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김익두는 ‘안악산 호랑이’라는 별명을 가진 지독한 깡패였습니다. 평양 시내 신천시장에서 악명을 떨쳤습니다. 사람들이 성황당에서 그를 만나지 않게 해 달라고 빌 정도였습니다. 그런 방탕한 생활을 하였으나, 1900년 미국인 선교사 W. L. 스왈렌의 설교에 감동하여 개신교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1년 후 스왈렌에게 세례를 받고 재령교회의 전도사가 된 김익두는, 황해도 신천 지역의 개척 전도사로 파견되어 개척교회 활동을 하였습니다.
그가 회개한 다음 맨 처음 한 일이 부고장을 돌린 것입니다. 깡패 김익두가 죽었다는 소식에 사람들은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시장 한 복판에 그가 성경책을 들고 나타나자 사람들은 술렁였습니다. 이때 그에게 모질게 당했던 한 아주머니가 “어디 옛날 김익두가 정말 죽었나 보자” 하고 물 한 바가지를 끼얹었습니다. 김익두는 물을 툭툭 털고는 “내가 죽었으니 아주머니가 살아있지 않소, 옛날의 내가 살았다면 아주머니는 오늘 죽었을 거요”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1910년에는 평양장로회신학교를 졸업하고, 신천교회의 목사가 되었습니다. 1919년 강동 염파교회에서 사경회 도중 신적인 치유 능력을 얻어, 이것이 소문나기 시작하면서 그가 주최하는 부흥집회에는 치료를 받고자 많은 인파들이 찾아왔습니다. 또한 일제강점기 때 신사참배 거부로 고문을 받기도 했습니다.
광복 이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남아 김일성 정권에 협력을 가장하면서 반공연대를 조직하는 등 우익 인사들을 비밀리에 지원하는 활동을 하다가 1950년 10월 14일, 한국 전쟁 중 조선인민군의 총에 맞아 77세의 나이로 순교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