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는 길에 상점에 들러 엄마가 사달라고 부탁한 물건들을 산 다음, 제일 친한 친구 아난드를 데리러 갔다. 사야 할 물건 목록을 빠짐없이 기억하기 위해 머릿속으로 목록을 하나하나 되짚었다. , 칫솔, 그리고 말린 자두! 으악, 어찌나 역겹던지 하마터면 마지막 단어를 입 밖으로 토해낼 뻔했다. 엄마가 또 변비에 걸린 건지 아닌지는 더 이상 알고 싶지도 않다. 열세 살 남자아이들 중에 자기 엄마가 똥을 잘 싸는지 못 싸는지까지 시시콜콜 알고 있는 애가 세상에 몇 명이나 될까? 아니,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산 채로 땅속에 묻히겠다는 엄마를 둔 애는 몇이나 될까? 그것도 기껏 기네스북에 오르겠다는 이유로, 외할아버지가 30여 년 전에 세운 그 한심한 기록을 되찾아보겠다는 이유로!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애는 자신뿐인 것 같다. 온 지구를 탈탈 털어본다고 해도, 자신의 가족처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희한한 가족은 없을 것 같다.
정말 걱정된다. 나도 어른이 되면 이런 어처구니없는 짓을 하고 싶어 안달하는 건 아닐까. 혹시 ‘땅속에 묻히고 싶은 강박적 욕구 유전자’ 같은 거라도 있는 건 아닐까. 으으, 하느님, 만일 그런 게 정말 있다면 제발 저만은 그런 유전자를 물려받지 않게 해주세요.
조던의 외할아버지는 1967년 세계 최초로 ‘구덩이 속에서 오래 버티기’ 신기록을 세우셨다. 꼬박 백 일 동안 땅속에 묻혀 있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이십 년 뒤, 한 미국인이 무려 141일 동안 땅속에서 버텨 외할아버지의 기록을 앞질렀다. 그리고 지난 11월에 엄마는 할아버지의 기록을 거뜬히 넘어섰다. 이번 12월, 그러니까 이제 딱 일주일만 지나면, 별일 없는 한 미국인의 기록을 깨는 건 말할 것도 없고, 또 한 번 세계 신기록을 수립할 터였다. 엄마는 그들의 기록을 넉넉히 따돌리기 위해 꼬박 150일 동안이나 땅속에서 지내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상자 안에 누워 있는 여자’ 방문하기는 마을사람들에게 아주 인기 좋은 이벤트가 되어버렸다. 덕분에 카페는 일요일 특별요리인 로스트 디너가 불티나게 팔렸고, 식사를 마친 방문객들은 파이프를 통해 엄마를 내려다보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렸다가 마침내 차례가 되면 하나같이 바보 같은 질문들을 퍼부었으며, 그러는 동안 그들의 아이들은 주차장에서 떠들고 난리를 피우거나 용돈을 털어 상자에 누워 있는 엄마의 모습이 새겨진 티셔츠와 연필, 지우개, 열쇠고리 같은 기념품을 사려고 상점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그렇게 북적대던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나면 주차장 여기저기에는 쓰레기들이 수북했다. 쓰레기를 주워달라는 부탁을 뿌리치지 못해 집게를 들고 주변을 돌아다니고 있노라면 조던을 알아보는 학교 아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조던을 향해 안 됐다는 눈빛을 던졌다.
조던은 몸을 기울여 머리를 파이프 위로 향하게 하고 열심히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숨소리를 죽여가며, 엄마의 기척을 들으려 애썼다. 몇 분쯤 지났을까, 파이프 내부에서 숨소리 같기도 하고 코 고는 소리 같기도 한 어떤 소리가 조그맣게 울렸다. 이제 그 소리는 심장박동처럼 규칙적으로 들렸고, 자신의 귀 뒤쪽에서 맥박이 뛰는 리듬과 일치하는 것 같았다. 좀 더 가까이 몸을 기울여 파이프 아래로 팔을 뻗었다. 물론 그래 봤자 소용없다는 걸 알았다. 아무리 팔을 뻗어 봤자 그렇게 멀리 뻗지는 못할 테니까. 하지만 엄마를 만져보고 싶은 열망이 간절했다.
바로 그때 조던은 자기도 모르게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생각만 해도 가슴에서 울컥 하고 치미는 느낌이, 마치 무슨 덩어리 하나가 위로 올라오는 것 같았다. 속이 메스꺼워 이러나 싶었다. 하지만 이건 토하려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건 흐느낌이었다. 아니, 흐느낌보다 더한 무엇, 그러니까 가슴속 깊은 곳에서 이제 그만 큰 소리로 울부짖고 싶다고 아우성치는 것 같았다. 흐느끼는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가지 못하도록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지만, 큰 소리로 울고 싶은 욕구가 걷잡을 수 없이 솟구쳐 도저히 억누를 재간이 없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