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너_ 미안해, 더이상 널 사랑하지 않아
‘이다’라는 별칭으로 온라인에서 자기 다이어리 그림일기를 올려 유명해진 정한별(소녀는 없다)과, ‘iwanroom’이라는 온라인 방에서 선보인 신비한 스타일의 그림으로 수많은 네티즌 마니아를 거느린 아이완(추락하는 것엔 날개가 없다)은 디지털 시대가 낳은 예술가들이다. 디지털 시대가 아니었다면 이들의 독특한 세계는 어쩌면 세상에서 빛을 볼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사이버 세계에서 예술이 만들어지고 만나는, 디지털 시대에 대한 실체(미시즈 ‘브라운’의 아들, ‘픽셀 키드’ 물고기를 잡다)와 가상세계라는 소재를 작품의 주제로 삼은 린 허시먼의 작품을 통해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시대(미안해, 더이상 널 사랑하지 않아)에 대해 이야기한다.
#2 나_ 예술적인 일상, 일상적인 예술
신화나 성서 혹은 사군자 등 일상과 동떨어진 주제를 다루었던 예전과 달리, 요즘의 미술은 일상을 주제로 한 작품이 많다. 아니, 일상과 예술의 경계가 불분명할 정도다. 사진 에세이 ‘의자에 관한 단상’은 생활 속에서 눈여겨 보지 않는 의자도 조금만 시각을 달리하면 예술적 일상으로 여길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어서 글쓰기와 이미지 만들기의 경계 없이 그야말로 텍스트-이미지 ‘작업’을 하는 백은하의 작품(어머니의 정원)과, 한때 잘나가던 미술평론가였다가 ‘목수’로 변신하여 예술적인 일상 가구를 만드는 김진송의 작품으로 안내한다(삶의 예술, 생존의 예술). 여기에는 세계적인 사진가도 초대되었다. 장 외젠 오귀스트 아제는 예술적인 일상과 일상적인 예술을 담고 있는 도시의 풍경을 담기 위해 20세기 초 파리라는 도시를 피사체로 삼았다. 그리고 다양하고 화려한 색상과 디자인의 옷을 입은 젊은이, 할머니, 아이 등 도시인의 패션 속에서 예술적 감각을 끌어내기도 한다(삼색도시, 오늘을 기억하라).
#3 우리_ 죽은 예술의 사회
디지털 시대의 가장 큰 변화를 꼽으라면 글쓰기 방식일 것이다. 자판을 두드리는 디지털 시대의 글이 아니라, 펜으로 직접 쓰는 글쓰기의 의미와 그 행위로 그림을 쓰는(?) 유승호 작업을 소개한다(펜혹에 관한 보고서). 사라져가는 것은 ‘펜혹’만이 아닐 것이다. 벽에 그어진 낙서나 기와지붕 등, 예술적 이미지를 품은 동네 흔적도 점차 사라져간다. ‘동네 구경’이라는 주제로 사진 연작이 펼쳐진다. 우리나라 예술의 집합소로 ‘관광명소’가 된 인사동은 어떨까? 인사동을 관할하는 경찰관을 따라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인사동에서 사라져가는 것들과 변화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한다(인사동 경찰관). 물론 우리 사회에는 죽어가는 것과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미래가 공존한다. 뿐만 아니라 지극히 현대적인 작품 활동을 하는 이불, 최정화, 김점선, 안상수, 마리오 보타, 조너선 반브룩, 빌 비올라, 페터 바이벨, 제프리 쇼와의 인터뷰에서 현재와 미래의 예술상을 찾아본다(미래는 항상 현재이다).
#4 미술_ 만질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캔버스에 유화물감으로 그림 그리는 미술과 첨단 과학을 활용한 미술에 이르기까지, 형식과 주제를 모두 넘어서버린 지금의 미술은 그 광범위한 식성과 체형 때문에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다. 흡사 지구를 지배했으나 일순간 사라져버린 공룡처럼(공룡과 오토바이에 관한 명상). 그렇다면 사실적 증거의 상징인 사진은 어떨까. 과연 사진은 누구나 신뢰할 만한 진실이고 사실일까? 하지만 김진형, 신디 셔먼 등의 사진작가들의 작품은 사진이 과연 사실을 담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만 가증시킨다(12개의 알리바이―사진의 진실을 찾아서). 미술은 작가의 마음을 보여주는 매체이기를 넘어서, 관람객이 작품 앞에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느껴야 작품 감상이 되는 단계에 이르렀는데, 이를 야요이 쿠사마와 《마인드 스페이스》라는 전시회를 통해 실증해 보인다(만질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그리고 마음). 그리고 백남준과는 다른 방향에서 세계적 작가로 인정받은 거장 이우환과의 인터뷰가 이어진다. 여기서는 이우환으로 대변되는 우리 현대미술의 동향을 이야기한다(이우환, 만남을 찾아서).
#5 그리고 무엇_ 피상적이고 잠재적인
시대는 빠르게 진화한다. 이에 발맞추듯이 예술은 생활의 변화보다 더 빠르게 진화해간다. 그 변화를 쫓아가지 못하는 사람들 앞에, 명확하지는 않지만 무언가 피상적이고 잠재적인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그것이 무엇일지는 누구도 알 수가 없다. 이런 디지털 카오스에 빠져 어쩌면 우리는 ‘생맹’이 되어가는지도 모른다(디지털 카오스). 그럼에도 그 ‘무엇’은 은밀한 만남 속에서 탄생하는 랑데부 아트의 씨앗이 될 것이다(모자이크 댄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