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이고 몇 달이고 비가 계속 내려, 혹 이대로 비에 갇혀버리는 것은 아닐까. 모두가 그렇게 예감하는 계절 속에 있었다. 물론, 내 자신이. 일본에는 사계절이 있으니까, 실제로는 그렇게 오랜 우기 속에 있을 수는 없다. 하물며 도쿄에 살면서는. 나는 도쿄에서 태어나고 자라, 여행 때가 아니면 다른 지방에 간 일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오랜 비가 내리는 경치는 알지 못한다.
다만 내 안에서는, 모든 것을 무시하고 하염없이 비가 내렸다. 그리고 나는 자신의 몸 안에서 또렷하게 울리는 빗소리를 늘 듣고 있었다. 마치 또 하나의 고동처럼.
칸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그를 안개비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이른 봄에 내리는, 보드랍고 따스한 비를 닮았다고. 그러나 그런 비는 끝이 보이지 않은 일도 많다. 언제 내리기 시작해서 언제 그칠지 알 수 없는 하염없는 비.
칸은 그런 비의 특징을 안 그래도 키가 큰 몸 위에 인형 옷처럼 푹 덮어쓰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우리의 시작이 어디였는지, 솔직히 나는 잘 모른다. 비는 내리기 시작하고서야 비로소 아는 것이니까. 창문에 가득한 어둠으로 밤이 소리 없이 찾아온 것을 알듯이, 땅에 쌓여 있던 눈이 어느 틈엔가 녹아 질척질척한 흙탕물이 되는 것을 보고서야 문득 봄이 찾아 왔다는 것을 알듯이.
"왜 그래? 배 아파?"
"아니, 아니야."
"그럼 머리? 아니면 피곤한 거야?"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그 한 마디에 가슴이 믹서 속에서 빙글빙글 돌아가는 과일처럼 조각나 버렸다. 나는 셋짱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왜?"
"오빠. 나, 꼭 해야 할 말이 있어."
"무슨 말인데?"
"오빠를 좋아하는 마음하고는 아무 상관없이, 나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지도 몰라."
셋짱은 잠자코 말이 없다가, 이윽고 내 손을 끌고 근처에 있는 가게의 처마로 들어가 우산을 접었다. 나는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을 보면서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다.
"언제부터 그런 생각 했는데?"
나는 잠시 생각하고서,
"모르겠어. 방금 전인지, 벌써 오래전부터인지."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