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탁 지리산 경상도 쪽 언저리 산청군 생초면이 고향이다. 이곳은 경북 영양의 주실마을과 전북 임실의 삼계면과 더불어 남한의 삼대 문필봉(文筆峰)이 있는 곳이다. 고향의 이런 정기를 이어받은 탓인지 대학에선 신문방송학을 전공했고, 졸업해선 신문사를 첫 직장으로 택했다. 기자로 3년여를 보낸 뒤 1979년 12월 박정희 대통령 서거로 온 나라가 어수선했던 시절 ≪중앙일보≫를 그만두고 미국으로 공부하러 떠났다. 미주리대학교에서 언론학으로 석사와 박사를 받은 뒤 1985년 성균관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교수로 부임하여 지금까지 재직해 오고 있다. 교수 초년 시절에는 언론학에 관심을 두면서 “한국언론인의 보수화된 자기중심성”, “한국언론의 지배이데올로기의 형성과 전개” 등의 논문을 썼다. 그러다가 당시 대학가를 휩쓴 격렬한 학생운동이 계기가 되어 학문적 관심을 사회커뮤니케이션 쪽으로 바꾸었다. “민중의 커뮤니케이션적 인식”, “포스트모더니즘 토대로서 노동과 커뮤니케이션” 논문 등이 그런 결과물이다. 2000년대에 들어 서구적 방법론에서 우리의 전통적 방법론으로, 사회과학적 패러다임에서 인문적 패러다임으로 중요한 학문적 전환이 이루어졌다. 『禮 & 藝: 한국인의 의사소통 사상을 찾아서』와 『노장·공맹, 그리고 맥루한까지』와 같은 책을 쓰게 되었고, 같은 맥락에서 이번에 『현, 노장의 커뮤니케이션』을 펴냈다. 2014년 현재는 『명, 동양의 매체미학』을 준비 중이다.
서양의 의사소통학 연구에서 큰 획을 그은 바 있는 세계적인 사회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한국을 몇 차례 다녀간 적이 있는데, 언젠가 조언을 부탁드리는 자리에서 “명륜당과 해인사에 이미 모든 답들이 있는데 굳이 내 철학을 통해 한국 사회를 연구하려고 드느냐?”는 말을 남긴 적이 있다.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말이지만 망치로 뒤통수를 얻어맞는 듯한 충격을 받은 것은 비단 필자만의 곤혹스러운 경험이 아닐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주류 사회과학계는 서구이론을 통해 우리의 현실을 짜 맞추는 데 어떤 주저함이나 부끄러움이 없이 오랜 시간을 보내왔다.---‘머리말’ 중에서
구불구불한 길은 무질서해 보일는지 모르지만, 그 길은 우리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어떤 생명력을 갖는다. 반면 반듯하게 놓인 도로는 질서정연해 보일는지 모르지만, 그 위를 달리는 사람에게선 어떤 존재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질서정연하지만 생명의 숨소리가 들리지 않는 죽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무질서하지만 생명이 살아 숨 쉬는 산 길을 가고 있는 것일까?---‘우주·자연·인간세 원리로서의 도’ 중에서
도의 상태에선 선/악, 미/추, 삶/죽음 등의 구분이 있을 수 없다. 그렇지만 만물이 인간의 도구적 관심의 희생물이 되면서 그 의미가 서서히 구획되어 왔으며, 결국 오늘날에 이르러선 만물들 간의 차이를 크게 드러내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과학기술의 발전을 크게 이루어 우리의 세상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물질적 삶마저 풍요롭게 될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반면 만물의 의미가 구분될수록, 또 그 차이를 드러낼수록 우리의 마음 한구석에는 세상에 대한 편견이 짙게 쌓여만 간다. 이렇게 쌓인 편견은 인위의 수준을 훨씬 넘어서서 작위(作爲) 내지 능위(能爲)의 수준에 이미 도달해 있다. 그래서 장자는 작위와 능위의 위험에 대해 혼돈(混沌)의 죽음을 통해 경고하고 있다.---‘소통 수단으로서의 감관, 의미 작용으로서의 심관’ 중에서
길이란 그곳을 다니다 보니까 저절로 생겨난 것이고, 마찬가지로 이름을 그렇게 붙이다 보니까 그것이 대상을 지칭하게 된 것이다. 이런 사실을 충분히 감안해서 장자는 언어를 조심스럽게 사용해야만 언어가 지닌 한계를 제대로 극복할 수 있으며, 나아가 상대방과 소통을 이루는 길에 쉽사리 진입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