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께서는 평생을 청정수좌로서 장좌불와長坐不臥, 일일일식一日一食의 두타행을 하시면서 본분종사의 책무를 온전히 하셨습니다. 지금도 늘 우리 곁에 함께하시는 선지식이요, 위법망구爲法忘驅를 보여주신 가야산 정진불로 추앙받고 있는 가람의 수호자이십니다. 스승의 엄정한 안목은 가야산 대쪽으로 수행가풍의 표본이 되었습니다. 대중에게는 넉넉한 자비심으로 무엇이든 일깨워주려고 다가가셨습니다. 다정다감한 덕화의 향기가 가득한 어른으로 세상에 널리 회자되고 있습니다.
스승께서는 늘 “공부하다 죽어라, 공부하다 죽으면 이 세상에서 가장 수지맞는 일이 된다”라고 경책하시면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가야산 환적대 암굴에서 잠자지 않고, 죽음을 넘어서는 정진을 하는 등 보통 수행자들과는 달리 가행정진을 즐기셨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합니다. 제방선원에서도 오직 철야 용맹정진으로 일관하여 대중들의 무한 존경을 받았습니다.
일찍이 해인사 원당암에 재가신도들을 위한 달마선원을 개설하시고 참선을 직접 지도하여 수많은 대중을 교화하시었으며, 지금도 이 선원에서는 큰스님의 수행정신을 바탕으로 안거결재와 정기적인 철야정진의 가풍이 도도히 계승되고 있습니다. 스승께서는 해인총림의 방장으로 대중을 보살피시고, 조계종단의 상징인 종정宗正에 추대되어 종단개혁에 앞장서시며 청백가풍淸白家風의 전통을 바로 세우는데 집중하시었습니다.
이번에 스승 혜암 대종사의 법어 중에서 친필 상당법어집에 교열과 주석을 붙여 그 뜻을 좀 더 알기 쉽게 ??집주 혜암대종사 상당법어집??을 새롭게 펴내게 되었습니다.”
---「혜암선사문화진흥회 이사장 성법 스님의 발간사」중에서
“한 글자 한 글자에 스승의 손가락 자국이 남아 있고 한 줄 한 줄에 스승께서 팔꿈치를 접고 편 흔적이 나타나며, 한 장 한 장마다 스승의 생각이 녹아 있고 한 축軸 한 축軸 마다 후학들에 대한 낙초자비落草慈悲가 가득하니 이 친필 원고야말로 신령스러움이 서린 보물 중에 보물이요, 법보 중에 법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 훌륭한 소설가 시인 등 작가의 육필 원고는 보는 이에게 마르지 않는 영감靈感의 원천이 됩니다. 손때 묻은 책상과 필기도구들까지도 박물관으로 꾸며진 생가生家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무한한 감동을 줍니다. 고인의 생생한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는 친필 원고는 그 무엇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체취와 친근감을 느끼게 하고 많은 생각을 일어나게 합니다. 심지어 당신을 직접 만난 것과 같은 설렘과 따스함과 그리움을 주기도 합니다. 이제 붓과 펜 그리고 만년필을 대신하여 컴퓨터 기계글씨가 모든 필기작업을 대신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육필 원고는 더욱더 귀한 영물靈物이 되었습니다.
다행히도 스승님께서는 친필 원고를 많이 남겨 두셨습니다. 젊었을 때 일본에 머물면서 접했던 여러 가지 문화와 친필 자료의 소중함을 직접 보고 체험하시면서 몸소 실천하신 결과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당신께서 정진 도중에 경전을 보거나 선어록을 열람하다가 공부에 도움이 되거나 마음에 닿는 구절을 발견하면 즉시 메모를 해두는 습관이 더해진 것이기도 합니다. 상단법문도 원고를 반드시 직접 손으로 정리한 후에야 법상에 올라갔습니다.
단정하게 쓰여진 글씨체를 볼 때마다 정신이 차려지고 엄숙해 집니다.
