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펴내며
고은강 시 고양이의 노래 5 산문 말하자면 이건 우리들의 이야기 구현우 시 공중 정원 산문 하나의 몸이 둘의 마음을 앓는다 권민경 시 동병쌍년 산문 나와 너에 대한 예언 김경인 시 오늘의 맛 산문 심심(心心), 심심(深深) 김락 시 복자는 십이 개월째 태동이 없었습니다 산문 긴 낮잠 김박은경 시 오늘의 영원 산문 아니, 아무도 아니 김언 시 괴로운 자 산문 끝으로 김원경 시 윤곽들 산문 뜻밖에 넌 김재훈 시 소백과 태백 사이 7 산문 너는 눈보라 속으로 걸어들어가고 김정진 시 버드맨 산문 우리가 사는 음악 속에는 김참 시 장례 행렬 산문 미루나무와 여자들 김해준 시 버려진 아들 산문 흑과 백 김형수 시 궁남지를 떠나가는 연잎 행렬을 거슬러 걸으며 산문 식물도 길을 잃는다 남지은 시 테라스 산문 그리운 미래 문태준 시 입석(立石) 산문 상응하다 박세미 시 11구역 산문 발음 연습 박희수 시 표적 산문 스틸 컷 배영옥 시 시 산문 고백 서윤후 시 안마의 기초 산문 그대로 두면 그대로 되지 않는 서정학 시 가을 산문 그리고 서효인 시 갈비를 떼어서 안녕 산문 전장에서 손택수 시 산색(山色) 산문 시와 시 너머 송승환 시 이화장 산문 접속사에 대하여 신용목 시 유령들의 물놀이처럼 산문 결정적인, 그래서 아직 오지 않은 심재휘 시 안목 산문 있는데 보이지 않는 심지현 시 별무늬 이불 산문 기도 오병량 시 편지의 공원 산문 한밤의 농구 유강희 시 부처꽃 산문 시의 막대기를 찾아 유계영 시 해는 중천인데 씻지도 않고 산문 바라볼 수 있지만 이해할 수 없는 유용주 시 첫눈 산문 세상에는 공짜가 없는 법이다 유종인 시 돌베개 산문 인연이라는 돌 이다희 시 승객 산문 기차 속에서 기차를 상상하며 이병률 시 가을 나무 산문 네 계절 이수정 시 지금 세상은 가을을 번역중이다 산문 가을과 구름과 새와 번역 이용한 시 불안들 산문 그건 좀 곤란합니다 이재훈 시 바보배 산문 바보배의 신화와 마주하다 장석주 시 키스 산문 눈꺼풀로 본 것들 장수양 시 창세기 산문 소원 전영관 시 퇴근 산문 길항(拮抗) 정채원 시 파타 모르가나 산문 겹겹의 불꽃 주민현 시 터미널에 대한 생각 산문 만약이라는 나라에서 진수미 시 이상한 제국의 이상한 앨리스 산문 무제 채길우 시 넥타이 산문 매듭 최예슬 시 작별 산문 뒤늦게 열어본 서랍 최현우 시 위대한 신비 인디언 산문 가만히 웃거나 울면서 한영옥 시 측은하고 반갑고 산문 괜찮네, 고맙네 홍일표 시 원반던지기 선수의 고독 산문 장소 밖의 장소 홍지호 시 동화 산문 끝나면 안 되는 문장 황규관 시 불에 대하여 산문 아주 자그마한 불 황유원 시 초자연적 3D 프린팅 산문 시인의 말 |
저황유원
저김언
저김형수
Kim Hyeong-soo,金炯洙
저문태준
Moon, Tae-june,文泰俊
저서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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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손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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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송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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愼鏞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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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유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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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홍지호
