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는 전공과 상관없는 패션디자인을 배우고 싶은 마음에 몸이 달았다. 어떻게 하면 배울 수 있을지 답도 없었다. 아무리 봐도 돈 나올 구멍은 없었지만 병원에 다니던 언니가 그래도 만만해 보였다. “그 많은 돈을 뭐에 쓰려고?” “내 인생에 투자를 좀 할까 해.” 참 겁도 없다. 무슨 배짱에 그런 사기꾼 같은 말을 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랬음에도 언니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네 인생에 고작 백만 원밖에 투자를 안 한다고?” --- 「인연이 좀 남다른 집에 삽니다만」 중에서
“택배가 어제 점심 무렵부터 그 집 문 앞에 있던데……, 또 어디 다녀왔나 봐요?” “네? 내내 집에 있었는데요.” 오후 늦게 공원에서 만난 옆집 할머니는 내 말에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제부터 내내? 어떻게 종일 한 번을 안 나와 볼 수가 있어?” “특별히 나갈 일이 없어서요. 초인종도 안 울렸고 현관 앞에 택배 물건을 둔다는 문자도 없었는걸요.” --- 「온 동네가 내 집입니다만」 중에서
그리고 나의 퇴사를 사장에게 다시 보고했다. 나의 앞날이 말만 작가인 백수로 전락하게 될지라도 그런 것들은 하나도 두렵지 않았다. “저 친구가 뭘 안다고 인수인계야!” 사장은 전보다 더 노발대발했다. 그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나도 참 못됐다. 그리고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주워 담을 수는 없다. “사장님, 왜 그러세요. 저 친구, 충분히 능력 있어요. 그래서 사장님이 저보다 월급을 더 주면서까지 뽑은 직원이잖아요. 저는 저 친구가 그만한 능력이 충분히 있다고 믿거든요.” “뭣이라?” 사장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말을 더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