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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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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13년 05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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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기기 크레마,PC(윈도우 - 4K 모니터 미지원),아이폰,아이패드,안드로이드폰,안드로이드패드,전자책단말기(저사양 기기 사용 불가),PC(Mac)
파일/용량 EPUB(DRM) | 0.61MB ?
글자 수/ 페이지 수 약 15.9만자, 약 5.1만 단어, A4 약 100쪽?

소개 책소개 보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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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란한 갈채와 함께 커튼콜을 마치고 무대를 내려오는 유현의 발걸음이 휘청거리고 있었다. 하지만 금방이라도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미친 듯이 뛰고 있는 심장 때문에 거기까지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그녀였다. 틀림없었다. 어둡긴 했어도 그녀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객석에 앉아 있던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유현은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지는 것 같았다. 상대 배우가 노련하게 받아주지 않았더라면 넋 없이 그녀를 바라보다가 대사를 놓쳐 버리는 실수를 저지를 뻔했다.
어떻게 연극이 끝났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무대 뒤 분장실로 돌아온 유현은 멍하니 앞에 놓인 거울을 들여다보았다. 흥분으로 반짝이는 눈동자와 붉게 상기된 얼굴이 막 끝난 연극에 대한 여운만이 아닌 것은 확실했다. 서둘러 무대의상을 벗고 청바지와 셔츠로 갈아입고 나자 코디가 분장을 지우기 위해 다가왔다. 하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던 유현은 손에 잡히는 대로 야구모자를 푹 눌러쓰고는 분장실을 나섰다.
“강유현 씨, 분장 지우고 나가셔야죠!”
황당해하는 코디의 목소리가 등 뒤로 들려왔지만 이미 유현은 분장실을 나서고 있었다. 복도를 지나 로비로 통하는 문을 열고 나가자 아직 돌아가지 않았던 관객들 몇 명이 유현을 알아보고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아직 최고라고는 할 수 없을지 몰라도 유현은 꽤나 인기 있는 배우였고, 그를 보기 위해 몰려든 팬들로 연극은 연일 매진이었다. 그는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둘러싸였다. 대중들의 관심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것이 무대에 서는 배우들의 운명이었고, 유현도 자신을 향한 팬들의 사랑에 늘 감사하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관심이 거추장스러웠다. 습관적으로 미소를 지으며 자신의 앞에 내밀어진 종이를 받아 들고 사인을 하면서도 유현의 눈은 쉬지 않고 극장 로비를 둘러보고 있었다. 쉽사리 그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초조해질 때쯤 화장실 쪽에서 통화를 하며 천천히 걸어나오는 그녀의 모습을 발견했다. 유현의 입가에 안도의 미소가 걸렸다. 출입문을 나서는 그녀를 보자 유현의 마음이 조급해졌다. 만약 이번에도 그냥 보내 버린다면 앞으로 두 번 다시 그녀를 만날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밀려왔다.
“죄송해요. 제가 좀 급한 일이 있어서요.”
앞을 막아서는 사람들에게 미소로 양해를 구하면서 그는 서둘러 뒤쫓아갔다. 간신히 막아서는 사람들을 헤치고 밖으로 나온 유현은 주차장 쪽으로 향하고 있는 그녀의 뒷모습을 발견하고 걸음을 서둘렀다. 커다란 보폭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자 어느새 그녀와의 거리는 좁아져 갔다. 열 걸음, 아홉 걸음, 여덟…….
그때였다. 한줄기 바람과 함께 무언가 하늘하늘한 것이 유현의 눈앞으로 날아왔다.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어 날아온 그것을 잡아챘다. 스카프였다. 바람에 실려 온 얇은 실크 스카프에서는 옅은 제비꽃 향이 묻어났다가 금세 사라졌다. 손에 들린 스카프를 바라보며 눈을 끔벅이던 유현이 바람이 불어온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당황한 표정의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한순간 두 사람을 제외한 세상의 모든 것이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천천히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유현은 자신이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들었다. 다섯, 넷, 셋, 둘, 그리고 그녀가 유현의 앞에 섰다. 믿어지지 않았지만 손을 내밀면 닿을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에서 그녀가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스카프, 고마워요.”
“아!”
그제야 정신을 차린 유현이 손에 쥐고 있던 스카프를 내밀었다. 막 스카프를 건네주려던 유현이 갑자기 스카프를 쥔 손을 당겨 거둬들이자 그녀의 눈이 커졌다. 의아한 눈동자가 유현을 쳐다보았다. 말갛게 투명한 눈빛을 마주하자 유현은 미소를 지었다. 이 눈동자를 마주 보기 위해서 도대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인지 그녀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이 스카프, 비싼 겁니까?”
“네?”
“이거, 소위 말하는 명품, 뭐 그런 겁니까?”
“아! 뭐, 그렇게 비싼 건 아니지만 내가 좋아하는 스카프이긴 한데…….”
유현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표정이 번졌다.
“다행이네요. 그럼 내가 이걸 잃어버리지 않도록 잡아준 대가로 차 한 잔 정도는 같이 마실 수 있겠네요. 이런 말은 잃어버려도 상관없는 것보다는 소중하게 여기는 걸 돌려주면서 하는 게 훨씬 효과적일 테니까요.”
마치 난해한 전공서적을 이해하려는 사람처럼 눈을 깜박이던 그녀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함께 차를 마시자는 뜻인가요?”
유현이 머리를 끄덕였다.
“맞아요. 지금 커피를 한 잔 사달라고 말하는 겁니다.”
눈을 가늘게 뜨고 유현을 쳐다보던 그녀의 입매가 스르르 말려 올라갔다.
“곤란한데요.”
그녀의 거절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지라 유현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분장을 지우고 온다면 커피 한 잔 정도는 같이 마셔도 좋을 것 같아요.”
그녀가 손가락으로 얼굴을 닦아내는 시늉을 하자 유현은 그제야 자신이 분장도 지우지 않은 채 그녀를 찾아 나섰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
그녀의 말을 이해한 유현이 머리를 끄덕였다.
“여기 건너편에 미뉴에트라는 카페가 있어요. 그곳에서 잠시만 기다려 주면 금방 갈게요.”
유현을 향해 미소를 짓는 그녀의 눈꼬리가 부드럽게 휘어졌다. 그때와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그 눈웃음을 보자 갑자기 십여 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김선우.”
미뉴에트를 향해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유현의 입에서 나지막한 이름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유현은 그 자리에 서서 쳐다보았다. 어디선가 불어오는 부드러운 바람에 첫사랑처럼 아련한 제비꽃 향기가 희미하게 실려 왔다. 가만히 눈을 감은 유현은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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