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노어노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뒤, 동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 대학교에서 논문 <레르몬토프의 소설들에 나타난 구성의 시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3년도부터 ‘악마성’이라는 테마의 틀 속에서 푸시킨, 레르몬토프, 도스토옙스키의 작품들에 나타난 악마적인 주인공 형상들의 상호 관련성을 추적하는 일련의 논문들을 발표했다. 주요 업적으로는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번역)과 ≪도스토옙스키≫(도스토옙스키 입문서) 등이 있다.
27세의 나이로 요절한 미하일 유리예비치 레르몬토프는 그의 작품만큼이나 비극적인 생애를 살았다. 세 살이 되기 전에 어머니를 잃고, 외할머니의 절대적인 사랑 속에서 성장한 그는 청소년기에 이미 280여 편에 가까운 시를 쓴 문학 소년이었다.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이 프랑스의 망명자 단테스와의 결투로 사망하자, 레르몬토프는 그 죽음을 애도하는 <시인의 죽음>을 썼고, 주콥스키, 뱌젬스키, 크라옙스키와 같은 당대의 시인들은 그 시를 읽고 푸시킨의 뒤를 이을 천재적인 시인이 탄생했다고 기뻐한다. 그러나 레르몬토프는 시인을 살해한 황제 중심의 권력층과 그 주변인들을 후대의 이름으로 심판하는 시구를 담은 마지막 연의 16행으로 인해 황제를 비롯한 권력층의 분노를 사게 된다. 이후 레르몬토프는 카프카스로 유형 길에 올라 체첸과의 전투에 참여하게 되는데, 전역해서 전적으로 문인으로 활동하고자 하는 그의 계획은 황제에 의해 번번이 거부당한다. 결국 주옥같은 시들과 대표작인 서사시 <악마>, ≪우리 시대의 영웅≫ 등을 남기고, 동급생이었던 마르티노프와 사소한 시비 끝에 결투를 벌여 허망하게 사망한다.
레르몬토프는 19세기 러시아 낭만주의 작가들 중에서도 낭만주의를 가장 잘 표현했을 뿐 아니라, 산문에 있어서 낭만주의적 수법과 리얼리즘적인 수법을 결합시킴으로써 러시아 리얼리즘의 발전에 공헌을 한 작가라는 평가를 받는다. 미하일 유리예비치 레르몬토프는 서구의 낭만주의자들인 바이런, 위고, 뮈세, 드 비니 등과 러시아의 대문호 푸시킨의 영향 하에 러시아적 바이러니즘(Byronism)을 완성했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머물지 않고 자신 속에 내면화한 바이러니즘의 허구성을 냉철하게 조명한 작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