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하나의 결말일까.
어제의 죽음과 이 모든 일의 처음에 ‘그 사건’이 있었다.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든 ‘젤리 살인사건’.
일 년 전 내가 재판한 사건이었다. --- p.20
검찰이 제출한 증거는 진단서, 사망진단서, 구급활동일지, 진료소견서, 간호기록지, 응급임상사본, 은행거래내역, 보험청약서, 보험계약변경서, 입출급내역, 사고현장사진, 통화내역, 통화역발신추적, 모텔객실사진, 감정의뢰회보 등이었다. 꽤 많은 증거가 제출되었음에도 정작 지문이나 DNA, CCTV 같은 직접증거는 전혀 없었다. 흉기도 특정되어 있지 못했다. 다 변죽을 울리는 자료뿐, ‘죽음의 순간’에 무슨 일이 있었나를 말해주는 증거가 없었던 것이다. --- p.35
“혹시 그 외에도 비구폐색 살인이면서 흔적이 남지 않을 가능성은 없습니까?”
“피해자가 만취 상태이든가 해서 반항이 약해진 경우라면 흔적을 남기지 않고도 살해할 수 있습니다.”
“술에 취해 곯아떨어졌다면 코와 입을 막아도 반항이 없으니 흔적이 남지 않을 수 있단 거군요.”
“그렇습니다.”
이준호가 주량을 넘게 술을 마셔서 정신을 거의 잃은 상태였다는 게 검찰의 일관된 주장이었다. 검찰은 드디어 만족할 만한 증언을 손에 넣은 것이다. --- p.89
“피해자가 반항하기 때문에 상처를 남긴다는 말씀인데요, 만약에 피해자가 술에 완전히 취해 인사불성이라면 흔적을 남기지 않고 질식사시킬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죠.” --- p.96
어쨌든 재판은 끝났다. 내 결정을 굳힐 자료도, 의심을 지울 자료도 이 절차 안에서는 더 추가할 기회가 없다. 가끔은 끊어진 길 위에 서 있는 것 같다. 완전하지 않은 재료로 완전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 p.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