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술만 아니었다면 필그림 파더즈가 플리머스 록이 아닌 다른 곳에 내렸을지도 모른다. 메이플라워 호의 항해일지를 보면, 맥주가 얼마 남지 않았을 때 선원들이 자기네만 맥주를 많이 마시고자 급히 아무 해안에나 배를 대고 승객들에게 물을 마시라고 했다는 일화가 나온다(신세계를 향한 항해 때, 배에는 다른 어떤 생필품보다 맥주가 많이 실렸다).
프랑스 혁명도 실은 흔히 말하는 바스티유 감옥 습격이 아니라 그 며칠 전에 파리 외곽지역에서 일어난 폭동이 발단이 되었다. 그 동네들은 곧 도시 확장계획에 따라 시로 편입될 예정이었는데, 그렇게 되면 동네 바에서 파는 와인에도 시가 부과하는 주세가 붙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 p.3
문제는, 우리 몸의 기계들이 술을 마시는 속도보다 느리게 돌아간다는 거다. 한 시간이 지나면, 기본 한잔(맥주 0.5파인트, 와인 한잔, 증류주 작은잔 한잔)은 보통체격의 건강한 남자의 혈중 알코올농도(BAC)를 약 0.02퍼센트, 즉 20밀리그램으로 높인다. 이것은 혈액 100밀리리터당 알코올량을 계산한 것이다. 하지만 이즈음, 몸은 아직 15밀리그램의 알코올밖에는 제거하지 못한 상태다 보니, 몸의 기능이 뒤처지기 시작한다. 세 시간 동안 5파인트의 술을 마셨다면 그리 과음했다고 생각되지 않겠지만, 사실 5파인트는 혈중 알코올농도 155밀리그램이라는 독성부하를 걸고 만다. 이것은 영국의 법적 음주운전 기준치인 80밀리그램의 거의 두 배에 이르는 수치다.
--- p.22
인류는 언제부터 술을 입에 댔을까? 2만 년 전? 10만 년 전? 곡식 재배의 시작이 양조를 가능하게 했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반론도 있다. 신석기시대 사람들을 안정된 농경사회로 몰고 갔던 원동력, 즉 인류가 문명을 향한 최초의 거대한 도약을 하게 만든 원동력은 빵을 만들고자 하는 욕망이 아니라 술을 빚으려는 욕망이었다는 것이다. 고고학자 제임스 데스가 1세기 전에 이 이론을 내놓은 이후에 동료 고고학자들과 각종 ‘학’하는 사람들은 선사시대에 대한 여러 추측들을 이리저리 끼워맞추면서 너무나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바로,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재배한 곡식의 4퍼센트만을 식량으로 썼던 것 같다는 사실이다. 나머지는 어디다 썼을까? 이것을 빻아 맥주를 만들지 않았을까?
--- p.36
<어느 허풍쟁이의 잘난 척 술 가이드>
위스키: 매켈런(스코틀랜드산 몰트위스키), 시바스 리갈(스코틀랜드산 블랜디드), 콘네마라(아일랜드산 몰트), 메이커스 마크(미국산 버번)
매켈런은 오로지 셰리통에서만 숙성시킨 유일한 스코틀랜드산 몰트로서, 셰리주의 질감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그 감칠맛, 풍부함, 달콤함은 하늘 아래 견줄 대상이 없다. 그리고 입천장에 닿는 느낌은 단연코 도발적!
시바스 리갈? 이 위스키에 대해 새삼 잘난 척할 게 뭐가 있겠는가. 스카치의 대명사, 이 한마디면 충분하지.
나는 개성파다. 전 세계가 제임슨, 부쉬밀, 털러모어 듀를 마시는 동안 나는 나만의 아이리시위스키 콘네마라를 마시리. 이것은 아일랜드 위스키 중에는 유일하게 이탄을 때 건조시킨 맥아로 만든 싱글몰트 위스키다. 따라서 어떤 사람에게는 냇내가 너무 강할 수도 있겠으나 밸런스는 최고 수준. 그리고 그 압도적인 달콤함에다…… 은근한 적자색 빛깔까지…….
그래, 맞다. 누구나 잭 다니엘, 짐 빔, 와일드 터키, 올드 크로우는 다 안다. 하지만 메이커스 마크, 어떤가? 풍미와 아로마는 깊고 복잡하며, 부드러움이 비단결 같다.
--- p.55
샴페인하우스 볼랭저의 릴리 볼랭저가 했다는 말을 소개한다. 들으면, 구구절절이 옳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마 술에 관한 인용구들 중 가장 맛깔스러운 말이 아닐까. “나는 행복할 때와 슬플 때 샴페인을 마신다. 때때로 혼자 있을 때도 샴페인을 마신다. 친구와 있을 때는 반드시 마셔야 한다고 생각한다. 배고프지 않을 때는 소일거리로 마시고, 배고플 때는 배고파서 마신다. 그 외에는 손도 대지 않는다. 목마르지 않은 한.”
--- p.105
진이 누리는 인기의 9할이 토닉 덕분이라고 한다면, 칵테일이 누리는 인기의 상당부분은 금주법 시대에 유행했던 일명 ‘목욕통 진’ 덕분이다. 이것은 동네 암상인으로부터 구매하던 불법 밀주로, 화장실 목욕통 안에 용기를 놓고(용기가 너무 커서 부엌 싱크대 수도꼭지 아래 놓을 수 없었기 때문에) 이 밀주와 거친 느낌을 부드럽게 완화해주는 글리세린을 섞은 후, 설탕, 과일씨, 과일즙을 넣어 만들었다. 물론 끔찍한 냄새를 가리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바로 미국 음주사의 대미를 장식한 칵테일이었다.
--- p.146
제아무리 칼뱅이라도 술 앞에서는 맥을 추지 못했다. 원래 술(당연히 맥주)을 좋아했던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마음속에 항상 술 마실 명분을 품고 다녔고, 게다가 유머감각까지 풍부했다. “따라서 만일 악마가 ‘술 마시지 말라’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이렇게 대답하십시오. ‘네 말 때문에, 네가 그것을 금했기 때문에, 나는 마셔야겠다. 그냥 마시는 것이 아니라 아주 많이 마실 것이다.’ 우리는 항상 사탄이 지시한 바의 반대로 해야 합니다. 내가 왜 와인을 희석하지 않고 마시겠습니까, 날 괴롭히는 악마에게 고통을 안겨줄 목적이 아니라면?”
--- p.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