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미노아, 미케네, 고전 시기, 비잔틴의 미술과 신화, 철학, 문학, 종교에서 발견한 예술의 의미를 담은 그리스 인상기다. 또한 이 글은 지중해의 태양을 일러준 알베르 카뮈, 니코스 카잔차키스, 장 그르니에, 괴테와 니체, 하이데거 같은 미학적 로고스(logos)를 일러준 이들에 대한 찬사의 글이기도 하다. 여전히 그들이 말한 대로 지중해는 태양이 빛났고 그 아래 그리스는 이중적이며 모호했다. 그 이중성이 과거 신화시대부터 이어져 온 그리스인의 근원적 바탕이며 니체는 그것을 아폴론과 디오니소스의 이름으로 불렀다. 그리스 예술의 탄생은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프롤로그」 중에서
아테네의 오래된 거리는 내게 절대적인 시간 속 공간이다. 십수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그때 청춘의 격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시의(時宜)에 반하는 발걸음으로 여기 온 것은 바로 시의를 거스를 공간이 여기 있기 때문이다. 다가올 시간은 늘 결과만 중요할 뿐이다. 그곳에 빠르게 가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 그곳에 있는 무언가가 중요하다.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를 다시 찾으러 왔다. 무모했던 예술에 대한 오랜 관심과 호기심이 이곳에는 여전히 남아 있다. 여기, 바로 여기에서 지중해의 태양에 시간을 다시 맞춘다.--- 「그리스의 영광은 아테나에게」중에서
철학적 물음의 첫 번째는 결국 인간의 존재성이다. 인간의 존재성을 따져 들다 보면 결국 신의 존재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그런 자에게는 신은 믿음의 대상이 아니라 물음의 대상이 될 뿐이었다. 신을 믿기보다 신이 존재하는지 의구심을 가지는 쪽에 가까웠다. 솔직히 그 여인의 눈물을 이해하지 못했다. 당황스럽기도 했다. 부활절의 의미도 종교미술을 이해하는 수준에 충분했던 내게 그리스 여인의 눈물은 그들의 일상이 어디와 연결되어 있는지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 그리스의 영광은 아테나에게」
가장 지혜로운 방법은 거리의 젊은이들에게 묻는 일이다. 그리스 젊은이들은 영어가 자연스럽고 호기심이 많아 도움을 요청하면 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주려고 한다. 특히 데이트하고 있는 젊은 여성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이 가장 추천할 만하다. 그리스 여성들은 세련되고 의사표현에도 적극적이라 다소 겉멋에 치중한 남자들보다 더 친절하고 유쾌하다. 물론 남자친구가 덩달아 문제 해결에 애를 쓰는 것은 물론이다.--- 「진정한 그리스의 얼굴을 마주하다」
잠깐 주위를 둘러본 미스트라의 모습은 태양과 가까운 그리스의 풍경과는 아주 달랐다. 건물은 회칠은 한 하얀 집이 아니라 돌로 쌓아 올려 견고했고 길바닥은 울퉁불퉁하게 다듬어 투박했다. 비가 내렸었는지 바닥 틈 사이로는 물기가 흥건하고 서늘한 공기는 물기를 충분히 머금고 있었다. 건조하기만 했던 미케네의 헐벗은 풍경과는 전혀 딴판인 첨탑처럼 높다란 산에서는 솟아 자란 사이프러스 나무가 무성했다. 배낭을 버스 아래 트렁크에서 꺼내는 동안 사람들 소리보다 더 크게 들려오는 것은 새들의 울음소리였다. 바짝 마른 땅에서는 그늘을 찾기도 바쁜 새들이 여기서는 쉬지않고 울었다. 건조한 태양의 한낮이 고대의 시간이라면 여기 시간은 서늘한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그리스의 중세로 제대로 찾아온 것이다.--- 「진정한 그리스의 얼굴을 마주하다」
그리스의 풍경은 태양 아래서 무언가를 즐긴다는 생각을 할 수 없다. 그늘을 찾아 숨을 돌리면 시간을 직시하는 침묵과 나른함이 묘하게 몰려오는 그런 원시적인 시간을 보게 된다. 그런 풍경은 채워져 있기보다 탈탈 털어 내어놓은 바짝 말라버린 이불 같다. 말라버린 이불은 무미건조하지만 덮었을 때 느껴지는 근원적인 만족감이 있다. 하지만 타이게토스 산의 그늘에 자리한 미스트라스는 검붉은 흙과 짙은 나무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충분히 자란 나무와 숲, 겹겹이 쌓은 돌이 주는 굳건한 믿음 같은 것들은 늦은 오후에 어울리는 충만한 풍경이다.--- 「진정한 그리스의 얼굴을 마주하다」
