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문인으로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경숙(磬叔), 호는 허백당(虛白堂)이다. 용재(齋)·부휴자(浮休子)·국오(菊塢)라는 호도 사용했다. 시호는 문대(文戴)다. 아버지는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 염조(念祖)다. 맏형 성임(成任), 둘째 형 성간(成侃)과 함께 당대의 문장가로 명성을 떨쳤다.
성현은 음률에 정통하여 다른 관직을 맡으면서 장악원제조(掌樂院提調)를 겸했다. 1493년에 경상도관찰사로 나갔다가 1개월 만에 예조판서로 제수되었다. 외직에 있으면서 장악원제조를 겸직하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이해에 유자광(柳子光) 등과 『악학궤범(樂學軌範』을 편찬했다. 성현은 예조판서로 재임 중에도 관상감(觀象監)·사역원(司譯院)·전의감(典醫監)·혜민서(惠民署) 등의 중요성을 역설하여 그곳에 딸린 관원들을 종전대로 문무관의 대우를 받도록 했다.
저서로 『허백당집(虛白堂集)』, 『용재총화(齋叢話)』, 『풍아록(風雅錄)』, 『풍소궤범(風騷軌範)』, 『부휴자 담론(浮休子談論)』, 『주의패설(奏議稗說)』, 『태평통재(太平通載)』 등 17종을 남겼다.
용인 토박이다. 어려서는 서당을 다니며 천자문에서 소학까지 수학했다. 그것이 단국대, 성균관대에서 한문학을 전공하게 된 인연이 되었다. 지역문화 연구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강남대 교수로 재임하면서부터다. 용인, 포천, 이천, 안성 등 경기지역의 향토문화 연구에 20여 년을 보냈다. 본래 한국문학 전공자인데 향토사가, 전통문화 연구가로 더 알려져 있다. 연구 성과물이 지역과 연관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강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임하면서 인문대학장, 인문과학연구소장을 겸직하고 있다.
그동안 『성현문학연구』, 『양사언문학연구』, 『박은시문학연구』, 『김세필의 생애와 시』, 『한국고전문학의 이해』, 『우리 전통문화의 만남』, 『이천의 옛노래』 등 40여 권의 책을 냈다. 짬이 나면 글 쓰는 일도 즐긴다. 『탄 자와 걷는 자』는 잡글을 모은 것이다.