그녀는 그걸 느낀다. 어둠이 몸 속으로 스멀스멀 파고드는 것을, 어둠은 고요하게 그녀의 몸을 점령한다. 피부의 껍질들을 벗기고 세포 하나하나에 먹을 입힌다. 그녀는 목을 뒤로 젖힌다. 아, 이제 어둠의 물이 그녀의 몸을 완전히 적신다. 그녀는 어둠 깊이 들어가 눕는다. 이미 어둠 건너편에 가서 누운 그의 곁으로 점점 다가간다. 시간이 그녀의 허리 근처를 스쳐지나간다. 이대로 수십 년 동안 잠들었다가 문득 깨어나 이 짙은 어둠을 한번 쓱 돌아보고는 다시 깊이 잠들었으면, 수천 년 우주의 잠을 이 몸으로 겪어내보았으면.
그녀는 새벽에 그를 병원으로 옮겼다. 응급실에 들어가자마자 침대에 그를 눕히고 커튼을 쳤다. 그녀는 총을 젊은 의사의 머리에 대고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총을 맞았어. 응급 처치만 해. 경찰에 불면 넌 죽어. 여기도 쑥밭이 되고. 간호사 한 명과 너만 여길 들어오는 거야. 자, 알았지? 조용히 조심조심. 오케이?"
---pp.123~124
세상에는 어둠과 빛, 삶과 죽음, 시간의 흐름과 멈춤, 존재하는 것과 존재하지 않는 것, 뭐 이런 것들과 그것들의 경계가 있다. 그리고 가끔은 그 경계로 가서 겹쳐지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경계는 비좁지 않고 늘 풍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