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내가 읽고 싶은 글을 써 주는 사람 찾기가 힘드니 내가 써야겠다는 가벼운 생각으로 시작했던 글쓰기가 여기까지 왔습니다. 지독하게 취향 타는 글들을 아껴 주시고 재미있게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를 전합니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으신 후 돌아서서 조금이라도 여운에 잠기고 생각할 거리가 생긴다면 기쁘겠습니다. 힘든 일, 답답한 일도 많으시겠지만 언제나 웃음 잃지 마시고 행복한 하루되시길 바랍니다!
딸랑― 낡고 투박한 문에 걸린 녹슨 방울이 울렸다. 한눈에 봐도 파리 날리게 생긴 가게에 한 여인이 가볍게 문을 밀고 들어왔다. 하얀 손가락이 문고리에 걸렸다가 떨어졌다. 사박. 단정한 여인의 치맛자락 스치는 소리에 점원은 눈을 비볐다. 이게 꿈일까 생시일까. 아무리 봐도 사우스사이드(South-side)에 있는 상점에나 갈 것 같은 긴 머리의 고상해 보이는 여인이 이런 구석진 곳에, 게다가 노스사이드(North-side)의 안 팔리는 상점으로 들어왔으니 당연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여인은 흰빛 고운 얼굴에 투명하리만치 환하게 빛나는 푸른 청안이 보석처럼 영롱히 박혀 있었다. 그리고 길게 흘러내린 품격 있는 검은 머리. 옷차림도 제법 고급스럽다. 분명 다른 사람이 입었다면 극악의 패션 중 하나로 선정되었을 선명한 초록색 드레스도 여인은 몹시 맵시 있게 소화하고 있었다. 놀란 나머지 인사도 한 박자 늦게 나갔다.
“어, 어셔옵쇼…….” 그러나 자신의 서툰 인사에도 눈앞의 여인은 곱게 웃어 주었다. 정녕 꿈을 꾸는 것이 아닐까.
“옷을 한 벌 보려고 하는데, 추천해 주실 것은 없으신가요?” 얼떨떨하니 서 있는 그에게 오히려 여인이 순서를 짚어 주듯 찬찬히 일러준다. 옆에 가만히 서 있는 소녀는 눈에 들이 차지도 않는다.
“……있고, 있고, 말고요! 우선, 여기에 앉으시고…….” 그러나 점원이 권한 자리는 철 지난 잡지들이 쌓여 있어 의자로서의 용도를 잃어버린 곳이었다. 점원은 화들짝 놀라며 잡지들을 이리저리 치웠지만, 원래는 붉은빛이어야 할 벨벳을 씌운 의자가 먼지로 분홍빛을 띠는 것을 보며 얼굴에 난색을 표했다. 그러함에도 그런 자신의 실수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여인이 장난스럽게, 그러나 결코 무례하지 않게 쿡쿡 웃었다. 옅은 빛깔의 장갑을 낀 손이 붉은 입술을 살포시 가린다. 부드러운 공기가 여인을 휘감았다. 사람을 편하게 해주는 무언의 다정한 분위기가 여인에게는 분명히 흐르고 있었다.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그 말에 평정을 되찾기는커녕 점원은 더 당황하였다. 그런 그를 유심히 보는 푸른 눈동자가 차분하고 냉정하게 잠시 빛났지만, 점원은 그걸 살필 정신 따위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