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나도 저랬었지. 저렇게 힘들게 세상을 헤치고 다녔었지. 자기 몸집보다 더 큰 배낭을 멘 여학생의 모습을 보니 조카도 생각났다. 이제 나의 조카도 곧 대학생이 될 것이고, 이런 험난한 세계를 저렇게 헤치고 나갈 것이다. 들판을 걸어오던 그 여행자들은 한계와 고통을 극복하며 길을 가는 전사였고, 구도자였으며, 작은 영웅들이었다. 자라면서 그들은 배고픔이 뭔지 모르고 컸을 것이다. 그러나 배고픔에 시달리고, 곳곳에 구걸하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인도라는 대륙을 헤쳐가면서 많은 것을 느꼈으리라. 가끔은 남몰래 눈물도 흘렸을 것이고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했을 것이다. …… 여행은 나에게 그런 것을 가르쳐주었다. 나는 험난한 여정을 스스로 선택하고, 도전하며, 앞으로 진군하는 용감한 여행자들을 사랑한다.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진실되게 노력하고 또한 겸허해지는 인간만큼 매력적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여행길에서 나는 그런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그래서 여행이 좋다. --- ‘한계와 고통의 극복’ 중에서
내가 이 고물가 사회에서 생존하는 방법은 첫째는 욕망 줄이기, 둘째는 그 줄인 욕망 속에서 한적하게 살 수 있는 심플 라이프에 적응하기다. 그 속에서 자신만의 가치관, 세계관을 만들고, 비슷한 사람들끼리 글로, 메시지로, 혹은 만남으로 가끔이나마 소통하는 관계를 유지한다. 그리고 세 번째는 당연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정도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돈을 버는 것이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가장 기본적인 것은 내 삶을 당당히 유지해나갈 수 있는 내공, 즉 가치관이었다. 나에게 삶은 여행이고 세상은 수행의 장이다. 물론 급변하는 한국 사회는 어디 하나 마음 붙일 데 없는 험한 곳이다. 그럴수록 마음을 다잡고 몸집을 줄인 상태에서 자유를 꿈꾸며 열린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그게 내가 살아가는 방법이다. --- ‘심플 라이프의 당당한 자유’ 중에서
요즘 나는 ‘산속의 카페’에 종종 간다. 20분 정도 동네 산길을 걷다 보면 탁자가 나온다. 거기에 앉아 홀로, 혹은 아내와 함께 보온병에 담아온 따스한 커피를 마신다. 바람에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 속에서 커피를 마시는 그 시간에 영혼의 소외와 결핍은 없다. …… 자연 속의 카페야말로 최고의 카페다. 그러나 나는 또 종종 동네 주택가에 있는 한적한 카페, 이주민 노동자들을 상대로 하는 허름한 음식점, 주점도 찾아다닌다. 세상의 중심이 아닌 주변부에는 한적함과 인간들의 체취가 남아 있다. 주변부일수록 문화의 비극이 발생하는 현장에서 슬쩍 비켜난 곳이다. 급변하는 세상일수록 나는 자연 속, 변두리의 누추한 곳, 세월의 때가 덕지덕지 붙은 곳, 이방인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숨통이 트이는 기분을 느낀다. 그때 내 영혼 속에 깃든 씨앗들은 꿈틀거리며 발아를 꿈꾼다. --- ‘카페는 도시 속의 오아시스’ 중에서
“친구의 술잔이 비었는데, 술을 안 따라주면 그게 인간이오?” 그러나 나는 쓸쓸히 또 혼잣말을 했다.
“자기 술잔이 비었는데 술을 따라줄 사람이 없으면, 그 또한 인간인가?”
갑자기 ‘우리 모두 인간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 서글퍼졌다.
독일의 사회학자 짐멜은 “인간은 자기 자신을 사고파는 장사꾼이 아니다. 남에게 무언가를 준다는 것은 자기 인격의 한 부분을 주는 것이다”라는 말을 한다. 특히 음식은 더욱 그렇다. 음악이나 미술은 같이 동시에 보고 즐길 수 있지만, 내 입에 들어온 음식을 남에게 줄 수는 없다. 그만큼 음식은 독점적이고 배타적이며 중요하다. 동물들은 음식을 앞에 놓고 으르렁거리며 싸울 정도다. 그런데 인간은 음식을 베풀고 나눌 줄 안다. 그러한 행위를 통해서 ‘우리는 매우 가까운 사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며 그것은 인격의 한 부분을 주고받는 것이다. 이런 교환 속에서 삶은 생성된다. 그것이 활발하게 이루어질 때 삶은 생기 있고, 그 소통이 시들해질 때 삶도 시들해진다. --- ‘여행과 삶을 풍요롭게 하는 나눔’ 중에서
나는 돈을 많이 못 벌어도 병든 어머니를 수발하는 아들이었고, 아내의 고민을 들어주고 소통하는 남편이었으며, 시장도 보고 살림도 했으며, 블로그를 통해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글을 쓰고, 또 그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존재였다. 얼마나 돈을 버느냐, 얼마나 사회를 변화시키느냐, 얼마나 정치적인 효과가 있느냐는 ‘유용성’의 관점에서는 무능력한 행위였지만, 나에게는 그런 사소한 역할들이 더 중요한 것이었다.
그리고 선한 마음으로 과욕을 버리고 착하게 부지런히 노력하면 길이 뚫릴 것이라고 믿었다. 한 걸음씩 너무 발밑도 말고, 너무 먼 지평선도 말고, 백 미터 전방쯤만 바라보면서 꾸준히 걸어가는 것, 그 방법밖에 없었다.
언젠간 잘되겠지라는 생각은 너무 상투적이다. 그건 평생 달고 살 고민일 것이다. 다만 이 험한 세상에서 견뎌낸다는 것, 그게 인간 승리며, 가슴속에 자신의 세상을 키워나간다는 것, 그건 꿈이라는 이름의 승리다. --- ‘88만원 세대와 백수의 세계’ 중에서
나는 종종 몽상가가 되어 앉아서 유랑했고, 코앞에 어리는 공간 속에서 우주를 보았으며, 사람들의 눈빛 속에서 신들의 세계를 보았다. 또한 잠자다 깨어나 시린 가슴을 안고 세상을 바라보면 낯선 유배지 같았고, 술 취해 몽롱한 상태에서 바라보는 거리는 무도회장 같았다. 잠자리의 어둠 속에서 생생하게 떠오르는 환상에 빠지기도 했고, 밤하늘을 쳐다보며 나의 별이라는 목성을 상상하기도 했다. 그 이미지와 상상들은 덧없는 공상이 아니라 생생한 현실이었다.
눈에 보이는 지겨운 ‘하나의 현실’을 빠져나가면, ‘수많은 현실 너머의 현실들’이 펼쳐졌다. 상상을 통해 나는 이 거대한 사회 체제에 억눌린 내면에 ‘구멍’을 냈고, 그 구멍으로 들어오는 바람을 타고 새로운 현실을 넘나들었다. 여행을 시처럼 해야 하고, 삶을 시처럼 살아야만 하는 이유였다.
--- ‘여행을 시처럼, 삶을 시처럼 살아야 하는 이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