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지금도 사람은 부족한 대로 만족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이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안다.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긴 했지만 말이다. 나는 아직 이 집에 살고 있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과 가장 불행했던 순간이 남아 있는 집이다. 옥탑방은 따뜻하다. 지금은 겨울이니까. 아래층 식탁에 숟가락 올려 놓는 소리가 들린다. 밥 먹자! 엄마가 내 방을 향해 크게 소리친다. 나는 얼른 넷, 대답하곤 쿵쾅쿵쾅 계단을 뛰어내려간다.
그가 전화를 해주었으면, 하고 기다릴 때가 있다. 나의 코끼리 이야기를 이해해주고 귀 기울이는 사람은 그밖에 없으니까. 나는 수화기를 붙잡고 코끼리 얘기만 갖고도 한 시간쯤은 수다를 떨 수 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지 않는다. 그래도 보이는게 있다. 이따금씩 집이 꿈틀, 움직일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아, 코끼리가 왔구나, 짐짓 생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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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전화를 해주었으면, 하고 기다릴 때가 있다. 나의 코끼리 이야기를 이해해주고 귀 기울이는 사람은 그밖에 없으니까. 나는 수화기를 붙잡고 코끼리 얘기만 갖고도 한 시간쯤은 수다를 떨 수 있다. 이제 나는 더 이상 사진을 찍지 않는다. 그래도 보이는 게 있다. 이따금씩 집이 꿈틀, 움직일 때가 있다. 그러면 나는 아, 코끼리가 왔구나, 짐짓 생각하는 것이다.
"조경란은 사건의 진행이나 행동을 중심으로 한 줄거리 이야기보다는, 슬그머니, 그것들을 둘러싼 정황, 그것들을 당하고 겪으며 치르게 되는 자리의 분위기, 사건의 느낌, 행위의 내면, 반응의 기미들로 우리의 관심과 궁금증을 미끄러트린다. 중요한 것은 줄거리가 아니라 그것들에 관한 이야기 속에, 마치 짧은 스웨터 틈으로 살짝 보이는 배꼽처럼 그 모습을 가림으로써 비밀스레 드러내는 진정한 주제라는 것을, 그것이 우리를 감응시킨다는 것을 그녀는 방법적으로 제시해준다. 이는 활달하면서도 자재로운 그녀의 독특한 문체에서 먼저 피어난다." --- 김병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