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의 시대는 갔다. 이제는 설득의 시대다. 오늘을 사는 햄릿들에게는 ‘사느냐 죽느냐’가 ‘설득하느냐 못하느냐’로 바뀌었다. 직장, 학교 그리고 가정에서 상대를 설득할 수 있으면 당신은 성공하고 행복해질 것이다. 문제는 어떻게 하면 상대를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느냐는 것인데, 그 답은 논리에 있다. 알고 보면 설득이란 논리라는 나무에서 열리는 달콤한 열매에 불과하다. 그런데 잘못된 생각이 여전히 떠돌고 있다. (……) 논리학이란 강력하면서도 지속적인 효과를 내는 설득의 도구다. 논리는 합리적인 정신 활동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원래 타인에게 설득되는 것에 유쾌해하지 않는 존재다. 그러나 그 이유가 합리적이고 정당할 때는 설득됐다 하더라도 최소한 불쾌하지는 않다.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할 필요도 없다.
---「초판 서문. 논리 고수들, 설득 클럽으로 모이다」중에서
예증법의 강점은 뛰어난 설득력에 있다. 창조론에 관한 그 어떠한 신학과 철학 이론도 페일리의 논증보다 간단하고 강렬하게 사람들을 설득시킬 수 없다. 아홉 개의 복잡한 설명보다 한 개의 적절한 예가 더 강한 설득력을 가지는 셈이다. 그런 탓에 예증법은 고대부터 뛰어난 웅변가나 설교자, 정치인 그리고 학자들의 사랑을 독차지해왔다.
---「아홉 개의 설명보다 한 개의 예를」중에서
우리말로는 흔히 ‘이야기 터’ 또는 ‘말 터’라고 번역되는 토피카는 본래의 뜻이나 용도와는 다르게, 변론이나 연설에서 ‘자주 사용되는 상투어들을 주제별로 모아놓은 자료집’이 되었다. (……) 만일 당신이 말이나 글을 통해 설득력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고 싶다면, 다시 말해 프레젠테이션, 연설, 설교, 토론 등을 훌륭하게 해내거나 뛰어난 논설문을 쓰고 싶다면, 평소에 이런 토피카를 준비해두어야 한다. 그 안에는 다양한 주제의 고사성어, 격언, 사실(史實), 검증된 학설 등은 물론이고 최신 통계 자료도 있으면 좋다. 그래야만 어떤 주제가 주어지더라도 적절하게 사용할 것이 아닌가.
---「토피카를 만들어라!」중에서
토론에서도 이 방법은 유용하게 쓰인다. 이른바 ‘yes-but 화법’이다. 토론을 할 때 상대의 주장을 먼저 부정한 다음 그 이유를 조목조목 밝히는 ‘no-because 화법’은 좋은 게 아니다. 우선 상대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데다 다른 사람의 의견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기의 주장만을 내세우는 독선적이고 비합리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yes-but 화법’은 상대의 주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어느 정도 동조하지만, 그래도 자기의 주장이 옳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에 민주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
---「yes-but 논법」중에서
별안간 당신의 멋진 자동차가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고 해보자. 당신은 우선 보닛을 열고 차 내부를 이리저리 살피며 관찰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스파크 플러그를 새것으로 갈아볼 것이다. 그런데도 시동이 걸리지 않으면 스파크 플러그의 점화 불량은 고장 원인에서 제외한다. 다음에는 시동을 거는 열쇠의 접촉이나 연료 펌프를 살펴볼 수 있다. 아무 이상이 없는데도 작동하지 않으면 이들도 고장 원인에서 제외한다. 당신은 이런 식으로 고장 원인들 가운데 부적당한 것을 찾아내 하나하나 제거해나갈 것이다. 아끼는 오디오가 고장 나도 마찬가지다. 이것이 바로 베이컨이 사용한 ‘제외와 배제’라는 절차가 아니겠는가. 이처럼 아주 간단한 문제에는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베이컨의 방법을 써먹고 있다. 만일 주택 구입이나 대학 입학 지원처럼 다양한 변수들이 작용하는 좀 더 복잡한 문제를 풀어야 한다면(이런 문제들도 종종 우리 삶에 다가온다) 베이컨의 귀납 절차를 차례로 꼼꼼하게 실행해보기 바란다.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장님의 눈을 뜨게 하는 비결」중에서
연역법은 필연적으로 일어날 사실을 알려주고, 귀납법은 개연적으로 일어날 사실을 알려준다. 그런데 가추법은 이미 일어났지만 아직 모르는 사실을 알려준다. (……) 예를 들어 모든 사람이 죽고 A가 사람이면, ‘A는 필연적으로 죽는다’라는 것을 연역법은 알려준다. 그리고 귀납법은 A, B, C, D……가 죽고 그들이 사람이면, ‘모든 사람은 죽는다’라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나 가추법은 다르다. 사람은 모두 죽는데 A의 정체는 모르지만 어쨌든 죽었다면 ‘A는 아마 사람일 것이다’라는 것을 알려준다. 이것이 가추법이 가진 탐구적 또는 추리적 성격이다. 가추법의 바로 이런 성격에 퍼스가 매료된 것이다. 또 그 덕분에 셜록 홈스와 조지프 벨 교수가 명탐정이 될 수 있었다. 이미 일어난 일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알아내려는 탐정들과 과학자들은 언제나 가추법을 사용한다.