우리는 시인에 대한 여하한 신비주의도 품고 있지 않다. 아니, 품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우리가 아는 훌륭한 시인들은 타고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그저 노력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필사적인 노력에 신비로운 것이라고는 없다. 노력이란, 시도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고 다시 실패하는, 처절한 세속의 일이다. 조금도 신비롭지 않은 그 노동이 멈추면 시인도 함께 소멸된다. ---「펴내며」중에서
나는 사랑을 유예한다. 잠든 사람이 반드시 꿈을 꿀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꿈을 꾸는 사람은 대부분 잠들어 있을 거라고 믿는다. 살아 있지도 않는 내가 잘사냐고 너에게 묻고, 그러니 대답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_구현우, 「하나의 몸이 둘의 마음을 앓는다」중에서 나는 널 좋아해. 망했다. 그런데 우린 닮아 있잖아? 아마 안 될 거야. 동질감에 배신당하면 데미지가 더 크다. 그러니까 넌 햇살 같은 사람이나 만나려무나. 치유계 여신으로다가. 그런데 네 미래도 참 암담하다. 불안함과 강박은 숲에 버리렴. 그전에 네 숲 하나 만드는 것 잊지 말고. 언젠가, 그 숲에 동물이 뛰어다니면, 구경 가겠다. ---「나와 너에 대한 예언」중에서 내 눈꺼풀 속 밤하늘에는 웬일로 별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방문을 열면 거기엔 이름도 예쁜 네가 있고 창문틀에 앉아 햇볕 쬐는 고양이가 있고 눈이 부신 고양이는 오도카니 빛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버드맨」중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기분좋은 소식이 있다’는 문장이 떠올랐다. 미래의 일이 그립기도 하고 받은 적 없는 행복이 미리 만져지기도 하는 걸까. ---「그리운 미래」중에서 살면서 닳게 된 부분과 손쓸 수 없이 딱딱해진 부분이 닿을 때, 쓴다. 쓰는 손은 차갑고 차가운 손을 응시하는 것은 아마 따뜻함의 곤욕스러움을 잘 아는 것일 것. 나는 다정함을 벌칙으로 살고 있다. 나는 나의 슬픔을 비틀더라도 양보다 크게 울 수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자주 웃음이 나고, 앞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다. ---「그대로 두면 그대로 되지 않는」중에서 번지는 산빛으로 하여 산이 흔들 흔들 표나지 않게 움직인다 저 색을 뭐라고 불러줘야 하나 능선 밖으로 뿜어져나오는 색, 있는데 틀림없이 없는 저 빛깔, ---「산색(山色)」중에서 고백은 어째서 편지의 형식입니까? 파리한 나무 그늘 밑에서 빙빙 꼬리를 물고 돌아가는 개에게도 나는 묻게 된다 주저앉아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다시 태어나도 멈추지 않을 것 같아요, 그러자 아픈 일을 아름답게 말하는 건 좋은 일이 아닌 것 같다고 ---「편지의 공원」중에서 시간은 코앞에서 흔들리는 탐스러운 엉덩이 올라타고 싶은 순간과 걷어차고 싶은 순간으로 뒤뚱거린다 돌멩이를 삼키는 거위처럼 ---「해는 중천인데 씻지도 않고」중에서 네 개의 계절이 있다는 것. 우리가 조금 변덕스럽다는 것, 감정이 많다는 것, 허물어지고 또 쌓는다는 것, 둘러볼 게 있거나 움츠러든다는 것, 술 생각을 한다는 것, 불쑥 노래를 지어 부른다는 것, 옷들이 두꺼워지다가 다시 얇아진다는 것, 할말이 있다가도 할말을 정리해가는 것, 각각의 냄새가 있다는 것, 우리가 네 개의 계절을 가졌다는 것. ---「네 계절」중에서 꽃을 샀다가 서둘러 탄 막차 속에서 망가져버렸다. 차마 버리지 못했다. 등뒤로 감추고 돌아왔는데 이런 예쁜 꽃다발을 어디서 가져왔냐고 환하게 웃는 사람이 있었다. 그 얼굴을 보면서 아주 오래도록, 가만히 있고 싶었다. 그러지 못했다. ---「가만히 웃거나 울면서」중에서 손이 시려웠겠습니다 발이 시려웠겠습니다 눈이 머리 위에 조금씩 쌓이는군요 청년들이 폭죽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잠깐 불빛에 시선을 두지만 여기를 봐야지 누군가 셔터를 누릅니다 ---「동화」중에서 칼로 물 베기의 예술을, 이번엔 누구에게 보여줄까 칼처럼 고요히 누워 있는 물을 누구에게 먹여줄까? 누구 목에 부어줄까? (…) 마침내 난 내 모든 걸 다 바쳤다! 라는 기분이 들 때쯤 원하든 원치 않든 다시 잔뜩 들어찬 글자들로 붐비는 아침은 올 것이고 너는 이윽고 제정신으로 돌아오고 말겠지만 그건 그때 가서 생각하고, 어쨌거나 오늘은 너의 엄청난 힘이 내 위에서 쓰러지는 게 나는 좋다 ---「초자연적 3D 프린팅」중에서 |
