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루 와봐.”
강희가 자신의 옆자리를 손바닥으로 두드렸다. 연수는 미적미적 강희 옆에 앉았다. 매트리스가 삐걱거리며 푹 꺼졌다.
“곰탱이시키. 너, 살 더 쪘지?”
“아, 아니야.”
“아니긴 뭐가 아니야? 더 쪘구만. 우와, 이 살 봐라.”
강희가 손을 뻗어 연수의 옆구리 살을 한 움큼 쥐었다.
“야, 하지 마.”
몸통을 비틀며 저항했지만 강희는 아예 두 손으로 움켜쥐었다.
“백 킬로 넘었지?”
“백, 백 킬로는 무슨!”
최근에 몸무게를 재어본 적은 없지만 괜히 뜨끔했다.
“하지 말라구.”
부끄러워 강희의 양 손목을 확 잡아챘다. 가느다란 손목은 더 가늘어져서 엄지손가락에 힘이라도 주면 똑 부러질 거 같았다. 3개월 만에 처음으로 두 사람의 시선이 맞닿았다. 연수는 맑고 건조한 강희의 눈을 바라보았다. 덤덤한 척했지만 강희의 눈은 분명, 슬퍼 보였다. 어쩐지 숨을 쉬는 게 힘들어졌다.
“연수야.”
강희가 조용히 연수의 이름을 불렀다. ‘곰탱이’도 아니고 ‘천연수’도 아니고 연수야, 하고.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나랑 잘래?”
“쿨럭.”
대답보다 기침이 먼저 튀어나왔다.
“미, 미쳤냐?”
강희의 손목에서 황급하게 손을 뗐다. 손바닥이 덴 것처럼 화끈거렸다.
“너…… 자면서 내 생각 하는 거 알아.”
“야!”
“생. 각. 만. 하는 거 아니라는 것두 알아.”
“…….”
“네 지갑 속에 콘돔 들어 있는 것두 알아. 그것도 두 개.”
“그, 그건 네가 준 거잖아. 모텔 판촉물이라고.”
연수는 괜히 억울했다. 지난여름에 연수 두 개, 한우 두 개, 승언이 두 개. 사이좋게 나눠 먹으라고, 아니 사용하라고 나눠준 사람은 다름 아닌 강희였다.
“우리가 헤어지고 나면…… 넌 누군가와 사랑도 하고 섹스도 하겠지. 나도 그럴 테고.”
섹스라는 단어를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 강희 때문에 연수는 혼자 벌게졌다.
“아, 아마도.”
부끄럽긴 했지만 강희의 말에 부정할 수 없었다.
“너의 처음이 나였으면 좋겠어.”
“…….”
“왜? 너, 혹시 처음 아니야?”
처음이다. 한다면 말이다.
“네 반항에 동참하고 싶지 않아.”
춘길 아저씨에 대한 반항심으로 비뚤어지고 싶어 하는 강희의 마음을 모르지 않았다.
“호기심도 반항심도 아니야. 그냥…… 처음은 제일 순수한 거니까.”
강희는 순수를 얘기했고 연수의 몸은 순순히 달궈졌다.
“곰탱이, 살 빼지 마.”
차가운 손가락이 연수의 뺨에 닿았다.
“다른 사람 앞에선 안경도 벗지 마.”
강희가 연수의 안경을 벗겼다. 강희의 얼굴이 희미해졌다. 강희가 어떤 표정인지 알 수 없어서 답답했다. 창백한 뺨이 조금은 붉어졌을까.
아니, 안 보여서 차라리 다행이다.
“눈웃음치지도 마.”
차가운 입술이 연수의 입술에 닿았다.
강희가 부스럭거리며 연수의 목을 꽉 끌어안았다.
연수는 질끈 눈을 감았다.
이제 정말…… 이별이구나.
모든 것의 끝에는 절박함이 있다.
이제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을 테니까.
십 대의 끝, 연수의 열아홉도 그랬다.
서툴러서, 강희의 마음을 되돌릴 수 없어서, 강희와 함께 갈 수 없어서 절박했다. 그저 각자 알에서 깨어나려고 버둥거리며 통증 같은 추위에 오들오들 떨었다.
“지강희.”
호기롭게 훌훌 옷을 벗어 던질 때와 다르게 강희는 몹시 떨었다. 이가 부딪히는 소리마저 났다. 연수는 자신의 셔츠를 벗기려는 차가운 손을 잡고 불안하게 흔들리는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시선을 피하듯 슬쩍 내리까는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이러지 말자. 이러지 않아도 돼.”
내 처음은…… 너야.
그게 언제든.
그러니까 기다린다고.
내가.
연수는 정작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외로움과 추위가 내려앉은 야윈 어깨에 입술을 비볐다. 그리고 이것이 끝이라는 걸 거부하듯 끌어안았다. 셔츠 위로 소름이 가득 돋은 강희의 맨살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갑자기 울컥 목이 멨다. H읍을 떠나야만 살 수 있을 거 같다는 강희의 마음을 받아들이려고 안간힘을 썼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