델피의 바람은 인간이성에 의한 사고 대신 밤새 두려움을 안겨주는 소리였다. 밤새 삐걱거리는 창문, 바람 소리, 한기와 두통에 다시 누워도 쉽게 잠이 들지 못했다. 요행수를 기다리듯이 신탁을 기다리던 기대감과는 달랐다. 창으로 빛이 들어왔다. 뜬눈으로 기다린 새벽이 온 것이다. 낯선 방이 이렇게 두려웠던 적이 없었다. 외투를 뒤집어쓰고 카메라와 수첩만 챙겨 도망치듯 숙소를 나섰다. 그 사이 바람의 도시는 어느새 환한 아폴론의 도시로 제 모습을 바꾸고 있었다. 바람은 잦아들었고 선선한 청량감이 느껴지는 아침 공기가 부었던 눈을 식혀주었다. 이른 아침에 상점들은 문을 열지 않았고 인적도 없었다. 간밤의 지독했던 바람은 환영 같았다. 하지만 두려움으로 가득 찼던 방을 얼른 빠져나온 것은 다행이었다. 파르나소스의 아침 공기를 가득 마셨고 깊게 내쉬었다. 그제야 안도감을 느꼈다.--- 「디오니소스에게 예술 탄생을 구하다」
시시포스가 부조리한 것은 자신의 인생이 살만한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의식과 행위의 틀어짐, 이것이 비극이다. 결국 비극은 뮈토스의 세계와 로고스의 세계가 충돌하며 인간이 그 스스로의 처지를 자각하는 위대한 순간에 탄생하는 것이다. 이질적인 두 가지 세계가 만나 아찔할 정도의 검은 빛을 만들어내고 그 들판에서 인간은 비극을 통해 처절하게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예술탄생의 시작은 바로 이 극적인 순간이다. 이 순간을 묘사하기 위해 연극-비극이 탄생하고 예술의 영원한 주제가 된다.--- 「디오니소스에게 예술 탄생을 구하다」
예술품을 볼 때 별다른 감흥이 없는 사람들의 표정은 비슷하다. 그들은 고독을 이해하지 못한다. 밥을 혼자 먹을까 두렵고 작은 전화기에 아무도 말을 걸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그저 외로울까 두려워하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 극적인 감동의 순간을 공감하지 못하는 것이다. 만약 하얗게 부서지는 고독을 마주했다면 해골 위의 십자가, 벌거벗은 바위 수도원, 정갈한 기도실이 주는 감동을 어떻게 모르겠는가.--- 「디오니소스에게 예술 탄생을 구하다」
“항구도시 피레우스에서 조르바를 처음 만났다. 나는 그때 크레타로 가는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두목과 조르바와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한다. 한 번의 여행에서는 내내 이 한 권의 책을 읽고 있었다. 떠나기 전 몇 권의 책을 골랐지만 결국 가볍게 제본한 이 페이퍼북을 골라 가방 상단에 올려두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봉투에 넣고 옷으로 말아두기도 했다. 사실 늘 읽을거리를 찾는 습관 때문이기도 했지만 여행자에게 마음에 드는 책 한 권 없이 시간을 보내기는 그리 쉽지 않다. 더군다나 손과 눈을 자유롭게 하기 위해 버스를 잡아타기로 마음먹었는데 책이 비에 젖기라도 한다면 끔찍하다. 그렇게 귀하게 여겨선지 지금도 이 책이 서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내지에는 ‘크레타에서 책을 덮다, 이라클리온의 호텔 크노소스 401호에서’라고 적혀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에게 유토피아를 묻다」
어릴 적 과학 잡지를 떠올려보면 단골 소재가 UFO 아니면 이집트나 잉카 문명을 다룬 고고학적 모험이었다. 아틀란티스 대륙도 빠지지 않는 소재였는데 그곳에 등장했던 그림을 생각해보면 여지없이 크노소스의 색채와 문양을 연상하게 한다. 당시 크노소스 궁전이 만든 주요 이미지는 성벽이 없는 개방적인 궁전, 대담하고 자유로운 벽화로 꾸며진 넓고 현대적인 공간에서 평화로운 삶을 영위하는 유토피아라고 할 수 있다.
--- 「그리스인 조르바에게 유토피아를 묻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