시 평론가 데이비드 오어(David Orr)가 보고하기를, 어떤 임의의 X에 대해 ‘나는 X를 좋아한다[like]'와 ’나는 X를 사랑한다[love]'의 구글 검색 결과를 비교해보면, 대체로 ‘좋아한다’가 ‘사랑한다’보다 더 많다고 한다. 예컨대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가 ‘나는 음악을 사랑한다’에 비해 세 배나 많다는 것. X의 자리에 ‘영화’ ‘미국’ ‘맥주’ 등등을 넣어도 역시 마찬가지. 그러나 이상하게도 ‘시(poetry)'만은 결과가 반대여서 시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두 배나 더 많다고 한다. 왜일까? 나로 하여금 좀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훌륭한 시를 읽을 때, 나는 바로 그런 기분이 된다. _신형철, 「펴내며」 中
인간의 덧없음을 이미 알고 있는 자만이 시인이 되는 것이며 그 자리는 분명 낮은 곳임에 틀림없지만 거기에 그친다면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저 비극에 경도된 낱개의 개인으로만 남아 있을 것이다. 이상하게도 우리는 자신의 불행과 고통에 형식을 부여하고 제목을 붙이고 또한 표지를 만들어 세상에 내놓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세상의 낮은 자리에도 목소리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기성의 세계에 그 목소리를 등기함으로써 바닥과 끝엔 당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가 함께 있으며, 그리하여 세상은, 그리고 그 안에 속한 당신은 포기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라고 말하게 되는 것이다. _박상수, 「펴내며」 中 “젖은 베개를 털어 말리고 눅눅한 옷가지에 볼을 부비다 너의 아름다움이 온통 글이 될까봐 쓰다 만 편지를 세탁기에 넣고는 며칠을 묵혔”다는 시인(오병량), “삶을 좀 우습게 봐줄 줄 알아야 삶도 널 우습게 보지 않지 않겠어?”라고 기개를 펼쳐 보이는 시인(황유원), “우리는 키스를 모르는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 혹은 우리는 키스를 모르는 나라에서 온 야만인들입니다”라고 낯설게 말하는 시인(장석주). “내밀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멀리서 관조하기도 하며, 어느 쪽이든 우리가 듣는 음악이 같았으면 한다”는 시인(김정진), “무엇을 써야 할지 잘 모르겠다. 다만 무엇이든 씀으로써 별생각 없이 미끄러지는 일상에 불편한 감각 몇이 돋아나길” 바라는 시인(서효인), “결정적인, 그래서 아름다운 무언가”를 기다리는 시인(신용목)에 이르기까지. 자기만의 색으로 환하게 빛나는 시편, 그리고 시인의 환희와 깨달음과 어긋남과 고뇌를 담은 진실한 산문도 함께 실음으로써 욕심을 부려보기도 한 문학동네시인선 100호. 시는 다름 아니라 시인이 우리보다 한발 앞서 본 생의 속살과 삶의 이면을 전하는 글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시와 산문을 합쳐 딱 100개의 시선. 하나로 묶으려야 묵을 수 없는 시인들을 한데 묶었다. 그것은 폭발적인 에너지로 똘똘 뭉쳐, 터져나가기 직전의 황홀한 빛을 뿜는 은하수와 꼭 닮았다. 부디 기쁘고 설레는 마음으로 이 시인들을 시인視人하여 주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