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면 뭐가 되고 싶니?] 친근하니 물어 오는 남자의 말에 순간 욕을 할 뻔했지만. 아아… 근데 입이 있는 건가? 나? 마지막에 철근에 깔린 것 같은데. 살긴 살았나? 설마 식물인간?
[식물인간이 되고 싶다고?] [누가 그딴 게 되고 싶대!] [후후. 하긴. 식물인간이란 종족은 없으니까.] 아… 내 말이 정해진 건가? 근데 내게 말 거는 이 사람. 대체 뭐하는 작자야?
[식물인간이 종족이라니. 멍청한 놈이구나. 너. 난 너처럼 무식한 놈은 딱 질색이야.] [아아.] [눈을 뜨면 뭐가 되고 싶냐고? 일단 남자만 아니면 돼. 남자만. 내 인생이 오점을 남긴 남자라는 종족만 아니면 된다. 아니면.] [조금 곤란한 걸.] 키득이며 말하는 목소리는 절대 곤란해 보이지 않는다. 눈을 뜨고 싶은데 눈 자체가 없어진 것 같아. 그저 흐르는 물처럼 멍하니, 멍하니.
[역시나. 영혼은 어딜 가나 변하지 않는 거구나.] [뭐라고 하는 거냐? 이 무식한 놈아.] [파괴의 신이 여자일 수는 없는 노릇인데.] [뭐? 뭔 신?] 목소리는 잠시 들려오지 않는다. [만약 그렇게 되기 싫다면, 네가 노력을 해봐.] [뭐? 야, 설마 지금 성전환 수술 중인 거냐? 응? 야, 말도 안 돼! 아, 악!] 평온했던 상태가 한순간에 일그러지기 시작한다. 타는 듯한 고통에 온몸이, 온몸이 오그라드는 것 같다. 뭐지, 이건. 뭐라고 해야 하는 거야? 생겨나는 기분이다.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는 데도 마치 애벌레가 허물을 벗는 것처럼. 내가 천천히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생겨나는 기분이야. 하나, 하나씩.
[성전환 수술은 결코 안한다! 빌어먹을 남자는 될 수 없어!] 그리고 나는 눈을 떴다. 사방에서 들어오는 눈부신 빛과 그리고… 그리고. 축축함?
[…아?] 이상하게 몸이 찌뿌둥한데? 이거? 아… 몸? 몸이 있는 건가? 나, 살아 있어? 눈을 떴어? 그 철근 속에서 살아남다니. 역시 신도이. 넌 이렇게 허무하게 갈 인생이 아닌 거…
[반가워요. 엘류아. 그런데.] 주위를 살피기도 전에 내 시야를 메우는 하얀색 손.
[당신… 진짜로 여자군요?] 고개를 들어 보였다. 그리고 난. 기절한 뻔 했다. 어딘지 살피기도 전에 내 눈앞에 등장한 이색적인 사람에 기겁을 했다. 이 사람, 이 사람!! 천연색소로 가질 수 없을 법한 머리, 머리색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