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을 강조하신 공자님이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맹목적이 되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게 된다. 라는 말씀을 하셨다. 배움을 평생의 반려로 삼으신 분이 배우기만 하고 생각을 하지 않으면 맹목적이 된다고 말씀하셨으니 헷갈 릴만하다. 어찌 보면 배운다는 것을 조금 친절하게 세분해주신 셈이기도 하지만 도대체 배운다는 것, 공부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곰곰 생각하게 만드는 말씀이기도 하다. 우선 우리가 아는 상식적인 배움으로 돌아가 생각해보자. 우리가 무언가를 배운다고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우선 학교이다. 학교에서는 지식을 배운다.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열심히 배운다. 윤리 같은 과목도 있지만 대부분은 사람은 어디서 왔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보다는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배운다. 그 배움을 통해 우리의 눈이 뜨인다. 그 배움에 충실하려면 두 눈을 똑바로 떠야 한다. 두 눈 똑바로 뜨고 똑바로 보아야 한다. 그래야 분별력이 생긴다. 공자님이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에서 말씀하신 배움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공자님은 거기에 생각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생각이 없으면 맹목적이 된다고 말씀하신다. ---「제1장 배움 편」 중에서
공자님이 겨우 30에 세상에 나갈 수 있는 기초를 다졌다니 요즘 식으로 보면 늦둥이도 한참 늦둥이다. 나이 30에 겨우 자아가 확립되었다니 고등학교 때부터 ‘자아에 눈을 뜨라.’는 이야기를 무수히 듣고 배운 요즘 젊은이들에 비하면 철이 아주 늦게 든 셈이다. 요즘 식으로 말하자면 나 이 30에 배움의 과정을 마치고 겨우 성인이 된 셈이다. 하지만 공자님의 그 말씀은 사실은 너무나 정확한 말씀이기도 하다. 인간의 뇌를 연구한 첨단 학자들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인간의 뇌가 성숙하는 데 25년이 걸린다고 한다. 그 이전에는 미성숙의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그 이전에는 하나의 가능성으로만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나는 몇 십 년간 대학에서 교편을 잡아왔다. 하지만 나는 학생들을 하나의 완성된 인격체로 간주하고 대접해온 일은 거의 없다. 학생들은 언제나 내게 미성숙한 존재들이고 열린 가능성이었을 뿐이다. 그 미성숙한 존재들이 지닌 가능성이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이끌어주려고 노력하는 것이 선생이 할 일이라고 늘 생각해 왔다. 나 스스로가 그 가능성을 둘러싸고 있는 좋은 환경의 하나가 되려고 애를 써 왔을 뿐이다. 선생은 학생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일종의 환경이고 인도자일 뿐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어쨌든 공자님이 ‘30에 이립’이라고 선언하신 것이 첨단의 자연과학자들의 발견과 엇비슷하게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 신기하다면 신기하다. 30에 홀로 설 수 있게 된다는 것은 늦은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다. 지나는 길에 한 가지만 더 덧붙이자. 인간의 뇌가 성숙하는 데 25년이 걸린다고 해서 25세가 되면 인간의 뇌가 컴퓨터 처럼 안정된 완제품이 된다는 뜻이 아님은 물론이다. 성장은 멈출지 몰라도 그 이후에도 변화는 계속된다. 인간의 뇌는 평생 동안 가능성으로 존재하는 열린 생명체이다. 공자님이 30에 홀로 설 수 있게 되었다는 말씀은 자신이 하나의 인격을 갖추었다는 선언이다. 하나의 독립적인 인간으로서 살아갈 준비가 되었다는 선언이다. 자아가 확립되었다는 선언이다. 우리가 늦둥이도 한참 늦둥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아주 만만치 않은 선언이다. 우리들 중 그 누군들 자신만의 힘으로 서고, 자신만의 판단력으로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그런 시기를 가져 보았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자신의 자아를 확립한 경험을 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많을까? 어쩌면 아무도 진정으로 도달해 보지 못한 이상적 목표라고 말하는 것이 사실이 아닐까? 우선은 그 정도로 접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