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BTS를 하루아침에 주목을 받고 스타덤에 오른 신데렐라처럼 묘사하고 있지만, 글로벌 스타로서 이들이 가진 잠재력은 이미 데뷔 시절 즈음부터 감지되었다. 그 흐름의 발원지는 2014년 여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북미 케이팝 축제인 ‘KCON(케이콘)’이었다. 거기서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신인의 자격으로 참가해, 이름조차 생경했던 BTS에게 보내는 미국 케이팝 팬들의 반응이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중략) BTS의 성공은 드라마 같은 전통적인 한류와는 철저히 분리된 매우 ‘음악적인’ 현상이며, 그것이 이제는 그들만큼이나 유명해진 ‘아미(A.R.M.Y)’라 불리는, 다분히 독점적인 성격을 가진 팬층이 뿜어낸 화력에 의해 떠받쳐졌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 KCON 2014 현장에서 발견한 BTS 현상의 단초_ 18~19pp.
증명. BTS의 리더이자 메인 래퍼인 RM의 첫 번째 믹스테이프가 담고 있는 메시지는 이 한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그리고 [RM] 앨범은 그러한 자기 증명의 과정에 충실하다. 우리는 이 믹스테이프의 등장 배경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이 기억하다시피, BTS는 ‘힙합 아이돌’로서의 기치를 올리며 출발했다. 진정성에 대한 검증에 늘 까다롭고 취향이 고약한 팬덤을 다수 거느리고 있는 힙합이란 장르를 건드린 대가는, 필연적으로 거쳐야 하는 시험 관문이었다. ‘아이돌’이라는 포맷
은 그들이 가진 진짜 실력과는 무관하게, 어떤 식으로든 그들을 특정한 음악과 퍼포먼스로 강제했고, 이것이 비판자들에게 빌미가 되었다. 힙합 신 일각에서는 RM과 슈가 등 그룹의 메인 래퍼들에게 화살을 돌렸는데, 게임의 구도가 애초부터 그들에게 공평하지 못했다. 바로 그 배경에서 나온 것이 이 앨범이다. [RM]은 ‘아이돌 래퍼의 솔로 작’이라는 개운치 않은 타이틀과는 별개로, 이름을 가리고 들어도 결코 손색없는 랩이 담겼다. 비트 역시 그의 취향과 다양한 테크닉의 결을 드러내기 위해 정교하게 선택됐다.
/ Review_RM BY RAP MONSTER : Album Review_ 78p.
지난 수년간 내가 미국 현지에서 만나본 ‘아미’들은 BTS의 음악이 “다르다”는 데 입을 모은다. 힙합을 포함한 그들의 음악과도 그리고 그들이 지금껏 접해온 케이팝과도 다른 느낌을 준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겠지만, 그 ‘다름’의 핵심은 메시지의 보편성과 건강함이다. BTS는 그간 아이돌 음악에서 기피되던 청춘과 성장의 내러티브를 콘셉트이자 정체성으로 적극적으로 껴안아 그것을 심오한 메시지와 세련된 음악 안에 녹인 사실상 유일한 케이팝 그룹이다. ‘학교 3부작’에 이은 ‘화양연화’ 연작을 통해 구체화하기 시작한 이들의 이야기는 추상적인 콘셉트와 허구적인 세계관이 주류를 이룬 기존의 케이팝 아이돌 음악과 다르며, 때로는 지나친 자기 증명과 소위 ‘스웨그’라 불리는 마초적 허세의 내러티브에 탐닉한 미국의 주류 힙합과도 달랐다. ‘쩔어’나 ‘불타오르네’가 보여주는 들끓는 에너지, ‘사이퍼’ 시리즈와 ‘Mic Drop’을 통해 드러나는 젊은 뮤지션들의 당찬 면모, ‘고민보다 Go’ 등에서 보이는 세태 비판, 무엇보다 ‘Epilogue: Young Forever’와 ‘봄날’ 등에 담긴 상처받기 쉬운 청춘의 좌절과 슬픔 그리고 그 안에서 발견한 희망적인 이야기는 케이팝의 가장 큰 약점이던 메시지의 진정성과 태도의 한계를 극복해낸 원동력이 되었다. 이 다양하고 진솔하며 보편적인 메시지는 트레이닝과 현지화 전략만으로는 결코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다.
/ Column_현지화 전략이 아닌 내러티브와 진정성_ 111~112pp.
피 땀 눈물 - “ 니가 아닌 다른 사람 섬기지 못해 알면서도 삼켜버린 독이 든 성배”
데뷔 이후 가장 뚜렷한 음악적 변신을 시도한 작품 중 하나로, 힙합 아이돌의 공식에서 벗어나 팝 그룹으로서의 크로스오버를 꾀한 상징적인 곡이다. 2010년대 중반부터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댄스홀과 그 하위 장르인 레게톤 및 뭄바톤의 영향을 두루 흡수했다. 본토 장르들이 가진 파티 분위기와는 달리, 이 곡은 상징적인 가사를 바로크적인 신비주의 이미지와 결합해 장르의 관습과는 무관한 음악을 탄생시켰다. 전주도 없이 지민의 목소리만으로 시작하는 초반부의 강렬함, 동작 하나하나가 관능미를 극대화시키는 무대 연출 등 모든 부분에서 단연 이들의 커리어를 대표하는 곡 중 하나로 평가할 수 있다.
