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1,000년 전인 11세기 초, 지금의 교토(京都)에서 아버지 후지와라 다메토키(藤原?時)와 후지와라 다메노부(藤原?信)의 딸인 어머니 사이에 장녀로 태어났다. 아버지 다메토키는 헤이안(平安) 시대(794∼1192)의 유명한 한학자였으나, 정치의 중심에서는 소외된 지방의 수령이었다. 무라사키시키부는 두 살 때 생모와 사별하고 아버지 다메토키의 훈도를 받으며 자랐다.
『무라사키시키부 일기(紫式部日記)』에 의하면, 다메토키가 아들 노부노리(惟規)에게 한학을 가르칠 때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무라사키시키부가 항상 먼저 해독을 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때마다, “안타깝도다. 이 애가 남자가 아닌 것은 정말 운이 없는 일이다”라고 입버릇처럼 한탄했다고 한다. 그 시대의 한문이란 오로지 남자의 입신출세를 위한 방편이었을 뿐 여자에게는 무용지물로서 오히려 경원시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무라사키시키부의 뛰어난 재능과 지식은 오히려 훗날 『겐지 이야기』 창작의 밑거름이 되었다.
무라사키시키부는 당시로서는 만혼인 29세(998년)에 자신과 비슷한 나이의 아들이 있는 후지와라 노부타카(藤原宣孝)와 결혼하여 딸 겐시(賢子)를 출산하지만, 2년 남짓한 행복도 잠깐, 돌연 남편 노부타카가 병으로 죽게 된다. 남편과 사별한 무라사키시키부는 홀로 어린 딸을 키우며 인생에 대해 더욱더 관조하게 되고, 그 무렵부터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이상적인 결혼 생활을 『겐지 이야기』 속에서 실현하려고 했다. 그녀의 이러한 재능은 곧 당시의 권세가였던 후지와라노 미치나가(藤原道長)에게 발탁되어, 36세가 되는 1005년경 미치나가의 딸로 이치조(986∼1011) 천황의 중궁인 쇼시(彰子)의 뇨보(女房, 궁중에서 시중을 드는 궁녀)로 입궐한다. 이러한 궁중생활의 체험을 살려 완성한 장편소설이 『겐지 이야기』이고, 1010년경에는 『무라사키시키부 일기(紫式部日記)』, 1013년경에는 가집 『무라사키시키부집(紫式部集)』 등을 편찬하였다. 가마쿠라(鎌倉) 초기에 나온 이야기 평론집 『무묘조시(無名草子)』에는 ‘『겐지 이야기』가 쓰인 것은 부처님의 영험이며, 범부가 흉내 낼 수 있는 일이 아니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이처럼 『겐지 이야기』는 작자 무라사키시키부의 와카(和歌) 및 한시문에 대한 조예와 인생에 대한 깊은 성찰, 그리고 이야기에 대한 독자들의 요구 등이 삼위일체가 되어 성립되었다고 볼 수 있다. 2000년 밀레니엄을 기념하여 새로 발행된 일본 화폐 2000엔 권의 뒷면에 『겐지 이야기』 청귀뚜라미 권의 그림과 작자의 초상이 실리게 된 것은 뜻 깊은 일인데, 2008년에는 작자의 일기를 근거로 『겐지 이야기』 성립 1000년을 기념하는 갖가지 행사가 있을 예정이다.
1976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1982년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일본문학연구과정에 유학하여 『겐지 이야기』 연구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일본 고대의 대표적인 고전문학인 『겐지 이야기』를 중심으로 고전 서사문학의 전승과 표현, 화형에 관한 연구를 하고 있다. 기타 일어일문학 관련 학회의 임원과 편집위원, KOREANA(한국국제교류재단) 편집장 등으로 활약하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는 『표현이 펼치는 고대문학사(ことばが拓く古代文?史)』(공저, 笠間書院, 1999), 『신화·종교·무속』(風響社, 2000), 『교착하는 고대(交錯する古代)』(공저, 勉誠社, 2004), 『일본고대문학과 동아시아』(공저, 勉誠出版, 2004) 외에 『겐지 이야기』와 관련한 다수의 논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