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고독한 미식가가 됩니다. 아니, 미식은 전날 밤 했고, 이튿날 아침은 그냥 고독한 음식처리반이 되지요. 남은 곱창전골에 우동사리를 넣어 끓이고, 전날 밤 먹은 교촌치킨은 밥반찬으로 먹고, 누가 사준 단팥빵이니 초콜릿이니 하는 것은 커피와 함께 우걱우걱 먹습니다. 쓰레기통에 넣지 않기 위해 내 입으로 버리는 음식들입니다. 혼자 사는 사람의 흔한 아침식사 풍경입니다. 전날의 끼니를 ‘맛없게’ 한 번 더 먹습니다.
시켜 먹든 만들어 먹든, 언제나 남는 음식이 고민입니다. 지구 환경도 생각해야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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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11시, 12시에라도 퇴근해 바로 잠을 자면 좋은데, 신경을 곤두세우고 마감을 마치고 나면 머리가 잠들지 못하는 상태로 몇 시간이 간다. 전에는 새벽 5시에 퇴근해서도 잠이 올 때까지 밀린 드라마를 보곤 했을 정도로 뇌의 각성이 쉽게 꺼지지 않았다.
피곤한 나날이 이어지면, 아침식사로 오이 한 개에 당근 반 개 같은 생각은 들지 않는다. 탄수화물이 필요하고, 이왕이면 달콤했으면 좋겠다. 나에게 최적의 솔루션은 길거리 토스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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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식에는 ‘시그니처’라 불리는 요리가 따로 없다. 어디에서나 비슷한 재료에 비슷한 요리로 승부를 본다. 그런데도 차이가 난다. 홍콩의 페닌술라 호텔 조식 역시 인상에 남았는데, 처음에 둘러보니 가짓수가 몇 안 되는 것 같아 실망하고 식사를 시작했다가 깊게 반성한 일이 있었다. 깊게 반성한다니 웃긴 노릇이지만 정말 그랬다. 조식은 가짓수가 많다고 되는 게 아니다. 어차피 많이 먹지 않는다. 높은 천장을 가득 채운 아침 햇살과 널따란 실내, 서비스 하는 사람을 찾아 두리번거릴 필요 없이 제때 제공되는 차와 커피 같은 것들이 주는 값비싼 편안함에 더해, 지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으면서 음식마다 풍미가 좋다는 점이 느긋한 아침을 가능하게 했다. 뭘 먹어서 이렇게 기분이 좋아졌지? 커피, 크루아상, 오믈렛, 요구르트, 딸기와 멜론. 이거 다른 곳에서도 먹는 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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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을 아침식사로 기억하게 된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부산국제영화제가 남포동에서 해운대로 주 상영관을 대거 옮기면서였다. 2010년대 말에 이르면 센텀시티 쪽에서 주요 행사들이 이루어지지만, 남포동 시대 직후는 해운대 시대였다. 해운대역 근처의 쇼핑몰에 사무실이 있었고, 그다음에는 해운대 바닷가 근처의 쇼핑몰에 사무실이 있었다. 영화의 전당이 완공된 이후에는 그 안에 있는 분장실을 사무실로 썼다. 그래서 기자들은 죄다 알전구가 테두리를 따라 붙어 있는 거울 앞에서 원고를 쓴다. 날이 갈수록 거울 속 얼굴은 붓다가 창백하다가 까칠해진다.
--- p.89
하지만 과일로 아침식사를 대신할 때가 있으니, 바로 봄. 딸기 시즌이다. 요즘에야 하우스 딸기가 한겨울에도 높은 당도를 자랑하지만. 집에서 10분 정도 걸으면 되는 위치에 청과물 시장이 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극장까지 걸어서 25분이 걸리는데, 그코스에 청과물 시장이 있다. 그 길을 지나다 보면 제철 과일이 무엇인지를 코로 알 수 있다. 봄철에는 딸기를 이곳에서 사는데, 마트보다 가격이 싼지는 잘 모르겠지만 당도로는 비교할 수 없다. 문제는 청과물 시장의 딸기는 한 ‘다라이’ 단위로 판다는 것. 그래서 사다가 씻어놓고 아침에 한 그릇씩 먹는 식이다. 1년 중 가장 호사스러운 아침식사다.
--- pp.125-126
그 숙소에서 2인부터 식사가 가능한 이유는 단순하다. 작은 솥에 밥을 해서 솥째로 방에 들어오는데, 그게 4인분 정도가 된다. 두 사람이 넉넉하게 식사할 수 있는 양이라는 말이다. 반찬은 검은콩 낫토부터 전갱이구이까지 10여 종이 넘는다. 따뜻하게 우린 호지차도 함께다. 문제는 흰쌀밥에 뭘 넣었는지 그냥 밥이 맛있어서 먹을 수 있는 데까지 한도 끝도 없이 들어간다. 아마 그 아침식사의 영향일 텐데, 나는 혼자 살게 되면서부터는 밥을 솥에 지어 먹는다. 전기밥솥은 사지도 않았다. 1인 가구 필수템으로 꼽히는 전자레인지, 에어프라이어, 전기밥솥, 토스터가 우리 집에는 없다. 말하고 보니 쓸데없이 번거로운 인간이다.
--- p.130
아침밥은 먹기 쉽지 않다. 밥을 하는 사람과 먹는 사람이 동일할 때, 아침은 가장 먼저 생략되는 끼니다. 아침밥이 중요하다는 말, 아침을 거르는 법이 없다는 말에는 여유 있는 아침시간이 확보되어 있다거나 아침을 차리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속뜻이 있을 때도 적지 않다.
--- p.18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