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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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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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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품목정보
발행일 2016년 09월 09일
쪽수, 무게, 크기 576쪽 | 478g | 115*170*35mm
ISBN13 9788962609844
ISBN10 8962609843

중고도서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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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1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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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김영옥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했고 문학을 통해 사람을, 삶을, 이상을 들여다보며, 이해하고, 위로받고, 깨닫는 과정이 좋았다. 문화와 언어의 차이를 넘어 원작의 감동을 고스란히 독자의 가슴에 전하고자 번역에 매진하고 있다. 글밥아카데미 출판번역과정을 수료하고 바른번역 소속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고양이가 되다》, 《나는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했다》, 《어떤 개를 찾으세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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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난만하게 세상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는 그 젊은 여인은, 아처가 속해 있고 신뢰해 마지않는 이 사회체제가 길러낸 경이로운 존재로서 메이 웰랜드라는 친숙한 형상으로, 하지만 마치 처음 보는 이처럼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러자 결혼이 이제껏 알아왔던 것 같은 안전한 정박항이 아니라 미지의 땅으로 떠나는 항해라는 생각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다.
--- p.73

그가 ‘품위 있는’ 남자로서 과거를 숨겨야 하고, 결혼 적령기에 접어든 여자로서 메이에게 숨길 만한 과거가 없어야 할 의무가 있다면, 그들이 서로에 대해 진정으로 알 수 있는 건 무엇이란 말인가? 상대방에 대한 사소한 문제가 드러날 때마다 서로 싫증 내고 오해하고 화를 낸다면 결혼 생활은 과연 어떻게 될까? 행복해 보이는 친구들의 결혼을 살펴봐도 그와 메이가 영원히 지켜나가리라 꿈꾸고 있는 열정적이고 다정한 동반자 관계를 이룬 경우는 그 비슷한 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상적인 부부 관계란 상대방의 경험과 융통성, 판단의 자유가 전제되어야 하겠지만, 메이가 그런 덕목을 갖추지 못하도록 주도면밀하게 교육받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자신의 결혼도 주위의 여느 결혼과 다를 바 없이 한쪽의 무지와 다른 한쪽의 위선으로 지탱되는 물질적, 사회적 이해관계로 맺어진 지루한 결합일 뿐이리라는 불길한 예감에 몸이 떨려왔다.
--- p.75

그녀는 방 중간쯤에서 잠시 걸음을 멈춰 서더니 꼭 다문 입술에 미소 어린 눈길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 순간 아처는 그녀의 외모에 대한 사람들의 평이 잘못됐음을 느꼈다. 어린 시절의 광채가 사라진 건 분명했다. 발그레하던 두 볼은 창백해졌고 야윈 데다 조금 지쳐 보였으며 서른 즈음일 실제 나이보다 조금 더 들어 보였다. 그러나 그녀의 아름다움에는 신비로운 힘이 깃들어 있었고, 고개를 치켜든 자세나 시선의 움직임에서는 확신이 느껴졌다. 이렇게 가식이 배제된 그녀의 모습은, 강도 높은 교육을 받아왔고 자의식 가득한 그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 p.100

“엘렌! 진정해요! 왜 울어요? 되돌릴 수 없는 일은 없어요. 난 아직 자유롭고, 당신도 곧 그렇게 될 테니까요.” 그녀를 안자 젖은 꽃잎 같은 뺨이 그의 입술에 맞닿았다. 그들을 절망케 했던 모든 두려움이 해가 뜨면 달아나는 유령들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 공간에서 서로 거리를 둔 채 몇 분이나 언쟁을 벌여온 일이 그녀를 품에 안자마자 이토록 간단명료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 p.277

“그러면 당신 삶은 뭐가 됩니까!” 그가 신음하듯 내뱉었다.
“아, 내가 당신 삶의 일부가 될 수 있다면 괜찮아요.”
“나도 당신 삶의 일부이고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게 다인가요?”
“네……. 그렇지 않을까요?”
--- p.392

“우리 둘을 위해서라고요? 그런 의미라면 ‘우리 둘’은 존재하지 않아요! 우리는 서로 떨어져 있어야만 서로에게 가까울 수 있는 사람들이죠. 그래야만 우리가 우리 자신일 수 있어요. 그렇지 않다면 우리를 믿고 있는 사람들을 속이면서 행복을 찾으려 하는 엘렌 올렌스카 사촌 여동생의 남편인 뉴랜드 아처와 뉴랜드 아처 아내의 사촌인 엘렌 올렌스카일 뿐이지요.”
--- p.465쪽

뭔가 놓쳐버렸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것은 인생의 꽃이었다. 하지만 이젠 닿을 수도 이룰 수도 없어서 그 일에 절망한다는 건 복권에 1등으로 당첨되지 않았다고 탄식하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복권을 아무리 많이 갖고 있다 해도 1등은 오직 하나였고, 그가 당첨될 확률은 거의 없었다. 엘렌 올렌스카 부인을 떠올리면 책이나 그림 속 상상의 연인을 생각하는 것처럼 몽롱하고 평화로웠다. 그가 놓쳐버린 그녀의 모든 것이 모여 환상이 되어 있었다. 그 환상은 희미하고 막연했지만 그로 인해 아처는 마음속에 다른 여자를 품을 수도 없었다. 그는 충실한 남편이라 불렸고, 메이가 막내 아이를 간호하다 옮은 폐렴으로 갑자기 죽었을 때 아처는 진심으로 슬퍼했다. 오랜 시간을 메이와 함께하면서 그는 결혼이 지루한 의무일 뿐이라 할지라도 그 의무의 존엄함을 지킬 수만 있다면 전혀 문제 될 게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킬 수 없다면 결혼은 그저 추악한 욕구 싸움에 불과할 뿐이었다. 그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돌아보며 뿌듯해했고 흘러가버린 과거를 아쉬워했다. 어쨌든 옛날 방식에도 좋은 점은 있었다.
--- p.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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