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훈련받은 정신과 의사다. 그러니 이 상황을 다룰 기술이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나는 그저 충격으로 몸서리치는 비참한 남편일 뿐이다. 암스테르담에서 그랬듯 아내의 섬망 증세는 이번에도 몇 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그 지옥 같은 시간 동안 나는 아내의 눈에 띄지 않는 구석에 숨어서 아내의 증상이 가라앉고 대화가 가능해질 때까지 기다린다. 그러나 나는 조앤의 간병인이고 주 보호자다. 어떻게든 조앤과 정상적인 대화를 해보려 노력하지만 계속 거부만 당한다. 결국 나는 다른 사람인 척하며 아내에게 어떻게 도울 수 있겠냐고 묻는다. “이 사기꾼 내보내고 내 진짜 남편 찾아와요.” 조앤은 울면서 애원한다. --- p.13~14
뒤돌아보면 우리가 그와 함께 보낸 두 시간 중에서 99퍼센트의 시간이 진단 설명에만 쓰였다. 진단만 명확하게 내렸을 뿐 우리에게 닥친 일이 과연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은 거의 하지 않았다. 중요한 건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가 아닌가. --- p.25~26
엄마와 특히 각별했던 우리 아들은 한번은 엄마를 가족의 일상 안으로 들이기 위해 아빠가 더 노력하지 않는다면서 나에게 성을 냈다. 나는 아들을 비난하지 못했다. 어쩌면 나는 조앤의 침묵을 방치하고 내 시간을 갖고 싶었을지 모른다. 이는 많은 주 간병인에게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방어기제라 할 수 있다. 내 나름대로는 나만의 시간이 거의 없어 힘겨워하고 있었다. 아들의 공격이 정당했다고, 나는 나중에야 깨달았다. --- p.33~34
가족 보호자는 별다른 선택의 여지 없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관계에서, 나에게 너무나 중요한 의미를 가진 사람이 지금 도움을 청하면 나는 그 자리에서 도움을 준다. 한 발 더 나아가 그 사람이 돌봄을 필요로 하는 한, 그리고 내가 할 수 있는 한 이 일을 할 것이라 결심한다. --- p.76
나는 노새처럼 고집스럽게 버텼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조앤을 집에서 돌보려 했다. 내가 그렇게 약속했었고 조앤도 내가 그 약속을 지키길 기대하지 않았나. 그렇게나 단순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런 단순함을 허락하지 않았다. 내가 그 약속을 했던 여성은 10년 동안 치매를 앓은 여성과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나도 그때와 똑같은 간병인이 아니었다. --- p.96
조앤이 불편해할 때는 모르핀 한 방울을 더 넣어달라 요청하고 상태가 악화될 때는 호스피스 의사에게 약용량을 조금 늘려달라 했다. 마지막 고통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면서도 죽음의 순간에 고통 받지 않기를 바랐다. 모르핀은 고통을 완화시키는 것 같았다.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조앤은 평화로워 보였다. 호흡이 느려졌지만 숨을 쉬는 게 그렇게 힘들어 보이진 않았다. 그 마지막 밤 몇 시간이라도 눈을 붙이기 위해 우리는 집으로 갔다. 밤에 근무하던 간호사가 약속대로 연락했을 때, 우리 모두 조앤의 침대 곁으로 서둘러 갔으나 조앤은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지난 며칠 동안 작별 인사를 계속했었다. 우리는 안심했다. 고통의 시간은 끝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