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개빈 [張介賓]약 1563년 ~ 1640년 명대(明代)의 이름 난 의사이다. 자(字)는 경악(景岳) 또는 회경(會卿)이다. 산음[山陰: 지금의 절강성(浙江省) 소흥(紹興)] 사람이다. 조상은 본디 사천성(四川省) 면죽현(綿竹縣) 사람이었으나 무공(武功)이 있어 소흥위(紹興衛) 지휘(指揮)로 임명되었다. 그는 어릴 적에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갔으며, 열 몇 살 때 이름 난 의사 김영(金英)으로부터 의학을 배웠다. 마흔 안팎의 나이에 군대를 따라 싸움터로 나갔는데 일찍이 하북(河北) · 동북(東北) 등지를 돌아다닌 적이 있다. 여러 해가 되도록 공명(功名)을 떨치지 못하자 고향으로 돌아가 의학에 온 힘을 기울였다. 날이 지나자 의사로 이름을 크게 날렸다.
그는 《소문(素問)》 · 《영추(靈樞)》에 대하여 아주 많이 연구하고 잇따라 30년 동안 공부하여 《유경(類經)》을 엮었는데 류(類)로 문(門)을 나누고 꼼꼼하게 주석(注釋)을 달았으며 조리가 일매지고 찾아서 배우기에 쉽다. 또한 《유경도익(類經圖翼)》 · 《유경부익(類經附翼)》 · 《질의록(質疑錄)》을 엮었다. 늘그막에 지난날의 임상 경험을 결합하여 《경악전서(景岳全書)》를 엮어 만들었다. 그는 의학 이론 방면에서, 처음에는 주진형(朱震亨)의 ‘양(陽)은 늘 남아돌고 음(陰)은 노상 모자란다’는 이론에 대하여 상당히 믿고 따랐으나 중년 이후에는 《내경(內經)》의 ‘음평양비(陰平陽秘), 정신내치(精神乃治)’ 등 이치를 근거로 하여 주진형의 위에서 말한 이론에 대하여 크게 반대하였으며, ‘양(陽)은 남아돌지 않는다’ 및 ‘진음(眞陰)은 모자란다’ · ‘인체는 허(虛)가 많고 실(實)은 적다’는 등의 이론을 제기하고 진음(眞陰)과 원양(元陽)을 보익(補益)하고 한량(寒?)과 공벌(攻伐)의 방약을 조심스레 쓸 것을 주장하였으며, 임상에서 온보(溫補) 방제를 늘 썼으므로 온보파(溫補派)라고 일컬어졌다. 그의 저술과 학설은 뒷세상의 의학에 대하여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한의학대사전, 2001. 6. 15., 한의학대사전 편찬위원회) 번역 한방 안과 이비인후과 피부과 전문의 한의사 홍성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