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나이에 혼자서 그런 여행을 하도록 부모님이 허락했다는 건….”
어느 날 그 노인과 함께 나갔다가 내 세계 여행에 대한 계획을 말했더니 이렇게 얘기를 꺼냈다.
“처음엔 엄청 반대하셨죠. 아마 제가 금방 잊어버렸으면 하셨을 거예요.” 난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장비도 사들이고, 예방주사도 맞고, 구체적으로 준비를 시작하니 서서히 실감하셨죠. 진짜 떠날 건가 보네?”
“그래서? 포기시키려고 계속 설득하시지는 않았어?”
“저를 앉혀놓고 제 이성에 호소하셨죠.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고는 있는 거냐? 그래서 전 그럴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꼭 할 거라고 말했죠. 왜냐면 15년이 지난 어느 날 사무실에 앉아서 ‘아, 그때 했어야 했는데’라고 후회하느니 좋아하는 걸 하다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1단계: 유럽, 대서양 그리고 카리브 제도」중에서
“태양이 물속으로 사라져도 눈을 떼지 마.” 이탈리아 아저씨가 은밀한 어조로 말하면서 나를 의미심장한 눈으로 쳐다봤다. “어쩌면 네 선원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인 순간일지도 몰라. 저기에서 녹색 섬광을 보게 될 거거든. 그 빛은 여기서 죽은 영혼들이 모여 만든 거라네. 아주 특별하지.”
신비로운 분위기에 휩싸인 나는 그대로 굳었다. 선원 생활에서 이런 순간을 또 경험하게 될까? 그리고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났다. 녹색 빛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1단계: 유럽, 대서양 그리고 카리브 제도」중에서
이런 풍경은 그 뉴욕 남자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그는 금이 엄청나게 집중적으로 묻혀 있어서 삽이나 스페이드처럼 아주 단순한 도구로도 엄청난 이윤을 챙길 수 있는 카이칸으로 굴삭기를 들여오려고 미국 달러로 100만 달러 이상을 투자했다. 더구나 그는 도로를 건설해서 금을 찾는 사람들의 주공급원이 되어 물건을 실어 나르려 했다. 그런데 마을 주민들이 그의 사업을 방해하고 나섰다. 거기서 그냥 살겠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금과 함께 범죄, 술, 매춘이 따라와. 우리는 이 마을에 그런 것들을 들이고 싶지 않아. 너희들은 몇 년 안에 이 땅을 폐허로 만들고 떠날 거고, 우리는 엉망진창으로 망가진 땅에서 계속 오랜 세월을 살아야 해.”
---「2단계: 야생의 맛, 남아메리카 」중에서
남아메리카와 브라질에서는 음식뿐만 아니라 손님이나 외국인을 접대하는 태도도 내가 알았던 것과는 완전히 달랐다. 물론 그곳도 도시의 영향을 받아서 내가 시골에서 경험했던 것보다는 낯선 사람을 경계했지만, 여전히 마음이 따뜻해서 낯선 사람을 주저하지 않고 집으로 초대했다.
“N.o vai n.o rapaz. Fica um pouco mais!”(가지 마. 조금 더 같이 있자!)
브라질에서 이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서로 믿고 가족처럼 지내는 건 브라질 북쪽 지방에서는 문화의 일부였다. 유럽으로 옮겨다 놓고 싶은 문화였다. (…) 그래서 내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이 세계 사람들 대부분은 상냥하고 착하게 살려고 한다는 사실이다.
---「2단계: 야생의 맛, 남아메리카」중에서
“무슨 식물이에요?” 매끄러운 검은 머리칼을 가진 볼리비아인에게 물었다.
“코카 잎이야.” 그는 우물거리며 작은 손가락으로 입안에 있는 녹색 덩어리에 하얀 가루를 털어 넣었다.
“베이킹파우더가 코카인을 빨아들여서 효력이 생겨. 베이킹파우더나 다른 촉매제가 없으면 이 잎들은 꽝이야. 뭐 노인들이 위장장애를 앓을 때 이 잎을 먹기도 하지만.”
난 나중에 코카인이 고산병도 막고, 치아에도 좋으며, 부작용도 없이 수많은 긍정적 효과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는데 그 긍정적 효과라는 것이 회의적일 정도였다. 원래는 잉카 문명에서 제사장들이 종교적인 목적으로 사용했고, 현재도 페루와 볼리비아에선 여전히 샤머니즘 의식을 수행할 때 필요하다. (…) 초기에는 노예들이 코카 잎을 씹으면서 일하면 더 오래하고 불평도 적어진다는 걸 식민지 개척자들이 알게 되면서 코카 잎을 일상생활에서도 사용했다고 들었다. 식민지 시대의 엑스터시인 셈이다!
---「2단계: 야생의 맛, 남아메리카」중에서
우리가 소리를 지르며 고맙다는 인사를 하자 에콰도르 어선의 주인이 휘파람을 불며 우리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들은 배를 돌려 가버렸다. 대단한 결정이었다. 그 어부들은 우리에게 이 선물을 주기 위해 긴 거리를 우회했고 많은 비용을 썼다.
“당신에게 되갚을 능력이 없는 누군가를 위해 무언가를 할 때까지, 당신은 오늘을 살지 않은 것이다.”
《천로역정》을 쓴 영국 작가 존 버니언의 말이 생각났다. 이런 단순한 진리를 따르기 위해서는 박식할 필요도 부자일 필요도 없다. 그저 행동하면 되는 것이다. 어부들이 몸소 보여준 것처럼 말이다.
---「3단계: 남태평양의 환상적인 섬들」중에서
‘가장 일반적인 한국어 단어 1,000개’라는 어플을 찾아내었다. 빙고! 이건 완전히 나를 위한 거야! 처음엔 하루에 30개 단어와 문법을 하나씩 익히기 시작했다. 아주 착실한 목표였다. 하지만 난 좀 서두르고 싶었다. 몇 주가 지나고, 700개가 넘는 단어를 익혔을 때 난 그 ‘가장 일반적인 한국어 단어 1,000개’가 신문 기사에서 뽑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왜냐하면 ‘직원’, ‘표준화’ 또는 ‘연구 및 개발’과 같은 단어들은 잠꼬대로도 번역할 수 있었지만 ‘화장실’ 또는 ‘식음료’와 관련된 단어는 제대로 알지 못했다. 난감했다. 무엇보다 화장실이 급할 때 그랬다. 누군가 비즈니스와 정치와 관련된 주제에 대해 물어왔다면 난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4단계: 한국, 일본, 중국 그리고 중동」중에서
내가 여행을 했던 많은 나라에서는 달랐다. 그곳 사람들에게도 죽음은 고통스럽지만, 자주 만나는 친숙한 방문객이기도 하다. 그곳은 사망률이 높고, 사람들은 기관이나 병원이 아닌, 여러 세대가 한 지붕 아래 살고 있는 가족의 곁에서 죽는다. 죽음이 이렇게 항상 주변에 존재하는 건 부정적인 측면뿐 아니라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죽음과 화해를 하면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된다. 살 날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사람은 사소한 것으로 논쟁을 하며 시간을 허비하지 않는다. 발루치스탄에서의 버스 탑승이 내게는 그랬다. 난 가족과 미갈,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잘 지냈는지, 내 인생에서 무엇이 실제로 중요한지에 대해 생각했다.
---「4단계: 한국, 일본, 중국 그리고 중동」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