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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건달 1
중고도서

수상한 건달 1

장소영 | 로담 | 2012년 06월 18일   저자/출판사 더보기/감추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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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2년 06월 18일
쪽수, 무게, 크기 400쪽 | 450g | 128*188*30mm
ISBN13 9788997253388
ISBN10 8997253387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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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그래, 밥.”
재경은 거만한 표정으로 거실 한복판에 우뚝 서 있는 김필수를 노려보았다. 아침 댓바람부터 일어나서 새벽녘에야 겨우 잠이 든 사람을 깨우더니 한다는 첫마디가 ‘밥’이라니. 이런 뭐 말미잘 같은 인간이 다 있나 싶었다.
재경은 자다가 눌린 머리카락을 휙휙 헝클며 다시 물었다.
“무슨 밥?”
“먹는 밥.”
아 씨! 째깍째깍, 규칙적으로 들려오는 아날로그 벽시계를 흘깃 쳐다본 재경은 아직 7시도 안 된 시간에 경악했다. 경찰서로 출근할 때도 8시에 임박해서야 겨우 침대에서 내려오던 그녀였다. 그런데 출근할 데도 없고 낯선 곳이라 밤잠도 설친 이 마당에,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어나지도 못한 게슴츠레한 모습으로 인조인간에게 ‘밥’ 타령을 들어야 한다는 현실이 참으로 번뇌스러웠다.
재경은 그냥 무시하기로 했다. 소파 등받이 위로 우뚝 솟아 있는 인조인간을 투명인간으로 승격시켜 주고 그대로 몸을 기울여 1분 전까지 천국처럼 아늑했던 소파의 쿠션에 머리를 기댔다. 아, 그래. 이 맛이다. 피사의 탑처럼 우뚝 서서 자기가 무슨 인간을 굽어보는 신이라도 된 양 노려보고 있는 인조인간, 아니 10초 전에 승격시켜 준 투명인간은 무시하고 다시 달콤한 잠의 세계로 들어가자고 뇌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손 형사한테 말한다?”
그래, 말해라. 다 말해라. 뭔 말을 해도 세상 모든 번뇌를 잊고 비각성의 상태로 돌아가려는 나를 막을 수는 없으리.
“너랑 나랑 정선에서…….”
재경은 눈을 번쩍 떴다. 그 순간 허리를 굽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사악한 악마와 눈을 마주쳤다. 미친.
“된장국 끓여라. 구수하고 얼큰하게.”
악마가 꼬리를 흔들며 멀어져 간다. 재경은 미친 악마의 뒷모습을 노려보기 위해 몸을 일으켰다. 소파 등받이에 힘없이 턱을 괴고 놈을 노려보았다. 그래, 보인다, 보여. 놈의 머리통 위로 솟아오른 악마의 뿔이. 등 뒤에서 활짝 펼쳐지는 검은 날개와 씰룩거리는 엉덩이에서 튀어나와 흔들거리는 긴 꼬리가. 저놈은 진정 미친 악마였다.

