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관령
풍력발전단지
아들 저거 풍차예요?
엄마 아니, 풍차는 아니고, 전기를 일으키는 풍력발전기인데 엄마는 여길 지날 때
저 풍경만 보면 마음이 참 좋아.
아들 꼭 바람개비 같아요.
아빠 여기서 보면 그렇게 보이지만, 가까이 가서 보면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커.
아들 얼마나 큰데요?
아빠 기둥 높이가 100m쯤 되고, 날개 직경도 90m 가까이 되고. 공중에 날개가
달려 있는 발전기 몸체도 여기 지나다니는 버스들만 해.
아들 우와, 그렇게 커요? 전기는 얼마나 일으키는데요?
아빠 저거 하나면 1,000가구가 전기를 쓸 수가 있어. 여기 대관령에만 쉰 개가
넘게 서 있으니까 5만 가구에 전기를 공급할 수 있는 거지.
아들 바람이 불지 않으면 발전을 못하는 거죠?
아빠 그럼 못하지. 연이나 바람개비처럼 풍력발전기도 바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는 물건이야. 그런데 여기는 우리나라에서 바람이, 그것도 고마운 바람이
쉬지 않고 부는 곳이거든.
아들 아빠는 어떻게 그런 걸 다 알아요?
아빠 여기는 아빠 고향이기도 하고, 또 아빠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먼저 그 지역에
대해 공부를 하거든. 그래서 여행은 바라본 만큼이 아니라 아는 것만큼 눈이
보이는 법이지.
엄마 나도 좀 비싼 얘기해도 돼요?
아빠 해봐, 어디.
엄마 조선시대 문장가 중에 유한준 선생이라고 계시는데요, 학문과 예술의 즐거움에
대해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누릴 수 있다"고 했는데 여행이야말로
정말 그런 게 아닌가 싶다는 거지요.
아빠 아들, 들었지? 느 엄마가 이런 사람이야.
아들 엄마, 박수.
강릉으로 가는 길 위에 우리는 이 특별한 경치와 첫 인사를 나눈다.
아주 옛부터 대관령 동쪽 아래에 성읍 형태의 나라가 있었다. 이름하여 예국(濊國). 상고시대의 이야기다. 한나라의 군현인 임둔군과 낙랑군이 설치되었다가 사라지고, 다시 자치국가인 동예(東濊)가 이곳에 기틀을 이뤘다. 동예 사람들은 시월이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술을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추었다. 봄에 씨앗을 뿌리고도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춤을 추며 노래를 불렀다. 동예의 이야기가 상고시대의 이야기이긴 하나 아주 먼 훗날 이 지역 사람들이 저마다 모태의 긍지처럼 자랑스럽게 여기는 단오축제와 시월상달의 풍속은 이미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것인지 모른다.
동예에서 고구려 땅이 되면서 하슬라로 불리기 시작했다. 지금도 강릉엔 예스럽게 이 이름을 쓰는 단체와 모임이 많다. 시내에 '하슬라로'라는 길도 있다. 여러 번의 국경 변경 끝에 이곳이 신라의 영토가 된 다음 하슬라의 군주였던 이사부(異斯夫)가 나무로 만든 사자를 배에 싣고 우산국(울릉도)을 평정하여 하슬라 땅으로 귀속시켰다. 그 출정의 바다가 이곳, 강릉의 젖줄 남대천과 동해가 만나는 현재의 강릉항이다.
신라 말에 하슬라에서 명주로 불리다가 고려때(1263년, 원종4년) 처음 강릉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지명에도 성명학이 있는지 지명과 산수가 닮는다. 나는 '여수'하면 그 말 속에 먼저 물이 아름다운 느낌이 들고, '강릉'하고 소리를 내어부르면 그 두 음절 사이로도 대관령의 맑은 물소리와 바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 물이 흘러 동해에 닿고, 바람은 대관령을 넘어 내륙으로 달린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