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기 초 출생. 5세기 중엽 아라비아 반도의 중앙 지역인 나즈드에 세워진 킨다 왕국의 왕자이자 시인. 한때 향락적인 삶을 보냈고 궁에서 나와서도 각지를 다니며 기인들과 함께 지냈지만, 부친 후즈르가 적국의 사주를 받은 부족에 의해 살해당하자 복수와 왕권 회복에 매진했다고 한다. 아랍문학사에서 다양한 주제로 구성되는 자힐리야 시 형식을 완성시킨 시인으로 평가 받는다.
543년 ~569년. 뛰어난 시인들을 배출한 명문가 출신의 젊은 시인. 어릴 적 부친이 사망한 뒤 삼촌들의 학대 속에서 성장했으며, 향락에 탐닉했다. 알히라 국의 궁에서 일했으나 유명 시인으로서 오만한 태도를 보이고 왕을 풍자하는 시를 짓는 바람에 왕명에 의해 젊은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였다.
530년경~627년. 자신의 작품을 발표하기 전 1년간 검토할 만큼 공들여 시를 썼던 시인. 무자이나 부족 출신이지만, 가따판 부족 영토에서 살았으며, 백 살 가까이 장수했다. 유명 시인들을 배출한 가문 출신으로, 가문 내 시인들 사이에서 성장하면서 시작(詩作) 역량을 키웠다. 고상한 품격의 소유자였던 그는 평화를 추구했던 하림 이븐 시난이나 부족 내 고귀한 인사들을 칭송하는 시를 지었다.
사망 661년. 스스로 사는 게 지겹다고 여겼을 만큼 장수했던 아미르 부족 출신의 시인. 그는 백 살 가까이 살았다고 전한다. 부족 내 귀족층에 속한 지도자이자 기사(騎士)로서, 경건함과 인애의 정신을 갖춘 인물이었다. 형제 아르바드가 벼락을 맞아 사망한 일로 심적인 고통을 겪기도 했다. 이슬람 시대를 맞이해 629년경 이슬람 신자가 되었다.
사망 600년경. 타글립 부족 출신으로, 자부심과 불굴의 정신, 격정을 지닌 시인. 시적 재능과 웅변술 등 언사 능력과 더불어 기사도, 관대함, 용맹함 등 지도자로서의 자질을 갖추어 이른 나이인 15세에 부족장이 되었다. 부족을 지키고 전쟁에 참가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전한다. 특히 알히라 국 아므르 왕이 시인의 모친에게 굴욕을 주자 그 자리에서 칼로 왕을 시해한 이야기가 유명하다.
사망 615년경. 영웅 자질을 지닌 기사이자 시인. 압스 족 출신이지만, 어머니가 에티오피아에서 포로로 잡혀온 흑인 노예였기에 그 또한 노예 신분이었다. 그러나 자유를 얻고자, 또한 사랑하는 사촌여동생 아블라와 결혼하고자 부단히 노력하여 용감한 전사로 성장했으며, 전쟁에 나가 부족이 인정하는 혁혁한 공을 세워 꿈꾸어온 생애의 목표를 이루었다. 그는 오늘날 아랍인들이 기억하는 영웅 무용담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6세기 생존. 바크르 부족의 원로이자 현자였던 시인. “알하리스보다 더 자부심이 크다”라는 속담이 생겼을 정도로 자부심이 강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지적(知的)이고 침착하며 인생경험이 풍부하여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능하였다. 알히라 국의 왕이 시를 듣고 감탄해 나병 환자였던 그에게 직접 음식을 권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아랍어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 아랍어문과를 졸업했다. 수단의 국제 카르툼 아랍어연구소를 거쳐 요르단 대학에서 중세 동부지역 아랍인의 전쟁시(戰爭詩)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아랍의 고대·중세 시문학을 연구하고 있다. 대표 논문으로「 중세 아랍시에 나타난‘ 몽골과 이슬람 세계와의 충돌’에 관한 연구」「 ‘자힐리야-이슬람 전환기’의 아랍시 연구」「 자힐리야 시의 전승에 관한 연구」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 『아랍시의 세계』 『한국어-아랍어 사전』(공저) 『중동여성문학의 이해 1』(공저) 등이, 그리고 옮긴 책으로『 황금마차는 하늘로 오르지 않는다』『세계민담전집-아랍편』(편역)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