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유아사망률이라 말하는 이곳의 5세 이하 아동사망률은 남미에서 가장 높다. (…) 이들은 가난하다는 이유로, 학교와 교사가 모자란다는 이유로 교육을 받지 못했다. 마을 사람들 중 글을 아는 사람의 비율은 10명 중 2명밖에 되지 않는다. 마을은 고립돼 있고, 그 속에서 사람들이 또 흩어져 살다보니 생활 식수도 구하지 못하고 있다. (…) “제대로 먹여주지 못하는 엄마라는 게 너무 미안해서 밤을 새워 울었어요. 내가 울자 아기가 옆에서 따라 울었죠. 아기를 안고 달래는데, 아기가 깃털처럼 가벼워 또 울었어요.” (…) “이곳에서는 물이 생명이에요. 우리는 물 때문에 살기도 하고 죽기도 하죠. 우리가 사는 것도, 죽는 것도 다 물 때문이죠.” (…) 사람들은 식수펌프가 생겼다며 비가 오는데도 다들 나와서 춤을 추고, 우리에게 고맙다고 환영의 노래를 부르고 전통악기를 연주해준다. --- 볼리비아 〈영양실조 제로〉 중에서
굳이 보스니아에 대해 짧게 정의해보라 한다면, 나는 그곳이 ‘지구상에서 가장 이율배반적’인 공간이라 말하겠다. (…) 낭만적인 사라예보 장미라는 이름의 밑바탕에는 슬프고 잔혹했던 역사가 짙게 깔려 있었다. 가장 낭만적인 이름 아래, 지구상의 가장 슬픈 역사가 깔려 있는 고통이 아이러니했다. (…) 나 역시 유럽인들은 우리보다 나은 삶을 살고 있을 거라는 막연한 편견을 가진 사람 중 한 명이었고, 그런 나의 편견은 이곳에 와서 무참히 깨져버렸다. 내가 이곳에서 취재를 하지 않았더라면, 이곳 사람들로부터 좀 더 많은 이야기를 듣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아이들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나의 눈은 분명 이들의 파란 눈과 금발, 아름다운 건물만을 담고 돌아갔을 것이다. 그들의 이면에 담겨 있는 전쟁의 상흔과 채 씻기지 않은 상처에 대해서는 눈길을 주지 못한 채, 그들의 깊은 이야기와 진짜 삶의 속내를 가슴 깊이 담지 못한 채 돌아가고 말았을 것이다. (…) 여전히 힘겨운 삶을 살고 있고, 나의 편견을 깨어준 한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전쟁은 15년 전에 끝났지요. 하지만 우리들의 생활은 아직도 전쟁 중이랍니다.” --- 보스니아 〈우리는 아직도 전쟁 중이에요〉 중에서
자원봉사자에 따르면 재혼을 하는 것은 재앙이라고 했다. 네팔, 특히 시골에서는 남편이 죽더라도 남편을 위해 살기를 강요당하며, 다른 남자와 결혼을 하는 것은 매우 불결하게 여겨진다고 했다. (…) 사람들에게 니르말라는 더 이상 마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녀는 마을에서 이미 ‘사회적 질병(Social Disease)’으로 불리고 있었다. (…) 봉사자는 니르말라가 금기를 어겼기 때문이라 했다. 알고 보니 그 마을에서 과부는 항상 흰 옷을 입고, 장신구를 할 수도 없고, 젊은 남자와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아침에 과부를 보면 안 좋은 일이 생길 거라는 미신이 퍼져 과부는 아침에 외출을 맘대로 할 수도 없었고, 고기를 먹는 것은 전 남편의 살을 먹는 것이라 받아들여져 고기도 맘 편히 먹을 수 없었다. 과부로 살아간다는 것은 생활 전반에 걸쳐,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제한당하는 것을 의미했다. --- 네팔 〈재혼은 재앙이다〉 중에서
집 뒤의 개울물을 길어야 하는데, 그 물이 거의 흙탕물에 가까운 것이었다. (…) 물을 긷는 데도 요령이 있는지, 아이는 나무 양동이로 개울물의 윗부분만 살짝 걷어냈다. 꽤나 익숙한 솜씨였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는 동물이라 했지만, 이런 환경에 적응하는 아이의 모습은 그리 장려할 만한 것이 못 됐다. 씁쓸하기만 했다. (…) 아이는 떠온 물을 다시 살폈다. 시간이 지나자 물 안에 있던 흙이나 각종 오염물질들이 가라앉았다. 다시 물의 윗부분을 떠냈다. 그리고 그 물을 끓여서 마셨다. 이들에게는 매우 조심스럽고 정성이 들어가는 과정이었지만, 그래도 위생적으로 안전하지 않은 물이었다. 그 물로 밥도 짓고 국도 끓여 먹었다. 내게도 음식을 건네는데 귀한 음식임을 알기에, 또 그만큼 귀하고 소중한 것을 차마 거절할 수 없어 일단 받아먹었다. 음식을 먹을 때마다 드는 생각인데, 적게 먹고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일수록 더욱 적극적으로 음식을 권한다. 막 먹으라고 권유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작 자기들은 별로 먹을 것이 없다. 그런데 자기들끼리만 먹는 사람들을 보면, 충분한 음식이 있다. --- 베트남 〈가난한 땅에도 꽃은 핀다〉 중에서
사람들의 편견이 이들의 마음을 찌르는 창이 되었다. 에이즈 보균자들은 마을에서 결혼잔치가 있어도 초대받지 못했고, 가는 곳마다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다른 부모들이 보균자들의 아이들과 어울리는 것을 막아 아이들도 상처를 받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마을에서 불편하게 지내는 것보다 같은 처지의 사람들끼리 격려하며 사는 것이 나을 거라고 판단했다. (…) 이들과 이야기를 하며 가장 애달팠던 것은 바로 가난이었다. 가난한 사람들은 아파도 먹을 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병이야 정부에서 제공하는 약으로 하루하루를 살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양보충이다. 하지만 이들은 먹을 것이 마땅찮아 새로운 질병에 걸리거나 합병증으로 악화될 것을 걱정했다. 죽음을 앞두고도 가난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죽음은 미래였고, 당장 오늘 자신들을 조르는 것은 가난이었다. 가난한 사람은 죽기 전에 가난 때문에 이미 살아 있으면서도 죽은 듯한 경험을 한다. 어쩌면 그래서 이들에게 죽음은 낯선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다. (…) “죽을 때까지라도 도움을 받고 싶어요.”
--- 에티오피아 〈죽을 때까지 걱정해야 하는 가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