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충은 처음에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은 후에야 되물었다. ― 방금 뭐라 하시었소? ― 사예 이한조가 일을 당하였다고 했소이다. 내관이 심기가 사나운지 미간을 모았다가 말을 받았다. ― 이한조 어른이 죽었다고? 멍하니 되묻는 의충을 내관은 냉랭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 분명하오. 대답은 간단했다. 의충은 고개를 갸웃했다. 학궁 내에는 총 2인의 사예가 있다. 학궁 내 향학 조직의 모든 것을 총괄하는 이가 사예다. 예술 전반의 행정실무를 실질적으로 떠맡고 있는 사람. ― 그분이 죽었다고? 왜? 의충은 믿을 수가 없어 내관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 그걸 내가 어이 알겠소. 밤사이 당했다는데……. 어도 한 자루가 현장에서 발견되었다고 하오. ― 어도라니? 의충은 믿을 수가 없어 내관에게 되물었다. ― 가보시면 알 게 아니오. 내관이 눈을 치떴다. 그걸 내가 어떻게 아느냐는 표정이었다. --- p.14
영조가 몸져누우면서 세손은 대리청정을 시작했지만 아직도 모든 권력 이양이 완전히 이루어진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영조가 잃어버렸다는 어함이 문제였다. 영조는 재위 기간 동안 자신의 가장 비밀스런 문건들을 그 속에 넣어두었다. 만약 그 어함이 노론의 손에 넘어가기라도 한다면 노론은 그것으로 보위 문제를 뒤집을 수도 있었다. 바로 그 속에 재위 시절 내내 영조를 괴롭혀 왔던 숙종대왕의 친자 확인 문서가 들어 있다면. 영조는 몰래 자신의 비밀들을 태령전의 그 어함 속에 넣기를 좋아했다. 그는 그 어함을‘ 진실의 궤’라 불렀다. 자신이 가장 솔직해지는 공간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곧 그의 일기장이나 다름없었다.
이의충은 과거 세손 이산(훗날 정조)의 목숨을 구한 공으로 한양으로 올라왔다. 세손의 사람이 되어 내문위 검시관으로 일하다 현재는 예문위 사관으로 일하던 이의충은 성균관 사예 이한조가 누군가의 칼에 살해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한조의 죽음과 사라진 어함이 관계되어 있다고 본 세손은 이의충에게 사건에 대해 알아보라고 명령을 내린다. 이의충은 성균관 학정 정목인과 오작인 출신 조카 오길과 함께 이한조의 죽음에 관해 조사하기 시작한다. 이의충은 이한조의 죽음을 조사하다 이한조가 자신에게 상자 하나를 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한조가 남긴 상자 안에는 사람의 뼈로 만든 피리, 인적(人笛)이 들어 있었다.
이한조는 어째서 이런 유품을 내게 남겼을까? 이의충은 의문을 품은 채 조사를 계속한다. 그런데 어함에 얽힌 인물들이 차례로 살해당하기 시작하고, 그 죽음을 조사할수록 영조의 충격적인 비밀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사라진 어함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리고 거기엔 영조의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