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은 동시성의 원리라고 명명할 수있는 아주 매혹적인 생각, 즉 인과율의 원리와 정반대되는 샐각을 포함하고 있다. 사실 인과율이란 단지 통계적인 진리에 불과하며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사건이 어떤 원인에서 어떤 결과로 발전했는가를 따지는 것이 인과율의 원리라면, 같은 시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우연한 일치를 단순한 우연 이상의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동시성의 원리이다.
--- p.17,---pp.6-11(0책에서)
올빼미야 올빼미야
내 자식을 잡아먹었거든
내 둥우린 헐지 마라.
알뜰살뜰 길러낸
어린 자식 불쌍하다
하늘 흐려 비 오기 전
뽕뿌리를 멋겨다가
창과 문을 엮었더니
이제 너희 낮은 백성이
감히 나를 모욕하느냐
이 두 손을 바삐 놀려
갈대 이삭 뽑아다가
하루 모으고 이틀 모으고
입부리도 병들었네
내가 쉴 곳 없었기에
내 날개는 늘어지고
내 꼬리는 맥빠졌네
내 둥우리 위태롭게
비바람이 흔드나니
슬픈 울음 절로 나네
--- pp.239-240
영원의 고리 위에 인간이 만든 나라는 하나밖에 없다. 주나라. 그 이전의 모든 나라는 주나라에 도달하려는 꿈, 그 이후의 모든 나라는 주나라로 돌아가려는 꿈이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으로 살아 있었던가. 나의 생은 영원한 꿈속의 물방울 하나. 꿈 속의 꿈이었다....
--- p.353
어두컴컴한 옥사 안에 어느 정도 눈이 익어지자 승헌은 너무나 살벌한 광경에 다리를 덜덜 떨기 시작했다. 옥사는 중앙의 복도를 두고 아이의 팔뚝만한 창살을 둘러친 감방이 좌우에 각각 2개씩 설치되어 있었고 감방이 끝나는 곳에는 다시 넓은 직사각형의 공간이 있는, 말하자면 T자를 옆으로 눕힌 듯한 구조로 되어 있었따. 승헌을 오금이 저리게 만든 것은 바로 저 감방이 끝나는 정면이었다.
정면 벽에 걸려 얼른 눈에 들어오는 것이 발꿈치의 힘줄을 끊어낼 때 쓰는 단근자 한 벌, 주리를 틀 때 쓰는 주뢰 한 벌, 죄인을 때려 장살할 때 쓰는 주장 여남은 개, 살갗을 지질 때 쓰는 커다란 인두 등이었던 것이다. 아이고, 어디 그뿐이랴. 문이 열린 감방을 살펴보니 피칠갑을 한 채 죽어 거적에 덮여 있는 송장 세 구가 바닥에 나란히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간이 오그라드는 공포에 눈을 돌리던 승헌을 그 맞은편 감방 널판위에 누워 있는 아낙네를 보았다.
--- p.60
나는 늙은 것일까? 지금 죽음으로 다가가고 있는 것일까? 노인의 닫힌 눈꺼풀 아래 눈동자가 복잡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곧이어 어떤 불멸의 느낌이 그런 고뇌를 덮어버렸다. 불현듯 소시적에 읽은 이상은의 시가 노인을 따라왔다. - 홀로 저무는 날의 방울 울이며, 한가히 지팡이에 기대 있노라. 이 세상느 먼지와 티끌이거니, 내게 어찌 사랑과 미움이 있으랴 - 추억이 눈처럼 내려왔다. 추억의 눈을 덮고 방울소리를 울리며 환하게 빛나는 얼굴이 있었다.
--- p.
그날 이후 세상은 마치 곁눈질로나 볼 수 있는 위협적인 어떤 것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람의 소망이 대부분 다른 사람과의 경쟁속에서, 다른 사람을 좌절시키고 다른 사람의 자존심에 상처를 냄으로써 달성된다는 무서운 이치를 처음으로 가르쳐준 이야기였다.
--- p.
『취성록』을 둘러싼 의문은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 점점 더 혼란을 가중시켰다. 작가인 이인몽의 정체를 알 수 없으니 그의 기록이 사실인지 허구인지도 종잡을 수 없게 되었다. 아, 이인몽이 누구인지 추정만 할 수 있다면 『취성록』은 충분히 사료가 될텐데. 머리를 싸매고 방바닥을 뒹구노라면 역사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뭐가 뭔지 모를 의미들이 어지럽게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나는 점점 자신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안 불쌍한 이발사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 이 기막힌 이야기를 나만 알고 있다니, 이건 말도 안 되지……하는 안타까움이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것이었다.
--- p.15
" 나, 나으리, 대, 대교 나으리, 대교나리"
" 무슨 일인고? "
인몽이 대님을 매다 말고 방문 밖으로 썩 나갔다. 잔뜩 얼어붙은 목소리로 이인몽을 찾으며 헐떡거리는 사람은 수직 내시 문오덕이었다. 언제나 재를 발라놓은 듯이 창백하던 얼굴에 힘줄이 서고 발갛게 달아 있다. 문 내관의 그 흥분한 얼굴을 보자 인몽은 정신이 번쩍 든다. 잠시 눈을 붙인 사이에 무슨 안 좋은 일이? 규장각에 혹시 불이라도 났다면..... 버선발로 다가가는 인몽의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 나으리, 거, 검서관 나리가, 장 나리가 그, 글쎄, 그 "
" 이놈아, 무슨 소린지 좀 똑독히 말하렷다! 검서관이 대체 어쨌단 말이냐? "
" 주, 죽은 것 같사와요. "
--- p.27
『취성록』을 둘러싼 의문은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 점점 더 혼란을 가중시켰다. 작가인 이인몽의 정체를 알 수 없으니 그의 기록이 사실인지 허구인지도 종잡을 수 없게 되었다. 아, 이인몽이 누구인지 추정만 할 수 있다면 『취성록』은 충분히 사료가 될텐데. 머리를 싸매고 방바닥을 뒹구노라면 역사의 저 밑바닥으로부터 뭐가 뭔지 모를 의미들이 어지럽게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나는 점점 자신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안 불쌍한 이발사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 이 기막힌 이야기를 나만 알고 있다니, 이건 말도 안 되지……하는 안타까움이 가슴을 답답하게 하는 것이었다.
--- p.15
" 나, 나으리, 대, 대교 나으리, 대교나리"
" 무슨 일인고? "
인몽이 대님을 매다 말고 방문 밖으로 썩 나갔다. 잔뜩 얼어붙은 목소리로 이인몽을 찾으며 헐떡거리는 사람은 수직 내시 문오덕이었다. 언제나 재를 발라놓은 듯이 창백하던 얼굴에 힘줄이 서고 발갛게 달아 있다. 문 내관의 그 흥분한 얼굴을 보자 인몽은 정신이 번쩍 든다. 잠시 눈을 붙인 사이에 무슨 안 좋은 일이? 규장각에 혹시 불이라도 났다면..... 버선발로 다가가는 인몽의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 나으리, 거, 검서관 나리가, 장 나리가 그, 글쎄, 그 "
" 이놈아, 무슨 소린지 좀 똑독히 말하렷다! 검서관이 대체 어쨌단 말이냐? "
" 주, 죽은 것 같사와요. "
--- p.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