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의 일상이 끝났다. 어제보다 더 피곤하지도 덜 피곤하지도 않은 하루 근무를 끝내고 귀가해 별스러울 것 없는 일로 작은 집안을 서너 바퀴 돌고 나면 어느새 늦은 밤이 되어 있다. 제대로 듣지도 않으면서 건성으로 켜놓았던 텔레비전의 웅얼거림이 어느 순간 멎으면 정수는 끙 소리를 내면서 일어나 퍼즐 판이 놓여 있는 거실 구석에 켜진 집중 조명 속으로 퇴거한다. 그는 빛 속에 갇히고 소파에 앉아 있는 내 가슴은 바로 그때부터 정체 불명의 고통으로 조금씩 조여 온다. 나는 천천히 일어선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의자에 걸쳐놓은 상의를 집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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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녀 앞에서 장난으로, 소위 군기가 담뿍 들어가 음절이 나누어지지 않은 동물의 소리 같은 말을 내지르면서 군대식 경례를 올려붙였을 때, 그토록 짧은 기간 동안에 형성된 군대식 은어와 군대식 몸짓이 마치 생래적인 어떤 것처럼 너무도 자연스럽게 뛰어나왔을 때, 그녀는 그것이 재미있지 않았다. 그녀는 호들갑스럽게 웃어줄 수가 없었다...그의 것이 되어버린 부대안의 반복적이고 고달픈 일상의 경영에 대해 쌍소리를 처음 배우는 소년처럼 작은 흥분을 담아서 말하는 그를, 그녀는 물끄러미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