“이게 다야?”
뜨거운 된장찌개를 저 잘난 면상에 확 끼얹어 버리고 싶었다. 아니, 거의 그러기 일보 직전이었다. 바보 천사만 아니었다면.
“닥치고 먹읍시다. 투정하면 다음부터 안 해 줍니다!”
아니, 누가 다음에 또 해 준댔어?
재경은 손 형사가 김필수에게 버럭 소리 지르는 것을 보며 자신이 하지 못한 일을 대신 해 줘서 기쁘면서도 은근히 화가 났다. 그러니까 뭐야? 앞으로 밥 당번은 이 나재경이다?
“으, 맛있다. 야, 나 순경. 너 시집가도 되겠다.”
우리 엄마가 했던 말 그대로 읊는 바보 천사를 조용히 무시해 주시고 재경은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시장 좀 봐야겠구만.”
악마는 여전히 투덜거리며 밥 한 숟갈을 뜬다. 그 옆에서 눈을 세모꼴로 치뜨는 바보 천사.
재경은 심히 괴로웠다.
“우리 엄마 말씀이 여자는 역시 음식을 잘해야 최고라고 했거든? 나 순경, 너 시집가면 사랑 받겠다. 너 데려가는 놈은 복을 넝쿨째 접수하는 거야. 내가 장담한다. 우리 엄마가 해 준 된장찌개 다음으로 최고다. 진짜야.”
왠지 꿍꿍이가 느껴지는 칭찬의 질주 중에 재경은 이제 바보 천사가 음흉 천사로 보이기 시작했다. 저 선배가 진짜!
“니들 사귀냐?”
그때까지 조용히 식사하시던 악마께서 말씀하셨다. 악마의 손아귀에서 놀아나고 있는 재경은 눈을 희번덕거렸다. 참자, 참자하니까!
“아니거든!”
“그래 보이냐?”
흥분한 재경의 외침과 동시에 손지호의 경쾌한 목소리가 동시에 울렸다. 악마가 웃는다. 밥풀 묻은 숟가락을 입속에 넣고 쭈욱 빨더니 그 더러운 숟가락으로 재경을 가리켰다.
“넌 싫고.”
그 다음엔 손 형사를 향했다.
“댁은 좋고.”
그리고는 숟가락으로 식탁을 ‘탁탁탁’ 세 번 내리쳤다. 마치 재판관이라도 된 양.
“짝사랑이네.”
손 형사의 얼굴이 벌게졌다. 재경은 그런 손 형사의 얼굴을 말갛게 응시했다. 진짠가?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손 형사가 애꿎은 식탁을 탕! 소리가 나게 치며 벌떡 일어섰다. 마치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처럼.
“에이! 난 나중에 따로 먹을란다! 아침부터 웬 강아지가 재수 없게 짖어 대서 밥맛이 뚝 떨어져!”
그리고는 홱 돌아서서 주방을 나가 버렸다. 거실을 가로질러 현관문 쪽으로 사라지는 그 뒷모습을 재경은 쭈욱 지켜보았다.
“너도 좋냐?”
흠칫, 악마의 속삭임에 재경은 눈을 치떴다.
“뭐요?”
“좋으면 쫓아가.”
능글거리며 웃는 것이 영락없는 악마다. 사악하고 졸렬하고 잔인한 악마!
이, 이…….
재경은 화를 억누르기 위해 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러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러든 말든 악마는 미동도 없이 그녀가 생애 처음으로 끓여 바친 거룩한 된장찌개를 쳐드시고 계셨다.
“나도 나중에 먹을래요.”
손 형사가 그랬던 것과 똑같은 대사를 읊을 수는 없지만 기분만은 명백히 똑같음을 어필하는 목소리였다. 그리고 홱 돌아서 나가려는데 문득 악마가 중얼거렸다.
“지금 쫓아가면 좋아하는 거다.”
헐! 말도 안 돼.
하지만 재경은 나갈 수 없었다. 그깟 사악한 악마의 말 따위 싹 무시하고 나가 버리면 그만인 것을 혹시 나갔다가 손 형사와 단 둘이 되는 상황이라도 될까 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도로 앉기도 무안하고. 왠지 지는 것 같잖아. 안 그래도 엄청 밀리고 있는데 말이야.
“밥 먹고 바로 휘트니스 갈 거야.”
재경은 인상을 팍 썼다. 자기도 모르게 자리에 다시 앉은 그녀는 놈을 노려보았다.
“휘트니스? 당분간 외부활동 금지야…… 요.”
저도 모르게 나온 반말이 어색하게 존댓말로 돌아섰다.
“누구 마음대로?”
놈이 비릿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고개를 들었다. 아, 살짝 설렌다. 놈은 인조인간이라는 이성적인 판단보다 늘 앞서가는 이 죽일 놈의 본능. 잘생긴 놈을 보면 자동으로 반응하는 이놈의 심장. 이게 늘 문제다.
재경은 속으로 머리를 홱홱 가로젓고 놈을 응시했다.
“댁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몰라서 그래?…… 요.”
“위협 당할지도 모르는 상황이지. 조폭한테.”
“알면서 지금 운동을 하고 싶어?…… 요.”
“어.”
“안 돼!…… 요.”
김필수가 갑자기 숟가락을 놓고 의자 등받이에 등을 기대더니 재경을 못마땅하게 쳐다보았다. 뭐? 왜? 그렇게 보면 어쩔 건데!
“그 말투 어떻게 좀 해.”
“뭘?…… 요.”
그가 눈살을 찌푸렸다.
“존댓말이야? 반말이야?”
“존댓말이지!…… 요.”
“아, 그 요 소리, 거슬려!”
흥! 다행이다. 거슬린다니. 쌤통이다! 재경은 천진한 표정을 지으며 능글맞게 말했다.
“아직 익숙하지 않아서 그래…… 요.”
놈이 귀찮다는 듯 손을 홱홱 내젓더니,
“빨리 익숙해지는 게 좋을 걸?”
안 그러면? 네가 어쩔 건데? 하는 얼굴로 재경이 마주 보자 놈이 씨익 웃었다.
“또 내 신경 건드리면 난 폭발할 거야. 난 폭발하면 남의 약점 까발리는 버릇이 있어서 말이야.”
치사하고 졸렬한 놈!
재경은 놈을 있는 힘껏 노려보았다.
“잘 할 거지?”
“그, 그러는 댁은 왜 반말하는데…… 요?”
놈이 인상을 쓴다. 재경은 존댓말이 자연스럽게 다시 물었다.
“왜 반말 하냐고요.”
“너, 나보다 어리잖아. 아냐?”
맞다. 하지만 나이 어리다고 반말하는 게 어디 있나? 그건 동방예의지국에서 할 짓이 아니거든?
“초면도 아니고 구면에 찐한 에피소드까지 함께한 마당에, 내가 굳이 너한테 존댓말을 해야 할까?”
‘어, 해야 돼. 그러니까 해!’ 라고 소리 지르고 싶은 마음은 굴뚝이었다. 하지만 나는 공직자, 놈은 건달. 때문에 그 찐한 에피소드로 인해 피해 입을 사람은 바로 나 자신이 아닌가.
“아니…… 요.”
문득 놈의 사악한 얼굴 한구석에 피식, 옅은 미소가 바닷가 모래 속으로 숨어드는 게눈처럼 뿅 나타났다가 뾰봉, 사라졌다.
---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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