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도 걸어도」와 「원더풀 라이프」의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소설 「환상의 빛」을 영화화하는 것으로 장편 연출 경력을 시작한 건 당연한 일이다. 이것은 불현듯 남겨진 자가 삶에 끝없이 메아리치는 비극적 순간의 의미에 대해 곱씹는 이야기니까. 이때 미야모토 테루가 눈을 두는 것은 난폭하게 틈입한 짧은 순간이 아니라, 그곳을 향해 나선형을 그리며 고통스럽게 맴도는 긴 세월이다. 삶과 죽음의 경계선 위에 걸쳐 있는 박명의 빛줄기를 바라보며, 그는 시간의 소금기가 묻어 있는 아름답고 쓸쓸한 문장들을 또박또박 적어나간다. 생의 진창 속 시린 발목을 이제 그만 문질러 없애고 공기 속으로 휘발되고 싶은 피로가 있다. 하지만 그 빛 너머로 훌쩍 넘어갈 수 없는 지금, 대답 없이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누군가는 말을 걸고 또 건다. 미야모토 테루가 그랬고, 고레에다 히로카즈도 그랬다. 해답이 끝없이 미끄러지는 질문들의 연쇄가 결국 문학을 만들고 영화를 빚는다. 아마 삶도 그럴 것이다.
이동진 (영화평론가)
필사적으로 침묵을 경청해야 하는 영화들이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환상의 빛」도 그랬다. 가늠조차 못할 이유로 남편을 잃어버린 유미코는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검고 긴 옷으로 몸을 감싼 그 여자의 혼잣말과 인생을 향해 던졌을 힐문들을 오랫동안 상상했다. 영화를 먼저 접한 한국 독자에게 소설 「환상의 빛」은 뒤늦게 도착한 유미코의 편지다. 하지만 그것은 서러운 독백도, 죽은 남편을 그리는 ‘미망인’의 연서도 아니다. 유미코의 수취인은 차라리 신(神)이다. 쓴다는 행위를 통해 버틴, 기도에 가까운 문체의 이 소설은 두려운 진실을 포함하고 있다. 예컨대 인간은 살기 싫어서가 아니라, 그저 죽고 싶어서 죽을 수도 있는 존재라는 것. 그리고 생의 무도한 불가해함은 가혹한 허방인 동시에 매일 몸을 일으켜 다시 살게 만드는 요염한 신기루-환상의 빛이라는 것.
김혜리 (「씨네21」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