/ Review_WINGS : Track Review_ 165~167pp.
BTS의 작업이 몇 곡만으로는 전모를 파악할 수 없는 하나의 ‘총체BTS Universe’를 이룬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확실히 이 대목에 흥미를 느낍니다. 어떤 팀이 멤버 각자를 캐릭터화해서 지속적으로 집합적 서사를 써나가는 사례를 여태 본 적이 없습니다. 게다가 팬들의 삶과는 동떨어진 무대 위 스타의 삶을 재료로 가공하여 일방적으로 공급하는 서사가 아니라, 동시대 청년들의 보편적 감정이입을 이끌어내어 그들이 자신의 처지를 투사할 수 있는 스크린으로서의 서사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이 서사에서 창작자와 수용자는 한 몸인 것처럼 보입니다.
/ Interview_상처받은 청춘에 대한 위로의 메시지 : 문학평론가 신형철_ 194~195pp.
지금 생각해보면, BTS가 팝이 아닌 힙합에 뿌리를 둔 것이 잘 어울리는 옷이었다고 생각한다. 힙합은 ‘필요’와 ‘투쟁’의장으로부터 유래한 장르인데, 바로 그 지점에 BTS의 음악적 맥락이 있다고 생각한다. BTS가 그들의 마음이나 문화에 관한, 혹은 세대의 투쟁을 대변하는 노래를 굳이 만들어
야 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그들은 아마 (확실히는 몰라도) 그래야만 하지 않았을까? 물론 BTS가 빅히트 엔터테인먼트라는 소속사를 통해 전략적으로 만들어진 아이돌 그룹이라는 걸 잊어선 안 되겠지만, 그룹이 만들어진 이후 그들의 행보에서 ‘팝’의 요소는 자취를 감추었다고 생각한다. BTS는 자신들의 필요에 의해 그들의 음악과 예술을 창조하는 팀이지, 특정한 노래나 콘셉트를 강요받는 뮤지션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 안에 있는 것들 그리고 자기에게 의미 있는 것들을 한다. 이는 그들의 소셜미디어 전략에서도 엿보인다. 그들의 메시지는 언제나 매우 개인적인 것들로 이루어져 있고, 이는 매니저나 기획사에 의해 걸러지지 않은 것이다.
/ Interview_케이팝 산업의 새로운 작동법 : [빌보드] 칼럼니스트 제프 벤저민_ 271~272pp.
성악과 교수 혹은 팝페라 보컬리스트로서 그들의 보컬에 대한 전반적인 평을 해보자면, 먼저 지민 군은 또렷한 딕션diction(발음)과 직선으로 내지르는 듯 쭉 뻗어 나가는 고음 스킬, R&B적 감성의 가성 테크닉이 매우 도드라지는데요. 바로 이러한 점이 그의 노래를 듣는 이로부터 호소력을 얻는 데 지대한 작용을 합니다. 정국 군에겐 절제미가 돋보입니다. 소년과 남성 사이의 단정하고도 청초한 미성 위에 가끔 두성으로 부드럽게, ‘레가토’로 연결하는 그의 보컬 테크닉을 저는 무척이나 높게 평가해주고 싶습니다. 뷔 군은 다른 멤버들에 비해 남성적인 중저음의 보이스톤 컬러가 참으로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이와 함께 감미롭고 소프트한 톤도 잘 구사해내는데, 무엇보다 깊은 감성을 음악에 잘 녹여내는 강점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노래에 감정을 자연스럽게 투영해낼 수 있다는 점은 어떤 장르의 뮤지션이든 굉장한 장점으로 꼽을 수 있지요. 진 군은 ‘은빛 보이스’라고 표현하고 싶은데요. 마치 귓가에 속삭이는 듯 어찌 보면 눈에 띄게 화려하거나 웅장하지 않고, 선천적으로 다소 크지 않은 볼륨의 보이스를 가졌죠. 하지만 호흡이 안정되어 있어 매우 촉촉한 가성과 함께 자연스러운 바이브레이션이 장착된 진성과 두성을 쉽게 오갈 수 있다는 점이 매우 든든한 장점입니다. 게다가 진 군은 평소 그가 얼마나 보컬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매 앨범마다 향상된 보컬 테크닉을 기대 이상으로 구현해내고 있기에, 앞으로 얼마나 더 발전할지 무척 기대됩니다. 나머지 멤버들 또한 메인 보컬 포지션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화음을 유려하게 컨트롤할 줄 아는 능력을 갖췄고, 리듬감 역시 수준급이죠. 더군다나 무대에서 춤이든 랩이든 노래든 그들의 진정성 가득한 음악을 대하는 태도는 모든 장르의 뮤지션들에게 큰 귀감이 되리라고 봅니다.
/ Interview_한국인 그래미 선정위원이 보는 BTS 현상의 의미 : 팝페라 테너 임형주_ 332~333pp.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