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이 말한 대로 세 형제는 해안에서 커다란 바위 세 개를 발견했어. 그리고 시키는 대로 바위를 굴리면서 갔어. 아주 크고 무거운 바위라 굴리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고, 하물며 비탈길에선 밀고 올라가느라 엄청 고생해야 했어. 막내 동생이 맨 처음 손들었어. ‘형들, 난 그냥 여기 있을게. 여기선 해안도 가깝겠다, 고기도 잡을 수 있어. 충분히 살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멀리까지 세계를 보지 못해도 상관없어.’ 막내 동생은 그렇게 말했어. 두 형은 그뒤로도 더 갔어. 그러다 산중턱에 이르러서 둘째 형이 손들었어. ‘형, 난 그냥 여기 있을게. 열매도 풍부하겠다, 충분히 생활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 멀리까지 세계를 보지 못해도 상관없어.’ 맏형은 그뒤로도 비탈길을 계속해서 올라갔어. 길은 점점 험해졌지만 포기하지 않았어. 원래부터 끈기 있는 성격이었고, 세계를 조금이라도 더 멀리까지 보고 싶었거든. 그래서 있는 힘껏 계속해서 바위를 밀고 올라갔어. 몇 달 걸려서, 거의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면서 그럭저럭 높은 산꼭대기까지 밀어올리는 데 성공했어. 맏형은 멈춰서서 세계를 바라봤어. 지금은 누구보다도 세계를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었어. 거기가 맏형이 살 곳이었어. 풀도 자라지 않고 새도 날지 않는 그런 곳이었어. 수분은 얼음이랑 서리를 핥아 취할 수밖에 없었고, 먹을 것이라곤 이끼밖에 없었어.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았어. 맏형은 세계를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하와이의 그 섬 산꼭대기엔 지금도 커다랗고 둥근 바위 하나가 동그마니 남아 있다, 그런 이야기.”
침묵.
마리는 질문한다.
“그 이야기에 교훈 같은 게 있어”
“교훈은 아마 두 개일 거야. 첫째는,” 그는 손가락 하나를 든다.
“사람은 모두 각각 다르다는 것. 형제라도 말이지. 그리고 또 하나는,” 손가락 하나를 더 든다. “뭔가를 정말로 알고 싶다면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 --- p.22-23
★★★
“아까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요.” 마리는 말한다. “왜 호텔 이름이 ‘알파빌’이죠?”
“글쎄, 왜려나. 아마 우리 사장이 지었을 텐데. 러브호텔 이름이야 하나같이 대충 붙인다고. 결국은 남녀가 그걸 하러 오는 데니까, 침대하고 욕실만 있으면 오케이고 이름 같은 건 아무도 신경 안 써. 비스름한 것 하나만 있으면 돼. 왜 그런 걸 묻는 거지?”
“제가 제일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거든요, [알파빌]. 장 뤽 고다르의.”
“못 들어본 제목인데.”
“꽤 오래된 프랑스 영화예요. 1960년대.” --- p.71-72
★★★
“그래서 생각하는 건데, 인간은 기억을 연료로 해서 사는 게 아닐까? 그게 현실적으로 중요한 기억인지 아닌지 생명을 유지하는 데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것 같아. 그냥 연료야. 신문광고지가 됐든, 철학책이 됐든, 야한 화보사진이 됐든, 만 엔짜리 지폐 다발이 됐든, 불을 지필 때는 그냥 종이쪼가리잖아? 불은 ‘오오, 이건 칸트잖아’라든지 ‘이건 요미우리 신문 석간이군’이라든지 ‘가슴 끝내주네’라든지 생각하면서 타는 게 아니야. 불 입장에선 전부 한낱 종이쪼가리에 불과해. 그거랑 같은 거야. 소중한 기억도, 별로 소중하지 않은 기억도,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는 기억도, 전부 공평하게 그냥 연료.”
--- p.2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