---「해인총림 방장 벽산 원각 스님의 「서문」」중에서
상당법어는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었다. 하나는 출가 대중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재가 대중을 위한 것이었다. 재가 대중을 대상으로 결제를 한 것은 우리나라 불교 역사에서 처음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선불교 보급에 매우 중요하니, 그 중요한 것이 향후 가야산의 전통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이 생겼다. 사실 이게 선불교의 정신이다. 선은 거사불교의 꽃이다.”
다행히도 혜암 대종사의 경우 친필 유고가 남아있었고, 효성스런 제자가 그것을 잘 보존했고, 금상첨화로 그것을 연구자들에게 공개했기 때문에, 위와 같은 문제는 원천적으로 없다.
참으로 은혜롭게도 가야산 해인총림에는 성철과 혜암 두 대종사께서 뒤를 이어 출세出世하셨고, 게다가 돈오돈수의 같은 곡조를 연양演揚하셨으니, 분명 전통이라 할 만하다. 귀중한 이 전통이 잘 계승되어 이 시대에 걸맞게 연주되어 온 세상에 울려 퍼져야 할 것이다.
어느 수행자이든 해인총림으로 깃들어 방석 위에 둥지 튼 동안만은, ??본지풍광??을 종으로 배우고 ??공부하다 죽어라??를 횡으로 익히며, 시절 살펴 조사관을 쳐부수고 살殺과 활活에 자유하며, 인연 따라 파주把住와 방행放行에 자재하며, 신훈新熏으로 손짓하다 본분本分으로 자취 감춰, 천만중생 제도할 밑천 만드는, 그런 호시절 되기를 기대한다. 항차 문손門孫이리오.
---「연세대학교 철학과 신규탁의 「집주후기」」중에서
1999년 8월 7일
용도 : 원당암 철야정진 법문
출전 : [친필사본]③43∼49쪽
자기를 바로 봅시다. 자기가 본래 부처입니다. 참 모습의 자기는 항상 행복과 영광에 넘쳐 있습니다. 극락과 천당 사생육도로 윤회하는 것은 꿈속의 잠꼬대입니다.
참 모습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며 영원하고 무한합니다. 설사 허공이 무너지고 땅이 없어져도 본래면목의 참 모습은 항상 변함이 없습니다.
유형무형 할 것 없이 우주의 삼라만상이 모두 자기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진리는 자기 속에 구비되어 있습니다. 만약 자기 밖에서 부처를 구하면 이는 바다 밖에서 물을 구함과 같습니다.
자기는 영원하므로 종말이 없으며 본래 순금입니다. 탐진치 삼독이 마음의 눈을 가려 순금을 잡석으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모든 중생이 본래 평등한 천진불이라는 생각을 하여 부처님과 같이 받들고 힘을 다하여 남을 도웁시다.
무명의 삼독이 자취를 감추면 마음의 눈이 열려서 순금인 자기 참모습을 바로 보게 됩니다. 아무리 천하고 보잘 것 없는 상대라도 그것은 겉보기일 뿐 본 모습은 거룩하고 숭고한 부처님입니다.
겉모습만 보아 불쌍히 여기고 얕보면 이는 상대를 크게 모욕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같이 부모와 같이 존장과 같이 모셔야 합니다.
현대는 물질만능에 휘말리어 자기를 상실하고 있습니다. 자기는 큰 바다와 같고 물질은 물거품과 같습니다. 세상에 권리를 다 가졌다 해도 풀잎보다 못하고 천하 재주를 가져도 물방울만큼도 못한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것이 아니요 이 세상이 본래 구원되어 있음을 가르쳐 주려고 오셨습니다. 이렇듯 크나큰 진리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참으로 행복하니, 모두 함께 본사 세존과 같이 용맹정진으로 성불하여 고해에 빠진 다생부모를 제도합시다.
莫妄想勇猛精進하라 不知終日爲誰忙고
若知忙裡眞消息하면 一葉紅蓮火中生하리라.
망상피지 말고 용맹정진하라.
모르겠다, 하루 종일 누굴 위해 그리 바쁜고
만일 바쁜 그 속의 참 소식을 알면
한 송이 연꽃이 불 속에서 피리라.
아악 !
佛紀 2543년(1999) 8월 7일
夏安居七日 勇猛精進
慧菴
--- p.278~2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