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박을 터뜨린 아이템은 마니아 시장을 타겟으로 하여 이른바 외전(外傳)이라고 불리는 상황을 연출하게 된다. 소설이나 영화가 큰 인기를 끌었을 경우 단순히 그 줄거리를 이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원편에 등장한 특정 캐릭터나 상황을 중심으로 별도의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것을 지칭하는 말인데, 일반적으로 원전과 연관된 다른 시대나 또 다른 공간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활용, 원편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유지하면서 전혀 다른 느낌의 또 다른 이야기를 생산해 내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출판만화나 애니메이션의 경우 거의 고정화된 기술이고, <007 시리즈>나, <스타트렉>, <스타워즈 시리즈> 등이 헐리우드 외전 시장을 탄탄하게 형성하고 있다.
『링 0-버스데이』는 일본대중문학의 수준을 한 차원 높인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링 시리즈」의 외전격인 작품. 정확히 말해 속편은 아니다. 「링 시리즈」는 루프계와 현실계의 호응을 도모하며 막을 내린 3편 『링 3-루프』로 종결되었다고 보면 된다. 이 책은 링 시리즈의 확대 재생산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모든 저주의 출발점인 사다코의 베일에 쌓여 있던 청춘 시절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된다. 사다코라는 존재 자체가 링 바이러스를 창조하게 되고 그 모든 공포를 몰고 왔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외전이 갖추어야 할 캐릭터나 상황 중심의 심도 깊은 전개방식을 효과적으로 구현하고 있다.
60년대 말 도쿄의 한 극단에서 연기를 배우는 견습 연구원으로 생활하고 있는 사다코는, 그녀의 폐쇄적인 성격으로 인해 극단 관계자들과 농밀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다. 딱히 흠 잡을 데가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언제나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모습이 사람들로 하여금 붙임성 있게 다가오는 것을 막고 있는 것이다. 특히나 연극 <가면>의 주연을 맡고 있는 사다코의 선배는 노골적으로 악의적인 반감을 드러내게 된다. 그러던 중 사다코가 극단에 나타난 이후로 어쩐지 기분이 좋지 않고, 밤마다 우물과 낡은 집이 나타나는 꿈을 꾼다는 말을 듣던 극단 성원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는데, 그 이유는 자신들도 똑같은 공포를 밤마다 꿈속에서 만났기 때문이었다.
『링 0-버스데이』는 그간 출간된 3편의 링 시리즈를 유기적으로 결합시킨 후 다시 3개의 단편으로 분할한 구조를 택하고 있다. 각각의 시리즈에서 등장한 주연과 조연들이 새로운 캐릭터로 각각의 역할을 재분배 받아 새로운 드라마를 연출해낸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3편의 에피소드의 축을 이루고 있는 메인 캐릭터를 여성이 창출하고 있다는 것이다. 역자의 추리를 빌어 설명하자면, 각각의 여자 주인공은 탄생을 경험하여 진정한 사랑의 결실로서의 아이를 잉태하게 된다는 의미가, 여성에서 시작되는 탄생 신화의 원형적 이미지를 답보하고 있다는 의미 정도로 해석된다. 저자는 이러한 상황을 다음과 같은 안내로 해설한다.
"탄생이라는 모티프는 처음부터 3부작에 내포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그것을 테마로 외전(外傳)을 써 보았다. 외전이라는 것은 이른바 영화 편집 작업중에 잘라버렸던 필름 같은 것이다. 본편에서는 스토리의 리듬상 채용하지 않았지만 사실 본편보다도 무섭고 서스펜스 넘치는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다. 더구나 이 이야기들은 독자들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소설가만이 알고 있는 드라마의 퍼레이드이다. 나만이 아는, 숨어 있던 『링』, 『링 2-라센』, 『링 3-루프』의 세계를 즐겨 주었으면 한다."
아쉬운 상황이 있다면, 작가의 이러한 순수한 의도와는 달리 이 작품은 친절이 지나쳐 지루하다 싶은 드라마가 편집되었다는 것이다. 『링』이라는 작품이 가지고 있는 공포의 시작이 어디에서 기인되었는지를 너무도 자세하게 부연 설명하다 보니, 전작 시리즈에서 보여 주었던 공포의 전염과 증폭이라는 소스라치는 스릴이 다소간 희석되어 버린 것이다. 전작을 읽은 사람이라면 이미 사다코와 우물의 관계는 익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물 이야기를 결말 부분에 배치하여 작품의 공포감을 소멸시킨 것은 실수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가이낙스의 영화 <신세기 에반게리온>을 TV판으로 보고, 극장판 를 본 사람이라면 익히 짐작이 갈 듯한 상황이다. 2편의 장편으로 구성된 극장판 에반게리온의 1부 에서 지루하다 싶을 정도로 요약적인 TV판의 재편집이 영화의 긴장감을 떨어뜨렸듯이, 『링 0-버스데이』의 필요없어 보이는 듯한 부연 설명은, 인간의 원한이 비디오 테이프를 통해 저주로 전염되는 과정은 보여주면서도 그 원인을 이면에 숨긴 방식을 통해 상상력으로 증폭되는 공포를 창조했던 전작의 공포를 파괴해 버렸다. 차라리 외전이라는 형식을 빌지 않고 시리즈의 맥을 이어 가는 속편을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을 남기는 작품이다. 좀 찝찝하지만 스즈키 코지의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