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힘내세요! 모든 성도들이 기도하고 있어요”라고 말씀드리면 이렇게 대답하셨다.
“하나님이 가장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실 거야. 아직도 내게 남겨진 사명이 있다면 살려 주실 것이고, 사명이 끝났다면 이제 그만 쉬어라 하시면서 데려가시면 그것도 감사하고….” 삶과 죽음에 초연하셨던 목사님을 뵈면서 바울의 고백을 생각했었다. …
눈을 감고 계신 목사님을 사모님과 함께 흔들어 깨우면서 “목사님, 무슨 생각 하고 계세요?”라고 물으면 언제나 목사님은 “내 사랑하는 예수님 보고 싶다”고 대답하셨다. 고통의 순간에도 목사님에게는 예수님밖에 없으셨나 보다. --- 「강명옥 전도사 · 사랑의교회」 중에서
워낙 자기과시를 경계하며 겸손한 분이셨기에, 생전에 성도들이 공유하지 못했던 목사님의 진면목이 소천하신 후에야 곳곳에서 드러나는 것이 안타깝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이 진정 목사님다운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목사님의 진면목은 여전히 대부분 ‘한 사람 철학’에서 드러났습니다. --- 「권영준 소장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의연구소 소장」 중에서
그날 아침, 습관처럼 집어든 스마트폰에서 접한 첫 번째 소식입니다. “옥한흠 목사님께서 소천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곳저곳에서 추모하는 글들이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은퇴하신 지 꽤 되셨으니 어찌 보면 교계의 원로로 잊혀 가는 분인데,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면서 많이 놀라고 감사했습니다. 젊은이들에게 목사님의 자리가 이렇게 큰 것이었다는 사실이 경이롭기까지 했습니다. 한국 교회에도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존경받는 목사님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김병삼 목사 · 만나교회」 중에서
오늘날 한국 교회가 모두 깨끗하고 신뢰받는 것이 아닌 상황에서 당신의 아름다운 퇴장은 많은 신자와 국민을 감동시켰습니다. 그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당신은 겸손해했지만 그러나 그것이 당연하지 않은 것은 우리 시대의 절망 때문입니다. 그것은 더운 무더위를 식혀주는 한줄기 소나기와 같은 사건이었습니다. --- 「박원순 변호사 ·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중에서
하나님께서 부르셨어도 가슴 시린 건 마찬가지입니다. … 제가 이런 글을 이렇게 빨리 써야 한다는 게 야속하기만 합니다. 목사님께서 주일날 교회 마당에서 인사드리던 제 손을 붙잡고 “건강 조심해라”고 되레 저를 걱정하시던 게 반년도 안 지난 올봄이었기에 말입니다. 목사님이 많이 편찮으시다는 소식에도 “하나님께서 지금 목사님을 부르신다면 손해가 크실 것”이라고 허튼소리를 하기도 했습니다. 목사님이 이곳에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실 일이 아직도 너무 많이 남아 있다고 생각해서였습니다. --- 「백화종 부사장 · 국민일보」 중에서
그는 조금이라도 떳떳하지 못한 것은 용납하지 못했습니다. 그와 관련해서 나는 목사님을 괴롭힌 것이 하나 있습니다. 내가 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 ‘작은 차 타기 운동’을 한 것입니다. 그 운동으로 나는 나보다 몇 배 더 훌륭한 신앙과 인품을 가진 분들의 양심을 많이 건드렸고 그 때문에 매우 미안했습니다. … 옥한흠 목사님도 나에게 한번은 ”크레도스 정도는 괜찮겠지?“ 한 일이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대답했는지는 기억이 없으나 ”그 정도는 괜찮지요“ 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그 후 그는 한동안 크레도스란 자동차를 타고 다녔습니다. 그런데 얼마 후에 그는 아마 그보다 더 큰 차를 탔을 것이고, 그것이 완벽주의자인 목사님을 많이 괴롭혔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그렇다고 하여 그런 운동을 중단할 수도 없고 많은 분의 양심을 건드려서 정말 미안했습니다. 이 일에 대해서는 하나님 나라에 가서 그의 이해를 구하겠습니다. --- 「손봉호 장로 ·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중에서