---「이 콩들은 이 주머니에서 나왔다」중에서
이와 유사하게 ‘특정한 사안을 보편화하여 대답하는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정부가 장애인의 인권 문제에 무관심하다는 비난을 한다고 하자. 이에 대해 할 말이 없으면, 그동안 정부가 인권 문제 전반에 걸쳐 얼마나 애써왔는지를 늘어놓는 식이다. 이는 정치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술수다. 현대논리학에서는 이런 종류의 술수들을 ‘허수아비 논증’이라고 한다. 상대방의 주장을 쉽게 공격할 수 있도록 왜곡해서 허점이 많은 허수아비를 만들어놓고 그것을 공격하는 것이다. (……) 허수아비 논증은 의견이 확대해석되거나 보편화된 부분을 명백하게 밝혀 허수아비 논증의 오류를 범하고 있음을 지적할 경우 무너진다. 그럼에도 쇼펜하우어가 이런 논증을 권하는 이유는 실전에서 뜨겁게 논쟁하는 와중에 그런 냉철한 지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연역법을 이용한 공격과 방어」중에서
논쟁에서는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논쟁의 주도권을 잡고 상대를 자신의 생각대로 끌고 갈 수 있다. 마치 권투 기술에서 왼손 잽과 같다. 왼손 잽을 잘 날리는 선수가 권투 경기를 주도해간다. “왼쪽을 제압하는 자가 세상을 제압한다”라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논쟁에서도 질문을 잘 던지는 자가 상대를 제압한다. 이때 던지는 질문은 상대에게서 단순히 어떤 사실을 알아내기 위한 ‘일상적 질문’과 전혀 다르다. 논쟁에서의 질문은 상대를 당황하게 만들어 그가 주장을 올바로 펴지 못하게 하거나, 반대로 자기의 주장에 찬성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전략적 질문’이다. 한마디로 적의 모든 기술을 쓸모없게 만들고 적을 좌지우지할 수 있게 하는 ‘베개 누르기’다.
---「논쟁을 위한 술수들」중에서
상대에게 말로 질 것 같은 분위기를 감지하는 순간, 느닷없이 다른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물론 논리학상으로는 ‘논점 일탈의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우리는 주변에서 거의 매일 이런 상황과 마주한다. 예를 들어 당신이 어떤 사람의 키가 크다고 하면, 상대는 곧바로 그 사람이 뚱뚱하다고 논점을 바꿔버린다. 왜 남의 집 앞에 자동차를 세워놓았느냐고 항의하면, 왜 반말을 하느냐고 시비를 거는 식이다.
---「뻔뻔하라, 그리고 승리하라」중에서
설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진리만큼 강제적인 말이 없다. 진리에는 받아들이고 따라야만 하는 어떤 것이라는 뜻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진리는 윤리와 구분이 없다. 진리와 윤리를 구분하기 시작한 것은 아리스토텔레스부터다. 그리고 그 전통이 지난 2300여 년 동안 유지되어왔다. ‘……이다’라는 사실(史實)과 ‘……해야만 한다’라는 당위(當爲)가 구분되어야 한다는 건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과학의 가치중립성’이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주장들은 객관적 진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전제했을 때 타당한 말이다. 진리가 단지 패러다임이나 유대성의 산물이라면, 즉 합의에 따라 그때마다 만들어 사용하는 유용한 믿음이라면, 더 이상 둘을 구분할 수 없다. 무엇을 진리라고 인정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삶이 좌우되기 때문이다. 환경문제, 핵 문제, 생명공학 문제, 기아 문제, 폭력 문제 등에서 그렇다. 이런 문제에 관한 한, 사실과 당위가 구분된다는 주장이나 과학은 가치중립적이라는 말은 책임 회피이자 위선에 불과하다.
---「다시 빌라도의 법정에서」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