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은 다른 학문과는 달리 ‘고유명사’의 학문입니다. 수많은 시인과 철학자들은 자기만의 목소리로 무엇인가를 노래하거나 논증합니다. 그들의 시와 철학에는 유사성은 있지만 공통점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습니다. 김수영의 시와 신동엽의 시, 그리고 바흐친의 철학과 바르트의 철학이 유사하지만 미묘하게 차이가 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시인과 철학자는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는 데 성공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수많은 시인과 철학자들의 궁극적 유사성은 바로그들이 자기만의 제스처와 스타일을 완성했다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시와 철학을 읽는다는 것은 우리도 그들처럼 자기만의 목소리를 내려고 노력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겁니다. 이것이 바로 인문정신의 소망입니다. --- pp.17~18「프롤로그」중에서
클라스트르는 권력, 즉 국가 기구를 막지 못하면서 억압과 지배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국가에 애써 대항하려고 했던 사회’에서는 불가능한 지배자와 피지배자, 혹은 주인과 하인이란 위계성이 등장한 겁니다. 그것은 자유롭고 평등했던 인간적 공동체, 즉 진정한 문명을 지향했던 ‘자유로운 공동체’가 하나의 전설로 남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의 정식처럼 등장하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이란 해묵은 분업 논리가 국가의 효율성을 정당화하는 원초적 담론으로 출현한 것도 바로 이때부터일 겁니다. --- p.167 「신동엽과 클라스트르」중에서
헤겔처럼 세계정신이 역사를 끌고 가는 것도 아니고, 스탈린이 이야기한 것처럼 생산력이 역사를 끌고 가는 것도 아닙니다. 오직 인간만이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갑니다. 마르크스의 영민함은 “인간은 자신의 역사를 만들어가지만, 자신이 바라는 꼭 그대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라는 주장에서 드러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간혹 ‘대상적 활동’이 가진 능동성을 포기하려는 유혹에 노출되곤 합니다. 뜻대로 안 된다면, 주어진 상황을 능동적으로 극복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고 절망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모든 죽은 세대들의 전통은 악몽과도 같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머리를 짓누른다”라고 마르크스가 말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