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핵심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관계 맺기, 나와 상대를 모두 보호해주는 적정 거리를 유지하는 능력입니다. 그를 위해 여러분에게 애착, 자립, 자존감 향상에 관한 기본욕구가 타인과 관계를 맺을 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설명하려고 합니다. 이 기본욕구들을 대하는 태도는 ‘나는 누구인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이며, 그를 어떻게 대하는지’, ‘나는 관계에서 어떤 두려움이 있고 그 속에서 스스로를 어떻게 방어하는지’, ‘나는 과연 내가 원하는 모습을 실현해가고 있는지 아니면 타인의 시선 때문에 주저하는지’, ‘무엇에 이끌리고 무엇을 밀어내는지’, ‘무엇 때문에 싸우고 어떤 지점에서 타협하는지’ 등을 포함한 많은 것들을 근본적으로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 p.11
많은 사람이 자신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일을 부담스러워합니다. 감정을 억제하고, 욕구를 덜 말하고, 요구되는 역할을 받아들이고, 갈등을 피하고, 문제들을 보이지 않게 덮어둠으로써 자신의 일부를 감춥니다. 상대방과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느끼지 않으며, 어떤 식으로든 상대방보다 낮은 위치에 있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됩니다. 상대보다 낮은 위치에 있다고 느끼면 그 관계에 굴복하거나 도망치는 게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러나 순응은 굴복과 늘 함께 붙어다녀, 나보다 강해 보이는 상대방의 기대를 충족시키도록 만듭니다. 바꿔 말하면 우리는 애착욕구를 좌절시키지 않기 위해 자율성의 일부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 p.32
우리에게는 자신에게 결여된 것을 상대에게서 찾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더 나은 반쪽’을 찾으려는 것이지요. 그러나 상대를 통해 자신의 부족한 점을 채우거나 개선하려는 이런 시도는 대부분 당사자도 의식하지 못한 채 내면의 아이가 상대를 찾는 과정에서 적극적인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그 아이는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싶어 합니다. 율리아의 경우 이 상처가 부모님에게서 혼자 남겨진 것에서 생겼다면 로베르트의 경우는 반대로 엄마의 집착 때문에 깊이 남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에 좋지 않았던 기억을 현재 만나는 상대와의 관계에서 회복해보려는 시도가 성공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내면의 아이를 치유하는 일은 자기 자신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가 건강해질수록 현재의 내가 관계 형성에 수월한 사람이 되고, 자신에게 잘 맞는 상대를 한결 쉽게 찾아낼 수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현재의 관계를 정리해야 할 수도 있고, 그런가 하면 지금 관계의 소중함을 더욱 절실히 느끼고 함께 사랑하는 법을 배울 수도 있습니다.
--- p.40
여러 치료 사례들을 경험하다 보면 자신의 부모와 유년기를 솔직하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유난히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부모에게 현재의 문제점에 대한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지니고 있는 각인과 여러 조건을 이해하기 위한 일입니다. 이런 것에 대한 이해 없이는 스스로를 알 수 없고, 자신의 각인에 대한 자각 없이는 그 각인을 변화시킬 수가 없습니다. 인생의 중년이나 노년에 이르러서야 어린 시절을 현실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오랫동안 자신의 어린 시절이 대체로 불행했다는 것을 회피하며 살아왔습니다. 자신이 썩 괜찮은 유년시절을 보냈다고 믿어온 것이지요. 과거를 떠올리면 오직 즐거웠던 순간과 이미지들만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과거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을 때, 실은 내면 깊은 곳에서 외롭고 이해받지 못한다는 느낌을 받았거나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완전히 제쳐두고 살았던 것을 부정할 수 없었습니다. 아름다운 순간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그리고 부모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 말이지요. 돌아보면 아름다운 어린 시절이란 자기기만일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단 자신의 과거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 뒤에야 스스로를 이해하고 자신만의 심리적인 프로그램을 발달시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분별을 통해 당사자는 성인으로서의 현재 상황에 더 적합한 새로운 프로그램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내면의 설정을 새롭게 함으로써 나를 압박하던 현재의 관계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삶을 더 행복하게 다듬어 나갈 수 있게 됩니다.
--- p.82-83
거의 모든 사람이 순응하려는 방어기제나 자율적인 방어기제 중 하나에 더 가까운 경향을 보입니다. 문제는 방어기제가 너무나 압도적인 위력을 발휘함으로써 애초에 방어기제가 작동하게끔 했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문제를 악화시키거나 또는 새로 만들어내기까지 하는 경우입니다. 방어기제는 우리의 태도를 표현함으로써 인간관계에 짐이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상대를 늘 뒤따라 다니며 잔소리해서 통제권을 행사하려고 하면, 상대는 매우 스트레스를 받고 화를 내는 것으로 반응할 것입니다. 만일 늘 조화로운 관계를 추구하는 사람이어서 관계를 위해 희생하기만 한다면, 장기적으로 정작 그 관계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해 어떤 경우에는 그 관계를 끝내게 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완벽주의로 자기 자신을 착취해 결국 최악의 경우에는 번아웃 현상까지 경험하는 상황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 p.137-138
상대방에게 순응하려는 경향이 너무 강해서 자율성의 근본적인 부분을 희생시킬 수밖에 없게 되면, 그것은 더 이상 건강한 범주의 순응이 아니고 방어기제의 영역에 속합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방어기제의 대부분은 어린 시절에 발달합니다. 특히 아동기에 부모와의 관계를 좋게 하기 위해 효과적인 해결방안들을 찾는 과정에서 생겨납니다. 그렇게 생성된 것이 무의식중에 어른이 될 때까지 유지되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 맺는 관계에 짐이 되는 방해 프로그램이 발달하게 됩니다. 외적인 조건들은 달라졌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이제 어른이 되었고 더 이상 부모 에게 의존적인 어린아이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 내면의 그림자 아이는 달라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지나치게 상대방에게 자신을 맞추면서도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데, 이미 그런 패턴에 익숙해졌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이 이미 스스로를 자기의 그림자 아이와 완벽하게 동일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가 된다는 두려움으로 행복한 순간이 거의 없는 관계 안에 붙잡혀 있습니다.
--- p.145-146
우울 성향을 가진 사람이 관계에서 보일 수 있는 또 다른 문제는 스스로의 감정이나 욕구를 제대로 알지 못해서 생기는 진실성의 부족과 갈등 회피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친밀감에 대한 자신의 욕구에 관해서는 상대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 욕구 자체를 별로 내보이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도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는 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적극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상대가 알아내주기를 기대합니다. 자신이 상대방에게 그렇게 해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이 기대를 충족시켜주지 못할 때, 자신이 관계에서 중요한 존재가 아닐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가끔은 불평도 하고 하소연도 해보지만 이들에게는 자신이 원하는 것이나 욕구를 적절하고 성숙한 방식으로 상대에게 전달하는 것이 너무나 어렵습니다. 그런 식으로 우울 성향의 사람들 내부에서 점점 냉정한 분노가 쌓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 p.1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