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표민수가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모두가 가면을 쓰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들 앞에는 설교하는 이가 있었다. 가면을 썼기 때문에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순간 자신을 유심히 보는 이가 있어 눈이 마주쳤지만 서로를 알아볼 수 없었다. 표민수는 나중에야 알았다. 바로 그들이 비밀불교의 사람들이라는 것을. 요승 신돈에 의해 밀교, 즉 비밀불교가 이 땅에 들어왔을 때 ‘오마사회’라는 비밀집회가 있었다는 말은 들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해 이 땅에서 자취를 감추었다고 알았는데 밀교에서 그런 집회를 주관하고 있었다. 유교의 심장부에서 비밀리에 열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심신 단련을 목적으로 그 세계에 은밀히 몸담고 있는 유림의 내로라하는 사대부들 속에 자신이 섞여 있었다. --- p.45
할바마마의 성질로 보아 만약 그런 말을 입에라도 올렸다면 그대로 죽음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제 아들을 뒤주에 넣어 죽이는 사람이 무엇을 두려워하겠는가. 그렇다고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는 일이다. 오늘을 놓친다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평생을 계속 의혹 속에서 살아야 할 것이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세손은 이대로 물러서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허리를 세웠다. 오늘 이 기회를 놓친다면 살아생전 그에게 어떤 대답도 들을 수 없을 것이었다. 어찌 죽음을 각오하지 않고 그 대답을 들을 수 있겠는가. (……) 마지막 기회였다. 뒤주 속에서 참혹하게 죽어가던 아버지를 생각해야 한다. 아버지를 위해 참아왔던 세월. 그 세월을 버릴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이의충은 과거 세손 이산(훗날 정조)의 목숨을 구한 공으로 한양으로 올라왔다. 세손의 사람이 되어 내문위 검시관으로 일하다 현재는 예문위 사관으로 일하던 이의충은 성균관 사예 이한조가 누군가의 칼에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한조의 죽음과 사라진 어함이 관계되어 있다고 본 세손은 이의충에게 사건에 대해 알아보라고 명령을 내린다. 이의충은 성균관 학정 정목인과 오작인 출신 조카 오길과 함께 이한조의 죽음에 관해 조사하기 시작한다. 이의충은 이한조의 죽음을 조사하다 이한조가 자신에게 상자 하나를 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한조가 남긴 상자 안에는 사람의 뼈로 만든 피리, 인적(人笛)이 들어 있었다.
이한조는 어째서 이런 유품을 내게 남겼을까? 이의충은 의문을 품은 채 조사를 계속한다. 그런데 어함에 얽힌 인물들이 차례로 살해당하기 시작하고, 그 죽음을 조사할수록 영조의 충격적인 비밀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사라진 어함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리고 거기엔 영조의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