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라는 말의 뜻은 큰어머니이다.실제로 영남 지방에서는 얼마까지만 해도 할머니를 큰 어머니라고 불렀다.요즘 여인들이 곰곰이 새겨볼 만한 뜻이다. 어머니보다 더 큰 존재라 함은 먼저 어머니로서의 영역이 그만큼 넓어졌음을 말한다.바로 자기 몸에서 난 자식만이 아니라 그자식의 자식에게까지 모성이 드리움을 함을 뜻하며 나아가서는 이웃과 사회에게까지 모성이 드리워야 함을 뜻한다. 죽을때까지 핏줄에만 얽매인 어머니는 진정한 큰어머니가 아니다.
--- p.198
하늘과 땅, 그리고 그 사이에 펼쳐진 모든 것은 저마다 존재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사람이 없으면 아무런 의미를 가지지 못한다.
--- p.158
출산이 여성으로서 매력을 현저하게 떨어뜨리기 때문에 싫다는 여자들도 있다. 여자의 매력을 성적인 방향으로만 국한시키면 어느 정도는 사실이고, 그걸 잃게 되는 것은 여성으로서는 쓰라림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그 말은 처녀적의 매력만으로 일생 남성들로부터 음란스러운 눈길을 느끼며 살겠다는 뜻인데 그 억지스러움은 따로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거기다가 이미 결혼까지 해놓고 몸매가 망가진다고 아이를 갖지 않겠다는 주장을 들으면 그저 그 거대한 벌거숭이 이기가 아연할 뿐이다.
--- p.157
아직 펴내지도 않은 책을 두고 그 내용보다는 오도된 반응에 먼저 마음을 써야 하는 야릇한 경우를 이번에 겪었다. 연재라는 발표 양식과 선동적인 매스컴의 속성 덕분일 줄안다. 원래 이 작품을 구상한 의도는 우리의 삶에 한 본보기가 될 만한 여인상을 역사 속에서 발굴해 내는 데 있었다. 그런데연재 첫회부터 반(反)페미니즘 작품으로 낙인찍혀 그 방면의 논객들로부터 집중적인 포화를 받았다.
--- p.223 작가의 말 중에서
내가 보기에 진지하고 성실하게 추구되고 있는 페미니즘에 저항할 논리는 이 세상에 없다. 오랫동안 이 세상이 남성을 위주로 편성되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반페미니즘의 논리는 시대착오적인 구호로 마땅하다. 페미니즘을 비판할 수 있는 것은 다만 그것이 지나쳤을 때뿐이다.
--- p.224, 작가의 말 중에서
그런데 이제 쯤은 너희에게도 묻고 싶은 것이 있을 것이다. 그토록 다양한 내 성취에도 불구하고 어찌하여 사임당이나 난설헌 처럼 널리 알려지지도 못하고 그 남겨진 자취조차 적은가 하는 물음이 그러하다. 이제 그런 물음에 대답할 때가 되었다. 조선 후기 삼백년 내내 정치 권력에서 소외당해온 남인의 영수를 내가 낳고 길렀다는 것도 그 원인의 일부지만 그보다는 나의 두번째 선택이 더 큰 원인이 될 것이다.
--- pp. 53-54
그런데 내게는 그런 권유들이 마치 자기 성취를 원하는 여성에게는 가정은 감옥이고 남편은 폭군이며 아이들은 족쇄라고 외치는 것처럼 들린다. 현모양처란 무능과 불행의 다른 이름이고 내조와 양육은 허송세월의 동의어인 듯하다. 나는 요즈음 유행하는 여성의 자기 성취에 관한 논의에 영악하고 탐욕스런 자본주의의 간계가 끼어들지 않았는지 솔직히 의심이 간다.
--- 본문 중에서
그러나 나는 믿는다. 틀림없이 세상의 많은 것은 변하지만 더러는 변하지 않는 것들도 있다. 어떤 것들은 시간의 파괴력을 이겨내어 존재하고 어떤 원리들은 시대의 변화를 뛰어넘어 작용한다.사람의 딸로 태어난 너희가 이 세상에서 걸어가야 할 길에도 그런 것들은 있다.
--- p.1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