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지 벌써 30년이 훌쩍 지나서였을까, 가끔 아버지가 보고 싶어질 때 목사님을 뵈면 아버지를 만난 느낌이 들었다. 아버지의 목소리, 아버지의 냄새, 아버지의 몸짓을 만난 것 같아 기대고 싶어지고 나의 어리석고 못된 실수들에 대해 꾸중 듣고 싶어지고 "왜 그랬냐고, 그리해선 안 된다"고 호되게 야단맞고 싶어지는 그분, 그러다 내 등에 손을 얹고 조용히 등 두드려 주는 내 아버지가 느껴졌다. --- 「윤형주 장로 · 온누리교회, 방송인」 중에서
한국 교회가 낳은 몇 안 되는 훌륭한 목사님. 그러나 매우 까칠한 목사님. 그는 흔히 훌륭한 목사님이라고 부를 때에 연상되는 ‘인자한 목사님’이나 ‘부드러운 목사님’과는 거리가 있는 분이었다. 그렇다고 소위 성공한 목사님들처럼 콧대가 높은 분도 아니었다. 그는 간결했다. 어떤 일에든 적당히 얼버무리지 못하였고 입장 표명을 분명히 하였다. 자신의 대외 이미지에는 별로 관심이 없으셨다. 한마디로 자신을 포함하여 누구에게든 별로 후한 점수를 주지 못하는 매우 인색한 분이었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적어도 지난 10여 년간 약간은 멀리서 경험한 옥한흠 목사님은 그랬다. --- 「이성구 목사 · 구포제일교회」 중에서
우리가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구하면 주시는 하나님이시므로 열심히 구하면 세상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숱한 설교와 간증의 홍수에 빠져 있었다. 거룩하신 하나님의 신성을 닮아가기 위한 우리의 노력과 절제는 점점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세상의 성공을 가져다 줄 요술방망이 정도로 전락시키기 일보 직전이었다.
‘공의의 하나님’은 뒷전으로 하고 ‘사랑의 하나님’만 찾고 있던 내게 ‘공의의 하나님’을 되찾아 주신 분이 바로 옥한흠 목사님이었다. --- 「이혜훈 국회의원 · 한나라당」 중에서
목사님을 생각할 때마다 잊을 수 없는 사건이 하나 있습니다. 부산에서 목회하는 제가 어느 날 사랑의교회를 방문하였는데, 목사님께서 너무 반가워하며 맞아 주셨습니다. 그리고는 당회장실에 있는 목사님의 개인 방을 내어주시며 쉬라고 해서 얼마 동안 목사님 침대에 누워 쉬었습니다. 사실 그런 개인 공간은 아무에게나 개방하지 않는데, 멀리서 온 나그네를 위해 선뜻 방을 내어주시며 쉬라고 하시는 목사님의 사랑을 잊을 수가 없었습니다. ... (목사님은) 언제나 말과 행실이 반듯하지만, 그러면서도 모든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해주고 편하게 해주는 분이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목사님의 정직함과 따뜻함 때문에 목사님 주변에는 항상 목사님을 닮아 보려는 사람이 많이 모여들었다고 생각합니다. --- 「정필도 목사 · 수영로교회」 중에서
제가 옥한흠 목사님을 처음 만난 것은 오래전에 목사님께서 제게 안수기도를 받으러 오셨을 때입니다. 당시 목사님은 성령충만을 위해서 저에게 안수를 받겠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목사님을 적극 만류하며 오히려 저에게 안수해 주시기를 원한다고 간청했습니다.
결국, 저와 옥한흠 목사님은 무릎 꿇고 얼싸안으며 서로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목사님은 그토록 주님을 향한 열망이 가득하시고 겸손하시며 진실하셨습니다.
--- 「조용기 목사 · 여의도순복음교회 원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