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차 당대회에 의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포기는 어떤 의미에서는, 그리고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개념을 해방시켰습니다. 우리는 왜 그리고 어떻게 그러한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하지만 1976년 프랑스에서 이러한 해방의 정치적인 형태와 조건이 어떠했든지
간에, 프롤레타리아 독재 개념의 이러한 해방은 이 개념을 그 진실 속에 서 인지하는 것을, 그리고 이 개념에게 그 정확한 의미를 되찾는 것을 가능케 하며 또한 강제합니다.
2장_22차 당대회의 모순, 128쪽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질문은 … 1936년 이래로, 다시 말해 소련은 이미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초월했다de´passe´e고 스탈린이 공식적으로 선언했던 때 이래로 현재적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스탈린은 소련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초월했다고 확언함과 동시에, 이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질문이 다른 공산당들에게 필수적이라고 선언했는데, 이는 그들이 아직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초월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5장_프롤레타리아 독재에 관하여, 171쪽
레닌이 ‘궁극의 민주주의’라고 말할 때, 우리는 대중민주주의가 다른 연안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인지하기 위해 연안의 가장자리를 따라 걸어야 합니다. ‘대중민주주의’가 의회민주주의의 형태들을 (이 형태들을 변형시키면서) 통합하고, 이 대중민주주의가 자신의 노동분할[분업]의
금기들을 부숴버린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대중민주주의는 ‘노동’의 두 가지 또 다른 거대한 분할의 금지 또한 ‘부숴버립니다’.
6장_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정치형태들, 209쪽
마르크스와 레닌은 국가가, ‘비록 노동자들의 국가라 할지라도’, 자신의 고유한 법칙에 의해 또는 정치적 결정에 의해 스스로 ‘민주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순진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국가가 존속하는 한, 자유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국가는 절대로 자유를 촉진할 수 없다라고 수없이 쓰기를 반복했습니다. 반면에 그들은 주도권이 외부로부터 도래하기를, 즉 당, 노동조합, 마지막으로는 대중 자신으로부터 도래하기를 고대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대중으로부터 그들이 계급투쟁의 실천 속에서 국가에 대한 공산주의적 분해라는 과업을 완수하는 데에 적합한 새로운 조직형태들을 창조하기를,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의 계급투쟁에서 각 단계마다 이 형태를 새롭게 변형하기를 기대했습니다.
7장_공산주의의 전략, 229쪽
저는 민주집중제의 복원restauration에 대해 말하고자 합니다. 민주집중제가 ‘스탈린주의적 편향’의 효과에 의해 왜곡되고 희화화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또한 이러한 효과 이전에 민주집중제가 우리가 현재 경험하고 있는 형태와는 매우 다른 형태들을 경험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11장_민주집중제에 관하여, 2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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